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박진만 (문단 편집) == 여담 == * [[현대 유니콘스]]와 [[삼성 라이온즈]]에서 우승반지를 무려 6개[* [[권혁]], [[선동열]], [[조동찬]]과 우승반지 개수가 동일. 참고로 이 분야 최강은 해태의 [[김정수(1962)|김정수]]로 해태에서 '''8번''' 진출하여 '''8번 [[우승반지]]를 꼈다'''. 뒤이어 '''[[배영수]]'''도 삼성 7회, 두산 1회로 총 8개의 우승반지를 달성하고 은퇴. 그 다음으로 역시 해태의 [[김성한]], [[이순철]], [[한대화]], 그리고 삼성의 [[진갑용]], [[박한이]]의 7개다.]나 먹은 반지의 제왕. 특히 2003년과 2004년에 현대에서 2년 연속 우승을 경험하고 삼성으로 이적해 2005년과 2006년에 또 다시 2년 연속 우승반지를 가져가면서 4년 연속으로 우승반지를 껴봤다. 2010년까지만 하더라도 8개 1명, 7개 3명, 6개 2명(박진만 포함) 뿐이라 6개만 되어도 충분히 반지캡터라 부를 수 있었지만, 2011~2014년 삼성이 4연패를 하면서 [[배영수]], [[박한이]], [[진갑용]] 등 삼성의 고참 선수들이 대거 6~7개의 반지를 갖게 되면서 다소 밀린 감이 있다. 그래도 서로 다른 팀 소속으로서 우승반지를 획득한 선수로는 최다였으나, [[배영수]]가 2019년 두산에서 마지막으로 8번째 우승반지를 끼고 은퇴하면서 최다가 아니게 되었다. 이것도 2000년대 후반 SK의 최전성기와 2010년대 초반 삼성 왕조를 경험하지 못해서 겨우 6개인 것으로,[* SK의 최전성기가 끝나자마자 바로 삼성에서 SK로 이적했는데 그때부터 삼성이 왕조를 시작했다.] 만약 왕조 우승반지를 다 타갔으면 13개의 우승반지를 얻는 것이 된다. * 군 문제와 관련하여 2000년에 아버지가 [[병역비리]]를 위해 [[브로커]]에게 면제청탁을 부탁하며 [[뇌물]]을 건네 구속되었다는 [[흑역사]]가 존재한다. 그 해 [[2000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로 [[병역특례]]를 받아 병역 문제를 해결하기는 한다.[* 박진만 외에 이 때 병역특례를 받은 선수는 [[손민한]], [[정수근]], [[장성호]], [[이승호(1981)|이승호]](SK)가 있다. 유일한 아마추어 선수였던 [[정대현(1978)|정대현]]은 이미 [[병역면제]]를 받았기 때문에 병역특례와는 무관하다. 당시의 몇몇 기사에서는 정대현이 병역특례를 받았다고 나온 것도 있으나 이후 기초 군사훈련을 받았다는 기사가 전혀 없었다. 당시 기자들이 유일한 아마추어 팀 소속 선수이니 미필이겠지 지레짐작한 것이 컸다. 나중에는 김수경도 병역특례가 아니라고 나온다.] * 탤런트 [[박민영]]이 시구할 때 2010년 10월 18일 '''[[삼성 라이온즈]]'''-SK 와이번스의 [[2010년 한국시리즈]] 3차전, 2011년 10월 19일 '''[[SK 와이번스]]'''-롯데 자이언츠의 [[KBO 플레이오프/2011년|플레이오프]] 3차전 두 번 모두 '''박진만의 소속팀 유니폼, 그것도 박진만의 등번호인 7번'''을 달고 시구를 했다. * [[현대 유니콘스]]가 [[서울특별시]]로 연고지 이전을 시도하던 당시 [[정민태]]와 함께 "[[서울특별시]]로 연고지를 옮기면 더 좋잖아요."라는 말로 인천 야구팬들의 속을 뒤집었다는 카더라가 있었다. 그런데 무려 14년만에 진실이 드러났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개최를 기념한 인천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진만은 "당시 수원으로 가면서 한편으론 상당히 아쉬웠다."라며 "인천에서 경기하면 편안했는데 고향을 떠나 선수 생활을 하며 안정감이 없다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http://www.incheonilbo.com/?mod=news&act=articleView&idxno=532125|설명했다.]] 인천 토박이로서 인천을 위해 꾸준히 야구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는 포부까지 전하면서 오랜 루머의 종지부를 찍은 셈이다. * 은퇴 후, 박진만이 인천 야구에서 지니는 상징성과 그간의 활약상을 기념하자는 취지에서 그의 선수 시절 등번호였던 7번을 [[KBO 영구결번]]하자는 의견이 자주 나오고 있다. 다만 SK 와이번스에는 다른 레전드 7번 [[김재현(1975)|김재현]]도 있었고, 박진만이 그의 번호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명성이 조금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어서 더 지켜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5년 12월 현재 팀 공식 홈페이지 상으로는 [[박재상]]이 7번을 가져간 것으로 되어 있어 영구결번은 어려울 듯. 그리고 솩갤러들은 왜 저딴 놈이 7번을 물려받았냐며 가루가 되도록 까는 중... 이었는데 정작 개막하고 보니 그 물려받은 놈이 엄청 잘 하고 있다. 역시 인생만사 [[새옹지마]]. 참고로 이후 인천 야구 최초의 영구결번은 [[박경완]]이 되었다.[* 박경완이 인천 출신은 아니지만 ([[전주]] 출신), [[쌍방울 레이더스]] - [[현대 유니콘스]] - [[SK 와이번스]]로 이어지는 커리어로 봤을 때 인천 야구의 상징 중 하나였던 것은 사실이다. 물론 완전한 [[프랜차이즈]]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현재까지는 인천에 [[KBO 영구결번|영구결번]]을 받을 만한 프랜차이즈 자체가 보이지 않는다. 은퇴 후의 [[김광현]]과 [[최정]]이 현재로서 확정적이지만, 출신 팜까지 따지면 김광현은 [[안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안산공업고등학교]] 출신, 최정은 수원 [[유신고등학교 야구부|유신고등학교]] 출신으로 둘 다 인천 출신은 아니다. 애초에 출신까지 인천 순혈이기가 힘들다는 이야기. 그러므로 박경완 정도면 충분히 인천 레전드로 인정받을 만 하다. 은퇴 후 커리어도 SK에서 이어가고 있다.][* 사실 가장 인천 순혈주의에 맞는 것은 박진만이 맞는데 박진만은 선수 경력 중간에 삼성에 왔었고 코칭스태프로도 주로 삼성에서 뛰었다. 첫 감독 경력 역시 삼성 라이온즈에서이다.] * [[오지환]]이 삼진 1005개를 기록하기 이전에 유격수 중에서 통산 삼진 1위였다.(통산 1,003개)[* 다만 오지환은 매년 100개 이상의 삼진을 기록하는데다 겨우 10시즌만 뛰고 박진만의 통산 삼진 기록을 넘겨버렸다. 반면 이쪽은 무려 20시즌이나 뛰었다 보니 그만큼 누적 기록도 높을수밖에 없고, 적게 나온 시즌을 감안해도 대략 한 시즌당 60~70개의 삼진을 당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삼진이 많은 타입은 아니다.] * 종교는 확실치 않으나 한때 [[가톨릭]] 신자였다는 얘기가 있었다. 마침 후임 유격수 [[김상수(타자)|김상수]]도 독실한 가톨릭 신자. 아무튼 이 사실 때문에 불암콩콩코믹스에서 (가톨릭 신자라) 예배를 안나왔다는 이유로 [[이만수]]가 박진만을 향해 총을 쏴서 맞히는 장면이 나왔다. 이외에도 플옵 편에서 스파이라고 하면서 총을 쏴 맞히는 장면이 나왔다. * 처가는 [[제주특별자치도]]에 위치해 있고, 장인어른이 고계추 전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 사장이라고 한다. 그러다 보니 2006년 7월 18일~20일 [[제주 야구장|오라야구장]]에서 열린 제주 경기에서 고계추 사장이 오라야구장을 방문해 삼성 선수단과 [[선동열]] 감독에게 삼다수 50박스 등을 전달하며 격려하기도 했다.[[https://jej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58617|#]] * 야구를 시작하기 전 어렸을 때의 장래희망은 파일럿이었다고 한다. * [[숭의야구장]]에서 마지막으로 홈런을 기록한 타자이다. * 묘하게 [[최정]]을 닮았다. * 자신과 동갑내기 스타인 [[이승엽]]과도 매우 친한 사이다. 이승엽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 나이에 데뷔했지만 이쪽은 고등학교 때 1년 유급을 하여 데뷔가 1년 늦긴 했다. 선수 시절 때는 서로 삼성과 현대의 대표 선수로 경쟁했지만 그거와는 별개로 매우 친한 사이였고 국가대표로 같이 뛰기도 했고 마침 둘다 포지션도 내야수라 서로 내야 수비를 보는 상황에 베이스로 출루를 하면 대화도 많이 나누었다. 아쉽게도 박진만이 삼성에서 활약했을 때는 이승엽은 일본에서 뛰었고 이승엽이 국내 복귀를 했을 때는 박진만은 이미 SK 선수로 활동 중이라 한 팀에서 뛰지는 못하였다. 그래도 이승엽이 커리어 말년에 접어들었을 때는 박진만이 팀의 코치가 되기도 해서 선수와 코치로 한솥밥을 먹긴 했다. 이후 이승엽은 [[두산 베어스]]의 감독으로 부임하였고 박진만은 삼성의 정식 감독이 되어 2023 시즌부터는 한 팀의 감독으로써 마주하게 되었다. 이 둘은 각 팀 선수들에게 지독한 특훈을 시킨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실제로 이승엽은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와 같은 명언을 남기며 훈련과 노력을 중시하는 대표적 선수였고 박진만은 현대 시절 김재박의 특훈으로 리그 최고의 유격수로 각성했다.] 재미있게도 이승엽은 대구 야구의 상징격임에도 불구하고 서울 구단인 두산의 감독이고, 박진만은 인천 야구의 상징임에도 불구하고 대구 구단인 삼성의 감독이다. * 2022년 8월 18일 한화전에서 원형탈모가 진행되고 있음을 카메라로 보여주었다.[* 다만 현역 선수 시절부터 탈모의 기미는 어느정도 진행된 상태였다.[[https://mlbpark.donga.com/mlbpark/b.php?&b=bullpen&id=1108776|#]] 은퇴 후 코치 시절이던 2020년의 모습을 보면 탈모가 꽤나 진행됐다는 게 느껴질 정도.[[https://m.fmkorea.com/best/2921620887|#]]] * 배우 [[허정도]]와 닮았다. * 팬 서비스는 매우 좋은 편. 사람도 좋고 야구도 잘한다는 말을 듣던 선수 시절에는 매우 좋았고, 감독으로서 평가가 극심하게 떨어지고 비호감 행동을 반복해 민심을 잃은 현재까지도 팬 서비스는 상당히 좋다. * 나이에 비해 상당히 동안이다. 40대 후반임에도 불구하고 피부에 주름이 없고 매끈해서 모자를 쓰면 선수 시절과 큰 차이가 없어보일 정도. 다만 이는 모자를 쓰고 있을 때 한정이고, 모자를 벗으면 원형탈모가 꽤 진행된 게 보인다. * 2023년 삼성 감독을 맡으면서 [[김헌곤]]과 비슷하게 부정적 별명이 우후죽순 붙는 편이다. 감독대행 시절 좋은 성적으로 호평받았으나 2023년 5월부터 루징시리즈를 반복하고 한달 반의 짧은 기간 동안 승패마진 -10을 달성하는 괴랄함을 보여주자 루징만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이외에도 데이터를 전혀 보지 않는 감야구를 통한 투수 교체를 한다는 점에서 다트야구, 성급한 교체판단에 따른 조급만, 심판의 오심에 대한 부족한 항의라는 점에서 박수만이라는 부정적 별명도 생겼다. 스윕을 많이 당해서 스윕만, 인터뷰로 선수탓만 해서 남탓만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대체로 ~만으로 별명이 붙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