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두혈통 (문단 편집) === '혈통' 자체의 정치적 날조 문제 === >''' [[공산주의 유머/북한|공산주의 유머]] - 동무는 [[주체사상|주체조선]]에 어울리지 않소'''. >---- >"동무의 집안은?" > >"[[김응우|증조부]]가 [[지주#s-2|지주]]놈의 [[묘지기]]였소." > >"계급주의의 개였군. [[김보현(북한)|동무의 조부]]는?" > >"[[대한제국|리조시대]]에 지방관을 하댔지요." > >"[[봉건제|봉건잔재]]의 [[끄나풀]]이구만기래, [[김형직|동무의 부친]]은 무엇을 하댔소?" > >"한약방을 운영하는 의사였다오."[* 게다가 이 사람은 공산주의자들에게는 진료는 커녕 약조차 주지 않았을 정도의 '''[[개신교]]도 반공주의자'''였다! 이 때문에 공산주의 단체에게 원한을 사 여러 번 테러를 당한 끝에 '''공산주의자에게 암살 당했다'''.] > >"인텔리 분자였구만. 집안에서 믿는 종교 같은 것은 있소?" > >"[[강반석|어마니]]의 성함이 [[베드로]](반석)였댔소." > >"이거이거, 종교까지 믿다니!![* 모친 강반석 뿐만 아니라 부친 김형직 역시 [[개신교]]를 믿었다. 즉, 양친이 모두 [[기독교]]인이었던 것.] 네놈 집안은 완전히 [[반동(정치)|반동]] 놈의 집구석이구만! 이런 반동 놈의 새끼!! 어디 잘난 이름이나 한 번 들어보자우!" > >---- > >"'''[[김일성]]'''." [[김일성]]의 가족 관계와 출신 성분을 잘 생각해보면,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어울리는 사람도 아니라서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래서 북한이 정말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였다면, 김일성의 집안은 [[자가당착|가장 먼저 숙청을 당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애초에 '백두혈통'란 단어 자체가 김정은 3대 세습 이전까지는 전혀 없었던 단어였다'''. 백두혈통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진 시기는 2000년대로 쓰인 지 오래되지 않았다. 2008년에 [[김정일]]이 뇌출혈로 쓰러지고 부랴부랴 후계 구도를 짜는데, [[김정은]]의 나이가 너무 어리고 후계자 절차를 전혀 밟지 못했기 때문에 '혈통'을 강조하기 위해서 등장한 개념이다. 물론 김일성 집권 시기에도 세습통치를 추진하려는 움직임은 있었다. 2대 김정일도 혈통빨을 많이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김정일은 최소한 김일성 생전에 후계 구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권력 암투도 여러 차례 벌였으며, 당과 군 내부 요직을 두루 맡으면서 최소한 기본적으로 '차기 지도자'의 길은 밟았다.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아버지 김일성의 아들로 뒤를 이은 것이지만 명목상으로는 후계를 맡을 만한 유력한 정치인 정도의 위치는 됐었다. 당시 김정일은 김일성의 정처 [[김정숙(북한)|김정숙]]의 장남으로 1964년에 로동당에 입당하여 [[선전선동부]] 선전지도원부터 차곡차곡 올라와, 김일성의 친동생이며 자신의 숙부인 [[김영주(북한)|김영주]]를 [[조선로동당 조직지도부]] 부장 자리에서 밀어냈고 김일성의 후처 [[김성애]]와 이복동생 [[김평일]]의 라인들을 대거 [[숙청#s-2|숙청]]하고 나서야 비로소 1972년 당중앙위원회에서 김일성의 후계자 자리로 추대 받았다. 그냥 낼름 집어먹듯이 후계자가 된 것이 아니고 삼촌 김영주, 이복동생 김평일과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쟁취한 것이다. 김정일은 후계자로 낙점된 이후에도 2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후계자 자리에서 산전수전을 겪었고, 1991년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에 추대되어서야 군권을 틀어쥐면서 사실상의 실권자가 되었다. 그리고 1994년 아버지 김일성의 사망 이후, 유훈통치가 끝난 1997년에야 총비서 자리에 올라 공식적인 집권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경쟁자들을 보면 알겠지만 흡사 [[재벌]]들의 후계자 경쟁처럼 애초부터 혈통 간의 다툼이긴 했지만, 그래도 1964년부터 정치 활동을 시작하여 30년 동안 요직을 두루 맡았고 기본적인 소양은 쌓았기 때문에 혈통 외적으로도 인정 받을 여지는 있었다. 소련이나 중국 같이 공산당 [[일당독재]]가 이루어지는 국가라 해도 차기 '지도자'는 이렇게 권력 싸움에서 승리한 인물이 받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북한이 비록 공산주의 개념을 70년대부터 내다 버리고 [[주체사상]]으로 일찌감치 갈아탔다곤 하지만 완전한 '세습 국가'로 발돋움한 것은 2000년대 이 백두혈통이라는 개념이 생기면서부터다. 김정일은 가계 내부의 적 외에도 [[갑산파]] 같은 정치 반대 세력도 있었고, 최소한의 권력 승계를 위한 다툼은 했으며, 김정일의 승계에 전 세계 국가들이 경악했던 일화에서 볼 수 있듯이 부자(父子) 세습이라는 개념 자체가 당대 북한에도 없던 전무후무한 사태였기 때문에 집권 이전이나 직후에도 딱히 '혈통'을 내세운 적은 없었다. 김일성-김정일 교체 시기, 과거 북한 인사들은 남한 인사들을 만날 때마다 김정일은 절대 세습이 아니며 [[라울 카스트로|능력으로 이어받았다]]고 주장했었다. 대외적으로 '세습 통치'라는 것이 떳떳하지 못한 일이라는 것을 북한 고위직들도 알고 있었으며 겉으로라도 세습했다는 개념을 부인했다는 것이다. 1974년 제정된, 북한의 초월적 헌법이자 [[주기도문]]이나 다름없는 [[당의 유일적령도체계확립의 10대원칙]]에 "김일성의 대를 이어 혁명 위업을 완수하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여기서 "대를 잇는다"는 말은 어디까지나 김일성 다음 지도자도 이를 따르라는 말이었고 혈통까지 제약한 구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김정일 집권 이후 북한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와 함께 교묘하게 이 말은 '김일성의 핏줄을 이어받은 사람'이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탈바꿈 되었으며 2013년, 김정은 집권 이후 이 10대 원칙이 완전히 혈통 우선 논리에 따라 개정되면서 "'''오직 김일성, 김정일의 혈통을 이어받은 후손만이 대를 이어 혁명과업을 완수한다'''"는 명분으로 3대 왕조 세습을 정당화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3대 김정은이 [[고용희|첩]]의 자식으로 출신부터 떳떳하지 못하고 어린 시절엔 원산 특각에서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채 숨어 지냈고, 커서는 스위스에서 사실상 방치되었기 때문에 '''조선로동당이나 조선인민군 내부에 지지 기반은 커녕 인맥도 없고, 존재조차 공식적으로 부인되었던''' 김정은에게는 이런 억지식 개념이라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김정일도 김정은에게 후계자 승계 밑작업을 준비하려고 했던 듯 보이나, 김정일의 이른 죽음으로 제대로 시작되기 전에 승계가 이루어졌고, 빈약한 활동 기록을 보완하기 위해 꺼내든 것이 결국 '백두혈통'인 것. 하필 백두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북한에서는 [[백두산]]을 젊은 시절 김일성의 항일 터전이자 김정일의 출생지라고 선전하기 때문이다. 김정일의 실제 출생지는 러시아의 도시 [[하바롭스크]]지만, 러시아 변방에서 태어났다는 사실보단 영산 백두산이 더 있어 보이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백두산 밀영에서 태어났다고 거짓 선전을 한다. 김정일이 태어나지도 않은 백두산의 한 봉우리에 '[[정일봉]]'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백두산 밀영'이라는 이름으로 가짜 김정일 생가를 지으며 거짓 [[구호나무]]를 만들어 선전할 정도로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과 김정일을 동일시하는 [[프로파간다]]를 벌였다. 이 날조된 출생지를 얼마나 중요시하냐면 북한 TV 뉴스 후에 하는 날씨 예보에서도 백두산 밀영을 [[평양]] 다음인 두 번째로 소개한다. 북한에서는 날조된 군대인 [[조선인민혁명군]]의 '창건일'을 [[조선인민혁명군 창건일]]이라는 이름의 공휴일로 지정하며 [[열병식]]을 개최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북한 기준으로는'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김일성의 생가인 평양 시내 [[만경대고향집]] 역시 북한에서는 성역 대접을 받는다. 단, 평양 시내에 있기 때문에 백두산 밀영과 달리 일기예보에는 그냥 평양이란 도시로 퉁친다. '백두혈통'이라는 용어는 이 백두산=김일성-김정일 개인숭배 선전을 [[김정은]]에게 대입시키기는 작업이다. "김정은은 백두산의 정기를 받아 태어난 김정일의 자식이므로 혈통 자체가 우월하다"는 헛소리를 지어내고 있는 것이다. 지극히 비과학적이고, 상식적으로도 말도 안 되는 주장이지만, 전근대적인 사고가 팽배한 북한 정권은 '백두혈통'이라는 선전 문구를 자뭇 자랑스럽게 퍼트리고 있다. 그러나 김정은이 100% 백두혈통인 것도 아니거니와, 세계적으로도 시대에 한참 뒤떨어진 혈통주의적 사고이므로 외국에서는 비웃음을 당할 뿐이다. 어쨌든 북한 정치계에 가장 강력한 정통성을 가진 일족이므로 백두혈통이 아닌 한 북한의 통치 세력으로 인정 받을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12202205385|#]] [[최고존엄]]과 함께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 새롭게 나타난 [[프로파간다]] 문구이다. 항간에 백두혈통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혈족 모두를 뜻하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가 있지만 백두혈통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뿐으로 넓게 봐야 [[김경희(1946)|김경희]]나 [[김여정]]처럼 남자가 아니라 후계에 위협이 되지 않을 만한 여자 형제만 껴주는 정도다. 그래서 김정은의 친형 [[김정철]]은 존재 자체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이복형 [[김정남(북한)|김정남]]은 유부녀 [[성혜림]]을 이혼시키고 동거를 하다가 낳은 [[사생아]]이기 때문에 김일성에게 손자로 인정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평양의 늙은 당 간부들은 김정일의 정처 김영숙이 딸 [[김설송]]과 김춘송의 손을 잡고 명절마다 김일성에게 새배하러 갔던 걸 기억하여 성혜림은 물론 고용희는 존재 자체를 숨겼고, 김정남이 태어난 1971년은 김정일이 공식 후계자로 지명되기 이전이라 정적에게 공격 당할까 봐 철저하게 존재를 숨겼다. 고용희는 한때 우상화 시도가 있었으나 출신이 알려질 경우 부작용이 더 크다는 판단으로 우상화 자료들은 모조리 회수되어 폐기되었고, 관여자는 모두 [[정치범수용소/북한|정치범수용소]]로 처넣었다. 공식적으로 김정은의 어머니는 '''선군의 어머니'''라는 모호한 호칭으로 언급되며 김정일과 혼인했는지 여부 역시 교육하지 않으며, [[재일교포]]에 제주도 출신 가계를 철저히 숨기기 위해서 발설 시에는 정치범으로 취급하고 당과 수령을 모략한다는 명분으로 숙청된다. 소위 백두혈통이라는 김씨 삼부자는 공통적으로 [[비만]]인데, '''지도자는 풍채가 좋아야 한다는''' 전근대적인 발상에서 일부러 살을 찌워서 그렇다고 한다. 21세기에 경제적으로 못사는 [[후진국]] 중에는 이런 풍조가 남아 있음을 감안하면 신빙성이 아예 없지는 않은 주장이다. [[김정철]], [[김한솔]]과 같은 방계 혈통은 [[비만]]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실 김일성은 1945년 한반도로 들어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마른 체형이었다. [[:파일:jewgjogjdjgdlkfjwklfwfe.jpg|1]] [[:파일:김1성.jpg|2(왼쪽)]] [[:파일:일성이.jpg|3]] 김일성은 [[동북항일연군]] 활동을 하다가 만주국의 항일 [[빨치산]] 토벌을 피해 1940년에 소련으로 도망가 88 국제 여단에서 실전 참가 없이 훈련을 받았다. 이 때에는 그래도 만주에서 실전을 치르던 시절보다는 의식주가 나아졌겠지만 소련의 일개 군인(대위)이었으므로 마른 체형을 유지했다. 이후 1945년 9월 소련의 수송선을 타고 입국한 뒤에는 북한의 지도자가 되어 경제적으로 당연히 넉넉하게 살게 되었으므로 차츰 비대하게 몸집이 불어난 것이다. 김정은 역시 어릴 땐 [[농구]]를 좋아하고 스위스에서 학교를 다니던 청소년기까지만 해도 심한 비만까지는 아니었다. [[김여정]]의 경우 [[마약]] 중독으로 살이 빠져 폭삭 늙은 걸로 추정하고, [[김정철]]은 몸짱이 되려고 [[스테로이드]] 따위를 주입하다 부작용으로 호르몬 질환이 생긴 걸로 알려졌다. 현재 김여정은 마른 편이고 김정철은 보통 정도의 체형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