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부천고등학교 (문단 편집) === 학교 문화 === 1990년대부터 자발적인 동아리 활동이 성행하였다.[* 자발적으로 시작했으나 후에 동아리운영시범지정학교로 지정되면서부터는 1인 1동아리를 학교에서 강요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상은 당시 학교마다 운영하던 CA부서를 이름만 바꿔서 운영했다고 봐야하고, 차이점은 개설 자체를 학생 자율에 맡겨놨던 점.] 2010년대인 현재보다 1990년대의 동아리 활동이 더 성행했을 정도다.[* 신입생 모집도 자율적으로 하다보니 인기있는 동아리는 면접까지도 봤는데, 학기초마다 매점이나 빈 교실에 선배와 후배가 모여있는 광경은 흔한 수준이었다.] 일례로 1995년[* 당시는 오직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과 [[본고사]]만으로 대학에 가던 시절이라 동아리 활동과 특별활동에 교사와 학부모는 물론 '''학생들도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시절이다. 다만 [[5.31 교육개혁안]]에 의거하여 1996년부터 [[학교생활기록부]]가 도입되었고 1995년 이전부터 동아리 활동을 하던 학생들은 결과적으로 생활기록부에 적을 것이 많아지는 행운을 얻기도 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부천고등학교에서는 제2외국어 수업으로 독일어(10학급)와 프랑스어(2학급)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었고, 일본어는 선택조차 불가능했다.]에 창단한 일본연구반 ‘부일연’은 국내 언론[* [[경향신문]] [[1996년]] [[2월 2일]] 자 등]은 물론 일본 언론[* [[아사히 신문]], [[후지TV]] 등.]에서도 앞다투어 취재를 왔을 정도이며, 이 때문에 훗날 [[일본]] [[일본 내각총리대신|총리]]가 된 [[하토야마 유키오]]를 비롯한 일본 [[민주당(일본 1998년)|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창당 직후 방한했을 때 이 동아리 학생들을 만나고 가기도 하였다. 부일연 졸업생들 가운데 일부는 현재도 일본 학생들, 청년들과 함께 [[부천시|부천]]-[[가와사키시|가와사키]] 포럼 ‘하나’를 조직하여 활동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고등학교 축제가 그다지 활성화 되어 있지 않았던 시기에 학교를 개방하는 3일간의 축제를 운영하였으며, 하루는 체육대회, 하루는 동아리 발표회, 하루는 학교 개방의 날을 시행하여 부천~시흥 지역의 여중, 여고생들이[* 근처에 부천여중, 그리고 지금의 정명정보고가 당시 정명여상으로 여고였다. 거리가 좀 있지만 부천여고도 위치. 애당초 개방의 날을 시행하는 날이 토요일로 고정되어 있어서 오전 수업을 마친 근처 학교 학생들이 오곤 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축제를 지향했다고 보면 쉽다.] 가득 들어차는 기현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급식소 테이블을 무대삼아 락 밴드 동아리가 공연을 하고, 급식소 내부의 조리시설과 부천여자고등학교 앞 분식집 어머님들의 도움을 받은 동아리가 떡볶이나 순대, 떡꼬치를 판매하는 등 대학교 축제에나 있을 법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운영되었으나 현재는 폐쇄. 안전 문제도 있고, 위생관련 문제도 커서 학교에서 더 이상 개방을 하지 않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