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체반정 (문단 편집) == 여담 == * 소설을 싫어했던 정조와 달리 정조의 두 여동생 [[청연공주]], [[청선공주]]와 후궁 [[의빈 성씨]]는 10책에 달하는 소설 《[[곽장양문록]]》을 필사할 정도로 소설 애호가였다. 물론 《곽장양문록》의 필사 시기는 1773년으로 문체반정보다 20년 정도 앞서긴 한다. 그런데 비단 이 두 공주나 부인뿐만 아니라, 현재 전하는 소설책들의 필사 연대를 보면 정조가 문체반정을 하거나 말거나 당시 궁중 여인들은 소설을 즐겨 필사하고 읽었던 것 같다(...). * [[이덕무]]와 이상황[* 그런데 문답식으로 된 반성문의 반 정도가 소설을 옹호하는 내용이다. 결론이 비판이기는 했지만.], 그리고 [[김조순]] 등의 경우 소설을 읽었다는 사실을 문책받아 [[반성문]]을 쓰기도 했다. 실학자로도 잘 알려진 이덕무는 당시 유행하던 소설을 가리켜 '더럽고 더럽도다'라고 표현할 정도의 글을 남겼다. 다만 애초에 그가 소설 읽기에 빠졌다가 들켜서 정조에게 문책받은 것이니, 이것이 본심이었는지 아니면 정조의 눈치를 본 것이었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가 없다(...). 이상황의 경우 정조 생전에는 반성하고 소설을 배격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정조 사후 늙은 무렵에 그의 집을 찾아간 선비가 서가에 빽빽이 꽂힌 청나라 [[소설]]책들을 발견했다는걸 보면... 김조순의 경우에는 이상황과 함께 숙직을 하다가 [[연애소설]]을 읽어 직접 정조에게 까이기도 했다. 물론 이와는 별개로 이후 정조의 아들 순조의 장인어른이 되어 세도정치를 할만큼 위세를 떨치는데, 얼마나 소설이 좋았는지 직접 '''오대검협전'''이라는 소설을 써냈다고 한다. * 정조 대의 문신 성대중은 원래 순정한 문장으로 정조에게 칭찬을 받은 사람이었는데 나중에는 유명한 패관문학인 [[청성잡기]]를 썼다(...). * 정조는 당판(唐板)을 반입하는 것도 금했는데, 당판본은 책이 얇고 작아서 누워서 읽기가 아주 편했기 때문에 선비들이 감히 누운 채로 책을 읽는다는 이유였다. 한편, 정조 자신은 그렇게나 고문을 강조했음에도 신하에게 보낸 [[정조 어찰첩|사적인 편지]]에서는 한글까지 섞어가며 '''욕설을 갈겨대기도 했다'''. --호로자식-- --전하 반성문 제출하세요.-- --조정에서 쓴게 아니니 넘어가자?-- 오늘날로 치면 ㅋㅋ체도 편지에 썼던걸 보면[* 여담으로, 지금 와선 흔히들 쓰는 표현이지만, 사실 2천년대 인터넷에 ㅋㅋ체가 유행하기 시작했을 무렵만 해도 ㅋㅋ체가 경박하다고 싫어한 사람들이 연령대 가리지 않고 꽤나 있었다. 즉, 개인의 도덕성이나 심성을 떠나, 시대 상황에 따라 고작 10~20년 차라도 (물론 오늘날에도 공문서에 ㅋㅋ체를 쓰진 않지만 선배나 어른한테 사적으론 얼마든지 쓸 수 있듯) 사회적 예의범절의 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도대체 정조가 지적한 패관문체가 뭘 말하는건지 문득 궁금하긴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