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익환 (문단 편집) === 방북 === >민주화를 가로막는 장벽, 그게 바로 분단이었습니다. 분단이 독재의 명분이 되어왔기 때문입니다. 민주화 운동과 통일운동이 하나의 운동일 수 밖에 없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1989년 3월 27일 북한을 무단으로 방문하여 3월 29일에 김일성을 만났고 합의서까지 체결했다. 그러나 문 목사가 북한 체제를 옹호하거나 북한 주도의 적화통일을 바람직한 것이라 여겼다는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다. 문 목사는 본인이 만든 범민련이 종북주의 경향을 보이자 범민련을 해체하고 새로운 통일 운동 기구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무단 방북 사건으로 구속 수감되었을 당시에 쓴 편지들을 모아서 책으로 출간한 것을 보면 문 목사는 분명히 북한의 체제도 사회주의의 이상과는 거리가 있으며 남한 체제와 마찬가지로 문제가 있는 체제라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평등을 자유에 이르기까지 추구하고 남한은 자유를 평등에 이르기까지 추구함으로써 자유와 평등 모두가 온전히 실현된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문 목사의 통일관이었다.[* 이러한 이유에서 문 목사는 레흐 바웬사의 폴란드 민주화 운동을 지지했다. '평등을 자유에 이르기까지 추구한다'는 이유였다.] 그리고 문 목사는 김일성을 만나 이야기하면서도 '주체사상'에 대해 무조건 칭송하거나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둘이서 말싸움 하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토론을 벌였다. 그리고 김일성은 그걸 다 들어줬다.[* 사실 통일교 문선명을 만났을 때도 그랬던 것을 보면 김일성은 유달리 방북한 종교인사들에 대해 비교적 관대하게 대우해줬던 것으로 보인다.] 또 문익환 목사가 주체사상은 수령이 아닌 인민을 위한 주체사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을 때도 김일성은 그냥 넘어갔다. 문 목사가 김일성을 만나서 몇 가지에 '합의'한 것은 맞지만, 이 합의는 엄연히 1991년의 남북 기본 합의서와 2000년의 6.15 공동선언에도 포함되어 있는 내용으로서, 북한 주도의 적화통일을 추구하는 내용은 단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김정일]]은 본인의 미출판된 회고록에서 김일성과 문익환의 면담에 대해서도 기록했는데. 여기서는 마치 문익환이 [[적화통일|북한 주도의 통일]]을 옹호하는 사람인 것처럼 서술해놓고 있다.[* 통일이 되면 남한의 중산층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김일성에게''' 물었다고 써 있다. 다만, 북한이 발행한 회고록은 [[불쏘시개|체제 선전용으로]]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정말 말도 안되는 허위사실을 갖다 붙인 것이 많기 때문에]] 진위여부 판단은 알아서 하자. 참고로 탈북자들이 한국사 공부하며 경악한 것 중 하나가 한글 창제자가 세종대왕이었다는 진실을 알고 난 이후라고 할 정도다.] 정작 북한에서는 문 목사가 1993년 출소 이후 범민련을 해체하고 새로운 통일 운동 단체를 조직하려고 하자 그를 눈엣가시로 여겼다.[* 문 목사 사후에 적극적인 통일운동 단체로서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 문 목사에 대한 추모와 기념 성격을 담은 단체로서 늦봄 통일맞이, 이렇게 두 개의 단체가 조직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