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현준 (문단 편집) ==== 2010 시즌 ==== 2010시즌 00대비 캠프에서 다시 또 희망적으로 신인인 [[박종훈]]과 묶여, [[김성근]] 감독의 2년 뒤에 SK의 1, 2선발 재목이라는 칭찬을 들었다. 역시나 여기에는 '열심히 한다면'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2009시즌 마무리캠프에서도 가장 실력이 향상된 선수란 말을 들었다. 하지만 시즌 첫 등판인 4월 2일 두산전에서 크게 지고 있는 상황에서 패전처리로 나와 홈런 1개와 볼넷 2개, 몸에 맞는 볼 1개를 깔끔하게 내주면서 SK 팬들에게 실망감을 한다발 선사했다. 그리고 이어진 아름다운 2군행. 1군에 다시 복귀한 후 4월 16일 삼성전에 7점차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 나와서 산뜻하게 볼질을 하면서 다시 또 아름다운 2군행. 호성적을 보였던 LG의 신인 신정락과 비교되어 더더욱 돋보였다. 캠프에서 나오는 뉴스를 통해 높아졌던 기대치와 현실의 괴리감과, 야구보다는 싸이질을 더 좋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싸이지엥이라는 말을 들었다. 초반에 보여준 미니홈피에서의 글들은 싸이용 허세가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왔다. 또한 악플러에 대한 대처에서 '동네 개도 들어오는 박현준 홈피'로 메인을 바꾸는 일이 생기면서 SK 와이번스 갤러리에서는 과거의 일화[* 2008년 방영된 [[OBS]] [[불타는 그라운드]]에서 본인이 직접 증언한 바에 따르면 "강아지 한 마리 가져오면 배트를 준대서 할머니 몰래 강아지를 가져 갔더니 ([[계형철]]) 코치님이 강아지는 가져가고 경기 중에 부러진 배트 조각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 방송에서 본인이 계형철 코치에게 그 일화를 말해주자 [[계형철]]은 기억도 못했다. 본인이 "혹시 기억나세요?"라고 묻자 "당연히 잘 생겼으니 기억나지."라며 얼버무렸다.]와 애견성향을 묶어서 '[[개장수]]'라는 맛깔나는 별명으로 불렀다. 5월 12일 시즌 첫 연장이며, 12회 막바지까지 전혀 승부를 알 수 없는 롯데와의 대접전에서 승리를 거둔 SK팬들에게 난데없는 소식이 당도하였다. 당연히 [[게리 글로버]]로 예상했던 13일 선발에 뜬금없이 선발로 예고된 것으로 이는 커리어 사상 첫 1군 선발 등판이었다. 이는 두산전에 대비하여 글로버를 아끼는 포석으로 이뤄진 것으로, 박현준이 2군에서 지난 등판에 두산 2군과의 경에서 9회초 첫 타자까지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것이 연계되어 이뤄진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SK 팬들은 대패닉에 빠졌다. 그리고 이어진 5월 13일 경기. SK 팬들은 끝나지 않을 1회말이라고 잔뜩 불안해했지만, 의외로 제구가 되면서 리그 최강인 롯데의 클린업을 셧아웃 시켰다. 그리고 60구를 넘어가면서 체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면서 5회에 2실점 1자책점을 하긴 했지만, 4이닝 4피안타 1볼넷 6탈삼진 2실점 1자책점으로 기대도 하지 않던 호투를 보여줬다. 따라서 다음 등판이 기대되는 상황이었다. 트레이드 직전인 2010년 중반까지 그에 대한 SK팬들이 보인 기대감과 실망감은, 당시 [[김광현]]이 경력 4년차면서도 그때까지 1군 엔트리의 막내였던 상황과 결부된다. 다시 말해 기대치가 조금이라도 되는 신인이란 게 거의 없었다. 창단 초기부터 스카우터의 알 수 없는 지명 삽질,[* 그 시초는 2001년 신인지명 당시 신생팀 혜택으로 3명을 우선지명할 수 있었는데 문제는 '''[[이대호]]를 거르고''' [[김건한|김희걸]], [[김동건(야구)|김동건]]을 지명한 것. 다만 당시 기준으로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했다.] 1차 지명 혹은 2차 1라운드로 뽑은 선수들은 아마 시절 기대치를 프로에서 보이지 못하거나,[* 2009년 1차지명 [[김태훈(1990)|김태훈]]은 팔꿈치 수술 후 2011년 시즌을 앞두고서야 1군 진입에 성공하면서 비로소 [[김광현]]을 대신해 투수조 막내가 되었으며, 2010년 드래프트 1번 [[문광은]]의 경우 즉전감이라면서 2군에서도 못나오다가 대형 트레이드 후 1군 투수진이 붕괴될 상황에 이르고 나서야 1군으로 올라온다. 그리고 2011년 드래프트 1번인 서진용은 [[피로골절]] 부상 후 신고선수로 전환되는 초유의 사태까지 보여줬다. 다만 다행히도 2019년 현재 김태훈과 서진용은 SK불펜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소리소문없이 사라졌고[* 2004년 1차지명 박권수, 2006년 2차 1라운드 [[김성훈(1987)|김성훈]], 2008년 1차지명 [[황건주]] 등등 별과 같이 많다.] 2군 전용구장의 부재[* 창단 초기에는 용현동 일대에 2군 구장, 클럽하우스가 조성된 [[SK 드림파크]]가 존재했으나 2006년 인근 지역 재개발로 인해 철거되었다. 드림파크 철거 후에는 과거 1군 홈 구장이었던 [[도원야구장]]에서 2군 경기를 치뤘으나 이마저도 얼마 못 가서 철거당했고, 이후 송도국제도시 인근에 있던 [[송도 LNG 야구장]]을 홈으로 사용했는데 이마저도 사회인 야구장이라 인근 사회인 야구 경기가 있으면 비켜줘야 했다. 즉 2015년 강화도에 [[SSG 퓨처스 필드|2군 전용구장]]을 건립하기 전까지는 제대로 된 2군 시설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해왔다. 오죽하면 문학구장에 어린이용으로 조성해놓은 새싹야구장이나 인근 고등학교 등에서 재활군 선수들이 훈련하는 게 자주 목격될 정도였다.]로 2군 유망주들의 성장은 더딘 편이었다. 사실 2군에서 쓸만한 선수들은 이미 다 뽑아서 1군에서 쓰고 있는 상황[* [[박재상]], [[김강민]], [[조동화]], [[박정권]], [[고효준]] 등]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팀 내 최고 투수 유망주로 꼽히던 그에게 쏠리던 기대치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상 SK에 신인지명으로 들어온 선수 중에 그나마 기대할 만한 선수는 둘 밖에 없었다. 포텐셜이 높다고 여겨지며, 대학야구의 최고 선수들이었던 두 선수가 당시 보여줬던 모습에 SK팬들의 실망은 클 수밖에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