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방앗간 (문단 편집) == 중세 유럽에서 == 중세 유럽의 방앗간은 영주의 직속 시설이었다. [[쌀]] 문화권인 [[동아시아]]와 달리 [[밀]]은 농사짓는다고 바로 먹기 어렵다. 가루를 빻는 것도, 빵으로 구워내는 것도 일개 가정집에서 하기 힘든 작업이다. 그래서 방앗간을 거쳐야 했고, 중세 유럽의 권력자들은 방앗간을 이용해 사람들을 통제했다. 모든 영민들은 의무적으로 방앗간에 이용료를 내고 곡물을 빻아야 했으며, 이 이용료는 고스란히 영주의 수입이 되었다. 방앗간지기는 별도의 수입이 없었기 때문에 영민들이 맡긴 곡물을 빼돌려 먹고 사는 것이 관행이었다. 영민들은 이 이용료에 방앗간지기의 횡령까지 더해지자 손실을 덜기 위해 맷돌 같은 대체재를 이용했지만, 방앗간지기는 이런 '''불법 기구'''들을 적발해 영주에게 신고하는 역할도 담당해야 했다. 곡물은 특성상 탈곡할 때 한 차례 양이 줄고, 제분을 하면 남은 양이 다시 줄어들기 때문에 따로 빼돌리지 않아도 방앗간에서 들어가는 양과 나오는 양이 크게 차이나게 된다. 이 점 때문에 색안경을 끼고 보기 딱 좋았던 것. 그래서 중세 유럽에서 방앗간은 지탄의 대상이었으며, 장물에 손을 댄다는 식의 불명예스럽고 사실무근의 소문이 돌았다. 가령 방앗간지기는 손바닥에 여섯 번째 손가락이 달려서, 곡물가루를 훔친다는 등의 풍문이 존재했다[* 이런 점은 고대 서양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로마의 권력자인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그의 정적인 [[옥타비아누스]]의 조상이 [[빵집]]을 운영했다는 점을 거론하며 추접하고 비열한 사기꾼의 후손이라고 비난하는 악선전을 퍼부었다. 출처: 가루전쟁/ 도현신 지음/ 이다북스/ 155쪽].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