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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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교 내 특정 임의 단체(급식, 매점 등)와 교내 학생 단체(동아리, 학생회 등)에 관한 서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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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고등학교
Bucheon High School
富川高等學校

파일:부천고등학교 교표.png



개교
1974년
유형
일반계 고등학교
성별
남자고등학교
운영형태
공립
교훈
정의, 협동, 창조
표어
雄飛하라! 世界는 부른다
교장
김영찬
교감
김용구
관할관청
경기도부천교육지원청
소재지
경기도 부천시 경인로92번길 70[1]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
2. 역사
2.1. 학교 연혁
3. 학교 상징
4. 교가
5. 학교 특징
6. 학교 시설
7. 학교 생활
7.1. 운동부
7.2. 학교 문화
8. 교복
9. 교통
9.1. 버스
9.2. 지하철
10. 출신 인물
11. 기타
11.1. 대중매체에서



1. 개요[편집]


경기도 부천시 송내동에 위치한 공립 고등학교이다. 부천 유일 공립 인문계 남고이다.


2. 역사[편집]


1974년 4월 20일에 개교하였다. 본래 ‘소사고등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할 계획이 있었으나 1973년에 부천군 소사읍이 부천시로 승격되면서 ‘부천고등학교’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실제 개교는 1974년 3월 2일에 했지만 학교 건물이 완공되지 않아 바로 옆에 자리잡은 부천공업고등학교를 임시로 빌려 수업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개교기념일인 4월 20일[2]은 본관 건물 준공일이다.

개교 당시에는 부천공고생들을 부천고 학생들이 두들겨패고 다녔다는 전설이 전해질 정도의 스즈란이였으나, 전략적으로 부천시내의 성적우수학생들을 부천고에 몰아주는 정책을 시행하면서 1980~90년대에 전국에서 이름난 대학입시 명문으로 손꼽힌 바 있었다. 서울이나 인근의 우수학생이 부천고로 전학오는 경우도 한 반에 두 세명은 껴 있었다. 2004년부터 부천시 지역에서 고교 평준화가 시행되고 특수목적고등학교들이 인기를 끌게 되면서 예전만큼의 명성을 지속하기는 어렵게 되었다.[3]


2.1. 학교 연혁[편집]


  • 1974년 1월 5일: 부천고등학교 설립인가
  • 1981년 3월 1일: 사이클부 창단
  • 1985년 3월 19일: 야구부 창단
  • 2013년 11월 10일: 생명의 숲 조성[4]
  • 2016년 3월 1일: 과학 중점 학교 지정
  • 2018년 2월 8일: 제42회 졸업식(388명, 졸업생 누계 21,762명)
  • 2018년 3월 2일: 제45회 입학식(10학급 250명)
  • 2019년 3월 1일: 최경연 교장 취임
  • 2022년 1월 6일: 제46회 졸업식(247명, 누계 22,909명)
  • 2023년 3월 1일: 김영찬 교장 취임
  • 2023년 3월 2일: 제50회 입학식(9학급, 245명)

3. 학교 상징[편집]


교훈은 ‘정의, 협동, 창조’이나 그보다 1992년에 새로 제정한 학교 공식 표어 ‘웅비하라! 세계는 부른다[5]’를 더 강조한다.


4. 교가[편집]


성주산 맑은 정기 그윽한 골에

의지로 세워 이룬 배움의 동산

새나라 이뤄나갈 우리의 사명

빛나라 햇살같이 부천고등학교

도원의 높은 기상 씩씩한 마음

슬기로 가꿔 이룬 희망의 전당

내겨레 지켜나갈 우리의 지성

빛나라 햇살같이 부천고등학교


5. 학교 특징[편집]


자리잡은 부지의 지형이 불균형하다. 언덕을 깎아 만든 학교가 다 그렇지만, 체육관 건물은 4층까지 올라가야 지상이 보이며 면학재 건물은 바로 옆에 4미터 절벽이 위치해 있다. 학교 남쪽은 커브도로와 맞닿아 있어 휘어 있고, 서쪽은 주택단지 때문에 올록볼록한 담장이 세워져 있다.

담장도 높은 편이다. 정문에서 왼쪽[6] 담장은 학교 안에서는 높지 않아보이지만, 앞에서 말한 4미터 절벽에 세워져 있어 밖에서 보면 6미터는 되보인다. 정문에서 오른쪽 담장은 오히려 밖에서는 2.5미터 밖에 안되보이지만, 안쪽에 10미터는 되는 언덕이 있다. 후문쪽 담장은 고속도로 방음벽을 세워놓았다.

2017년 8월 현재 주차장과 농구장 공사를 하며 4미터짜리 펜스를 운동장에 또 세웠다.

1974년도에 개교한 만큼 지어진 지 오래된 학교이기도 하고 남고 특성상 남학생들로만 가득 차 있다 보니 학교 실내나 교실, 체육관 등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많이 난다. 특히 비 오는 날은 건물 내 습도가 높아 매우 습하고 눅눅하며 노후화된 건물 특유의 오래된 냄새, 남학생들밤꽃 냄새 체취와 더불어 곰팡이 냄새가 매우 심하다.

타 학교에 비해 학급당 인원과 학급 수가 많은 편.[7] 편성과 학급당 28~30 명 정도의 인원 수를 보인다.
하지만 2017년도부터 그 인원수가 대폭 감소하여 10반 편성과 학급당 약 27명 정도의 인원 수를 보인다.
2021년도에는 9반 편성으로 줄었으며 학급당 24명~27명 정도의 인원 수를 보인다. (많은반은 28명까지 가기도 한다.)

일반계 고등학교인 만큼 학제 상 문이과 구분을 하는데, 아무래도 남고인지라 이과가 강세이다.[8] 문과반의 수가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들고 있으며, 학교 측에서도 상대적으로 수학, 과학 분야 활동과 대회를 더 많이 장려하는 분위기이다. 사실 문/이과 과목을 두루 잘하는 학생들이 많은 탓에 별로 의미 없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2016년부터 과학중점학교로 지정되어 해당 학년도 1학년은 2학년 진학 이후 새로 꾸려지는 과학중점과 2반으로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며, 과학중점반(과학중점과) 이외의 학생들도 과학 관련 활동을 접할 기회가 보다 많아지게 되었다.


6. 학교 시설[편집]


학교를 이루는 건물은 본관과 후관(+체육관과 실험실, 급식실), 야구부 기숙사, 야구부 훈련실, 매점(코로나와 공사로 인해 지금은 건물만 남아있고 영업은 하지않는다.)), 면학재로 많은 건물 수를 자랑한다.

2023년을 기준으로 본관은 1, 2학년, 후관은 3학년이 사용하고 있으나 학년 별 반의 위치는 비 정기적으로 변경된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집단 감염 예방을 위해 후관 1층에 일시적 관찰실을 마련하였다. 본관과 후관은 식당 이동 통로와 구름다리로 이어져 있다. 급식 배식을 위해 이동할 때 평상시에는 본관과 후관 사이 안뜰에서 식당 이동 통로로 올라가는 계단을 이용하지만, 비가 오는 날에는 본관에서 바로 식당 이동 통로로 가는 루트로 변경된다.

체육관 건물은 사실 후관과 같은 건물이 아니다. 체육관은 4층, 후관은 5층 구성이며 2층에 연결통로가 있다. 체육관 건물을 이용하기 위해선 야외 계단을 이용해야 하는데, 비가 들어닥치지는 않는다. 체육관 1층은 조리실과 보일러실이 위치하고, 2층은 급식실, 3층은 과학실[9]과 음악실이 위치하고, 4층은 체육관이 위치. 또한 체육관 건물에는 화장실이 없다.
2022년 4월 겨울방학에 걸쳐 체육관 리모델링공사가 완료되었다.

면학재는 도서실 및 세미나실, 야간 자율학습을 위한 자습실 등이 있는, 보기 드문 자습을 위한 별개의 건물이다. 1층에는 도서실과 세미나실이 있으며, 세미나실은 각종 강연에 이용한다. 2층은 탁구장, 3층은 1,2학년 자습실, 4층은 3학년 자습실로 이용한다.

2016년 5월 말, 면학재를 학생 기숙사로 개조하는 방안이 검토 중에 있다. 건물 3층과 4층을 리모델링해 약 150명이 들어갈 수 있는 기숙사로 개조한다는 방안인데, 본관이 40년도 넘은 노후화된 건물[10]이라서 새로 지어야 할 판에 뜬금없이 면학재를 기숙사로 리모델링한다는 것은 도대체.. 상위권 학생들[11] 의 생활 사이클을 학교생활 위주로 맞추어 고밀도의 스케줄을 운영하여 학업 성취도 증진을 목표로 하는 방침인 듯한데, 6월 현재 투표를 거쳐 결정할 예정이었으나 이 방침은 무마되었다.

신관에만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원래는 본관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려고 했으나, 관련 업자가 본관에 지으면 본관이 무너질 수 있다고 하여서 신관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한것이라는 카더라가 있다. 하지만 2017년 12월부터 본관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공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2018년 5월 완공되었다. 이로써 2개의 교사 전용 엘리베이터가 생겼다.

야구부 훈련실은 축제 때 체험의 일부로 개방하므로 야구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들어가서 야구부가 던져주는 공을 쳐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이외에도 삼성재단이 제공해 준 1억원짜리 작은 숲이 면학재 앞에 있다. 하지만 학생들 반응은 시큰둥하다. 가끔 학생들이 벤치에 눕거나 앉아 노는 정도.

정문은 교훈을 비롯하여 나름 고등학교 다운 교문이지만 후문은 교도소를 방불캐한다. 2010년 이전만 하더라도 후문위에 쇠창틀에 청판으로되어 내가 교도소로 들어가는건지 학교로 들어가는건지 알수가 없었다. 현재는 쇠창틀에 연두색 판이 붙어있다.

교장실은 본관 1층에 위치하고 있다. 교장실 유리창은 반투명 유리로 되어서 복도를 지나며 학생들이 힐끔힐끔 볼 수 없다.

도시명이 들어가는 고등학교이긴 하지만, 부천역이나 중동신도시같은 부천시의 주요 상권 근처는 아니고 중동역에 가깝다.

학교 운동장의 배수 환경이 매우 좋다. 며칠 동안 폭우가 쏟아져도, 비 그치고 한 시간이 지나면 땅이 마른다. 이렇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는데, 학교를 공사할 당시에 운동장에 배수 시설을 하던 업체가 부도가 나서 업체를 새로 선정했는데 그 업체도 망했다고 한다. 결국 세번째 업체가 운동장 공사를 마무리했는데, 이 과정에서 기존 업체와 새 업체 사이에 인수인계가 되지 않아 새 업체가 처음부터 다시 공사하는 상황을 반복한 것이다. 그 결과, 규정에 따라 20m 간격으로 묻혀 있어야 할 배수관이 5m 간격으로 묻혀있게 되었고, 이 때문에 운동장 물빠짐이 환상적이 되었다고 한다.[12]

2019년 현재 40년이 넘어 노후된 본관의 외벽공사를 진행중이다. 사실은 외벽공사가 아니라 노후화된 벽에 새 외벽을 덧씌우는 것이다.[13]
2021년 후관 외벽공사를 시작해서 여름방학이 끝난후 완료 되었다. 근데 비둘기들이 그걸 많이 싸 놓아 새 외벽인데 바로 더러워 지고 말았다. 이제 비가 올때는 본관[14]에서 3층에서 4층이 비둘기 서식지가 되었으며 날씨가 좋은 날에는 새로운 외벽이 생긴 후관이 비둘기집이 된다.

7. 학교 생활[편집]



7.1. 운동부[편집]


야구부사이클부를 운영하고 있다. 야구부에 대해서는 문서 참조. 조호성 선수 등을 배출한 사이클부는 한때 아시아 최강이었으며, 지금도 전국 최고로 손꼽힌다. 그리고 지금은 사라진 양궁부에서는 1988 서울 올림픽 양궁 금메달리스트 전인수 선수를 배출한 바 있다.


7.2. 학교 문화[편집]


1990년대부터 자발적인 동아리 활동이 성행하였다.[15] 2010년대인 현재보다 1990년대의 동아리 활동이 더 성행했을 정도다.[16] 일례로 1995년[17][18]에 창단한 일본연구반 ‘부일연’은 국내 언론[19]은 물론 일본 언론[20]에서도 앞다투어 취재를 왔을 정도이며, 이 때문에 훗날 일본 총리가 된 하토야마 유키오를 비롯한 일본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창당 직후 방한했을 때 이 동아리 학생들을 만나고 가기도 하였다. 부일연 졸업생들 가운데 일부는 현재도 일본 학생들, 청년들과 함께 부천-가와사키 포럼 ‘하나’를 조직하여 활동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고등학교 축제가 그다지 활성화 되어 있지 않았던 시기에 학교를 개방하는 3일간의 축제를 운영하였으며, 하루는 체육대회, 하루는 동아리 발표회, 하루는 학교 개방의 날을 시행하여 부천~시흥 지역의 여중, 여고생들이[21] 가득 들어차는 기현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급식소 테이블을 무대삼아 락 밴드 동아리가 공연을 하고, 급식소 내부의 조리시설과 부천여자고등학교 앞 분식집 어머님들의 도움을 받은 동아리가 떡볶이나 순대, 떡꼬치를 판매하는 등 대학교 축제에나 있을 법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운영되었으나 현재는 폐쇄. 안전 문제도 있고, 위생관련 문제도 커서 학교에서 더 이상 개방을 하지 않는다.


8. 교복[편집]


파일:부천고등학교 교복.jpg파일:부천고등학교 교복2.jpg

동복은 세로 스프라이트 흰색-하늘색 줄무늬 와이셔츠에 자홍색 넥타이, 그리고 목과 팔 라인에 흰색 줄이 들어간 짙은 남색 조끼, 그리고 남색 마이,[22] 회색 바지로 이루어져 있다.

하복은 얇은 남색 바지, 동복 셔츠와 동일한 무늬의 반팔 셔츠단추달린 두개의 주머니가 하복이다.

2016년 들어 생활복을 추가하는 방안이 신설되었다. 투표를 거쳐 여부를 결정 하여 현재 생활복 추가방안은 통과되었다. 그런데 생활복은 상의만 존재하며 하의는 기존의 교복을 입어야 한다.

체육복은 학년별로 초록색, 파랑색(하늘색), 빨강색 운동복 상하의 였으나 2021년 이후로 짙은 남색, 검은색 운동복 상하의로 변경되었다.
(2023년기준 1학년과 3학년의 체육복 색상이 동일하다)

9. 교통[편집]



9.1. 버스[편집]



9.2. 지하철[편집]



10. 출신 인물[편집]


야구부 출신들은 부천고등학교 야구부 문서를 참조.

2023년 통합부천청년회의소(JC) 초대회장


11. 기타[편집]


  • 2000년대 초반 즈음에 지금 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옮기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학교 주변 상인들의 반발로 인해 무산되었다.

  • 현재는 주 5일제이기 때문에 사라진 문화가 됐지만, 1990년대 교복부활 이후로도 부천고는 토요일만큼은 1980년대 교복자율화시대마냥 사복으로 등교할수있었다.

11.1. 대중매체에서[편집]


  • 2014년 영화인 18: 우리들의 성장 느와르의 배경이 부천고등학교이다. 한윤선 감독 본인의 경험과 주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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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송내동 437[2] 장애인의 날이기도 하다.[3] 그래도 부천시 소재 고등학교 중에선 입시 명문이라고 보는게 맞다.[4] "이 숲은 삼성생명재단에서 세워준 숲입니다"라는 팻말이 붙어있다.[5] 범박고에도 같은 표어가 적힌 비석이 있다.신설학교로 전근간 교사들의 영향인듯 하다.[6] 학교 안쪽기준[7] 학급 당 인원수는 24명~26명정도 이다.[8] 심지어 이공계열 진학하는 학생의 수가 너무 적어 이공계열 인재부족 문제가 사회면 신문에 실릴정도의 시대였던 2000년대 초중반에도 이과문과 비율이 1:1이거나 이과가 더 많았다.[9] 물, 화, 생, 지 별로 과학실이 따로 있다.[10] 실제로 2016년 장마철에 화장실 침수사건이 벌어졌다...[11] 대표적으로 신설될 과학중점반[12] 1994년 간행한 부천고등학교 20주년 기념 교지 '성주'에서 확인.[13] 2019년 5월 중순경에 공사는 완료됐고, 현재는 화강암 판넬로 덮인 현대적인 정면을 볼 수 있다. 후면은 창 사이에만 판넬을 붙이고 남은 부분은 노란색 페인트로 칠했다.[14] 후관쪽. 즉, 뒷편[15] 자발적으로 시작했으나 후에 동아리운영시범지정학교로 지정되면서부터는 1인 1동아리를 학교에서 강요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상은 당시 학교마다 운영하던 CA부서를 이름만 바꿔서 운영했다고 봐야하고, 차이점은 개설 자체를 학생 자율에 맡겨놨던 점.[16] 신입생 모집도 자율적으로 하다보니 인기있는 동아리는 면접까지도 봤는데, 학기초마다 매점이나 빈 교실에 선배와 후배가 모여있는 광경은 흔한 수준이었다.[17] 당시는 오직 수능본고사만으로 대학에 가던 시절이라 동아리 활동과 특별활동에 교사와 학부모는 물론 학생들도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시절이다. 다만 5.31 교육개혁안에 의거하여 1996년부터 학교생활기록부가 도입되었고 1995년 이전부터 동아리 활동을 하던 학생들은 결과적으로 생활기록부에 적을 것이 많아지는 행운을 얻기도 하였다.[18] 아이러니하게도 당시 부천고등학교에서는 제2외국어 수업으로 독일어(10학급)와 프랑스어(2학급)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었고, 일본어는 선택조차 불가능했다.[19] 경향신문 1996년 2월 2일 자 등[20] 아사히 신문, 후지TV 등.[21] 근처에 부천여중, 그리고 지금의 정명정보고가 당시 정명여상으로 여고였다. 거리가 좀 있지만 부천여고도 위치. 애당초 개방의 날을 시행하는 날이 토요일로 고정되어 있어서 오전 수업을 마친 근처 학교 학생들이 오곤 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축제를 지향했다고 보면 쉽다.[22] 교복회사에 따라서 회색, 밤색 등의 마이도 있다. 처음 교복지정당시 캐시미어재질로 추진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