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벵거볼 (문단 편집) == 전술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벵거볼 페너트레이션.gif|width=100%]]}}} || 벵거의 전술에서 가장 큰 핵심은 크게 두 가지였다. '트랜지션'과 '페너트레이션', 즉 ''''전환의 속도''''와 ''''순간적인 수적 우세를 만들어 주는 침투''''이다. 문제는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해내느냐 하는 것이 중점이었다. 창조적이고 기술적인 선수들을 기용해 짧은 패스를 활용하는 것이 해법이었다. 한 편으로는 동시에 피지컬적인 요소를 간과할 수 없었다. 지속적인 육체적 활동, 즉 패스 앤 무브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짧은 거리를 끊임없는 반복해서 뛰어야 하는 민첩함과 기동력을 요구하는 전술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작은 공간에선 민첩함이 떨어지는 덩치 큰 선수보다는 작고 민첩한 선수들이 선호 되기 시작하였고, 나이가 많은 선수보단 젊은 선수들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그 무렵 [[세스크 파브레가스]]라는 어리고 호리호리한 창조적인 선수를 데려왔다. 그리고 훨씬 덩치가 크고 나이가 많던 팀의 전설들이 물러났다. 과거 [[파트릭 비에이라]]는 물리적인 힘으로 압박을 버티고 뚫어내며 전진했지만, [[세스크 파브레가스]]는 힘은 약하지만 비에이라보다 더 나은 시야와 패스를 갖고 있었다. 이로 인해 90년대까지 유행하던 [[데니스 베르캄프|섀도우 스트라이커]]에 대한 의존도를 버리고, 중원에서 곧장 창조적인 '트랜지션'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 더블과 무패 우승을 달성한 세대와 파브레가스를 중심으로 한 세대의 결정적인 차이는 경기 콘셉트가 달랐다는 것이다. 과거 세대의 아스날은 중앙 미드필더들이 종종 오버래핑을 시도했지만 기본적으론 4-4-2 대형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상대 중원을 상대하고 두 명의 공격수를 막는 데 집중하기 위해서 자리를 거의 비우지 않는 게 기본이었다. 따라서 팀에서 창의성을 발휘하는 가장 큰 포지션은 [[세컨드 스트라이커]]였던 [[데니스 베르캄프]]였다. 따라서 베르캄프가 볼을 받기 위해 중원으로 내려올 경우, 전방에서 공격적으로 유의미한 움직임을 가져가는 선수들의 숫자가 부족하거나 지연되는 탓에, 수비가 내려앉아 정돈이 된 팀을 상대로는 공간을 찾지 못해 고전했다. 또한 벵거의 팀은 항상 풀백을 높게 올려 수적 우세와 넓이를 얻었기 때문에 뒷공간을 늘 노출하고 있었다. 허나, 당시만 해도 빠른 속도로 펼쳐지는 공·수 전환 속에서 키핑력과 볼 점유에 대한 중요성을 크게 못 느꼈던 프리미어리그 팀들은 공을 빼앗기거나 턴 오버를 범한다는 것에 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고 아스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결국 서로가 육체적인 활동에 기반한 짧고 반복적인 트랜지션만이 이루어질 뿐이었던 것이다. 이후 대륙 축구 도입 의제가 떠올랐고, 맨유는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 [[클레베르손]], 에릭 젬바 젬바, [[안데르손]] 등을 영입했고[* 물론 이들은 모두 실패작이 되었다.] , 아스날은 기술적인 남미 선수들과 스페인 리그 선수들을 영입했다. 또한 유럽 최고의 젊은 플레이메이커들이었던 [[토마시 로시츠키]]와 [[알렉산드르 흘렙]]을 데려오면서 기술적인 축구로의 전환을 시도하게 된다. 기술적인 축구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했다. 전임 선수들처럼 피지컬이 동반된 공간 침투는 분명히 위력적이었지만, 볼을 지켜내고 턴 오버 횟수를 줄이는 것이 점점 중요해져갔기 때문이다. 역습 후 낮은 위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높은 위치에 머물며 계속 압박하고 곧바로 빠르고 기술적인 트랜지션을 하는 것이 당시까지의 축구의 흐름이었다. 아스날은 크고 빠른 선수들에서 작고 기술적인 선수들로 세대교체하면서 리그와 유럽 대회에서 모두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축구를 만들어 냈다. 허나, '벵거볼'이 축구 전술로서 크게 의의를 가졌던 시기는 이 시기까지가 마지막이었다. 빠르고 기술적이고 세련된 트랜지션을 무기 삼아 유럽 무대를 장악하던 잉글랜드 팀들의 패권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트랜지션]]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좀 더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한 [[펩 과르디올라]]의 [[FC 바르셀로나]]가 초현실적인 점유율 축구를 선보이면서 상대편에게 전환의 기회 자체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르센 벵거와 아스날은 그런 바르셀로나를 맞이하여 직접 유린을 당해보며, '우리에게 볼이 없을 때 얼마나 팀은 비참해지는가'를 사실상 처음 경험하게 된다. 물론 단 한 번 바르셀로나를 이겼던 경기에선, 바르셀로나를 유린했던 골은 '트랜지션' 상황에서의 빠르고 정교한 전개라는 아스날이 자랑하는 장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후 파브레가스 세대가 끝난 후의 벵거볼은 예전과는 조금 달라졌는데, 중원에서 직접 기술적이고 빠르게 트랜지션하고 마무리하는 것이 파브레가스 세대였다면, [[펩 과르디올라]]가 축구계에 등장한 후를 기점으로 점유율에 대한 재고찰이 이루어져, 아스날 역시 상대 진영에서 볼을 좀 더 오래 갖고 있는 것을 방점으로 찍게 되었다. 점유에 불리한 투 톱을 버리고 원 톱으로 전환했으며, 그 원 톱은 주로 덩치가 크고 골문을 등지고 스크린플레이를 할 수 있는 타겟맨이 선호 되었다. [[마루앙 샤막]], [[올리비에 지루]] 등은 그러한 기조에서 영입되었다. 물론 [[로빈 반 페르시]]가 포스트 플레이까지 해내는 완벽한 선수로 성장했기에 [[마루앙 샤막]]은 피해를 보았다.[* 훗날 샤막은 벵거가 자신을 위해 반 페르시와 공존하는 전술로 바꿔준다는 말을 했지만 지키지 않았다면서 서운해하였다]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아스날 픽앤롤.gif|width=100%]]}}}||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Wengerball(12-13).gif|width=1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Wengerball(14-15).gif|width=100%]]}}}|| 이들의 영입은 '트랜지션' 상황이 줄어드는 만큼 좀 더 상대방 진영에서 오래 머무는 상황이 많아지고, 자연스럽게 뒤 공간을 노리는 발 빠른 선수보다 직접 몸을 부딪히며 경합하는 상황이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또한 아스날의 기조였던 수적 우세 유지를 위한 강도 높은 페너트레이션은 계속 이어졌기 때문에, 지공 상황에서 타겟맨을 기점으로 2대1 패스를 노리는 빈도가 매우 늘어갔다. 이후 고전적인 10번이었던 [[메수트 외질]]과 [[티에리 앙리]] 이후로 그간 가져보지 못했던 타고난 크랙 유형의 선수였던 [[알렉시스 산체스]]를 필두로 수비력이 거의 없는 선수들을 기용하면서 사실상 공·수를 오고 가는 강도 높은 트랜지션과 토털 풋볼에서 벗어나, 볼을 잡았을 때 파괴력과 지배력을 높이는 공격 지향적인 축구로 변모하였다. 또한 산체스를 영입하면서 그간 거의 쓰지 않았던 전술인 [[아이솔레이션]]도 허용하면서 산체스 개인의 기량을 믿고 의지하기도 했다. 그로 인해 아스날은 한때 리그 우승에 근접했으나 [[레스터 시티 FC]] 동화의 희생양이 되었다. 이후 '벵거볼'은 더 이상 진화하지 못한 채 벵거와 함께 역사의 막을 내리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