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금갑 (문단 편집) == 내용 == [[488년]](소지 마립간 10년)에 왕이 천천정(天泉亭)에서 중서함미[* '로견중서함미'(路見衆鼠含尾: 길에서 여러 쥐들이 서로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을 보았다) 구절의 '중서함미'이다. 글자 그대로 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모습으로, 과거 문서 '중서함미'에 써진 것과는 달리 요괴가 아니다. 그저 쥐가 꼬리를 물고 있는 기이한 현상을 나타내는 말이었을 뿐이다. '중서함미' 문서가 '사금갑'으로 대체된 이유이기도 하다.]를 보아 이걸 이상하게 여기고 점을 쳤더니 까마귀를 따라가라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점을 쳐서 그 뜻을 알아차린 이야기와 다르게 쥐가 직접 왕에게 "까마귀를 따라가라"고 전했다고도 한다. 그리하여 왕은 기사를 시켜 까마귀를 따라갔더니 돼지 2마리가 싸우고 있었다. 까마귀가 그새 사라진 것도 모르고 지켜보는데 웬 노인이 못에서 나와 글을 올렸다. 글의 겉봉에,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그렇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기사는 소지 마립간에게 가서 바쳤고 곧 이 일을 의논했는데, 왕은 "두 사람이 죽기보다야 한 사람이 죽는게 낫지 않냐"고 하며 열어보지 않을 것을 말하지만 일관(日官)이 "두 사람이란 서민(庶民)을 이르는 것이고, 한 사람이란 곧 왕을 이르는 것이다"고 아뢰어 왕이 이를 옳게 생각해 글을 열어보게 했다. 글 속에 쓰여져있는 것은 '금갑을 쏘라(射琴匣)'[* 이 말이 이 이야기의 제목이 되어, '''사금갑''' 설화가 되었다.] 였고, 왕은 글속에 쓰인 대로 궁에 돌아가 거문고의 갑(匣)을 쐈다. 그 속에 웬 중이 궁주(宮主)[* [[소지 마립간]]의 왕비가 습보 갈문왕의 딸이라고 서술한 《삼국유사》에서는 궁주, 잉숙의 딸 선혜부인이라고 서술한 《[[삼국사절요]]》에서는 왕비로 나와 있다. 따라서 이 궁주/왕비는 일반적으로 선혜부인으로 본다.]와 간통하고 있었고, 그는 왕의 자리를 탐내고 있었다. 이를 보고 격노한 왕이 왕비와 중을 처형했다는 이야기다. 물론 전설은 여러 판본이 있으니 왕이 쏜 화살에 맞은 거문고갑에 피가 흐르는 게 보이자 서둘러 병사들에게 확인을 시켜보니 왕을 죽이려고 매복한 자객 두 사람이 화살에 맞아 죽어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후 왕은 매년 첫 쥐, 돼지의 날에 까마귀를 위해 약밥을 만들라는 말을 전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