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익환 (문단 편집) === 생애 === [[파일:external/img.hani.co.kr/6000321811_20090930.jpg]] 좌측이 [[김일성]].[* 이 '''민간인''' 무단 방북 사건에 대해 여러 구설수가 나왔지만, 남북 간 언어 이질성이 점점 커지는 상황에서, 문 목사가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71201.html|통일국어대사전 공동 편찬을 제안]]하고 김일성이 동의해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의 씨를 뿌리기도 하였다.] 1970년대 중반까지는 주로 본연의 업무인 목사 겸 신학 교수로 활동했으나,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투옥된 이후 60대의 노구를 이끌고 민주화와 통일 운동의 길로 접어든다. 1976년 59세에 처음 구속된 이래 [[1994년]] 77세로 사망할 때까지 생애 마지막 17년 중에서 5년 반을 밖에 있었고 11년 반을 교도소에서 살았다. [[함석헌]], [[장준하]]와 함께 [[진보주의]]의 [[개신교]] 대표로 활동하였으며, 같은 활동을 하던 [[가톨릭]] 대표인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원주교구]]장 [[지학순]] 다니엘 주교, 서울대교구 [[함세웅]] 아우구스티노 신부, [[전주교구]] [[문규현 바오로 신부]] 등과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1980년대 내내 재야 운동권 세력의 상징이었으며, 1980년대 말 격렬하게 대립하던 학생운동권 그룹에서 모두 존경하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었다. 특히 그 가운데 가장 임팩트가 강했던 사건은 위의 1989년 [[북한]]을 방문하여 [[김일성]]과 회담했던 사건.[* 민간인 신분으로 허가 없이 [[북한]]에 방문하는 것은 현재에도 위법 행위이며 당시에도 그러했다.] 이 사건은 이어지는 [[전대협]]의 [[임수경]] 방북에 직접적인 계기가 되며 민간 차원의 통일운동의 불씨를 당긴 사건이다. 실제 당시 [[김일성]]과의 합의 내용은 이후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와 2000년 [[남북공동선언]]에 거의 그대로 반복된다.[[https://jhkhj.wordpress.com/2012/07/15/%ED%95%98%ED%83%9C%EA%B2%BD%EC%9D%80-%EB%AC%B8%EC%9D%B5%ED%99%98-%EB%AA%A9%EC%82%AC%EC%9D%98-%EC%A3%BD%EC%9D%8C%EC%9D%84-%EC%99%9C%EA%B3%A1-%EB%A7%90%EB%9D%BC/|#]] 그러나 그는 그가 활동한 단체 [[조국통일범민족연합]]에 대해 [[북한]]이 대남 공작용으로 이용한다는 의혹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타파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여기에서 남측본부결성준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말년에 일방적으로 북한에 끌려다닌다고 판단한 범민련을 해산시키고 새로운 통일운동 단체를 만들자고 제안했던 것도 이 노력의 일환이다. 그 외에도 [[민가협]] 양심수후원회의 초대 회장(1989~1991)과 지도위원(1991~1993)을 지냈다. 한편 신학자로서도 계속해서 활동을 이어 나갔는데, 1988년부터 89년 사이에 기독교 잡지 <생활성서>에 진보 신학적 관점에서 구약성서의 각 권을 갖다 해설한 글들을 당시의 시국과 연관지어 연재한 바 있으며, 이것을 1990년에 <히브리 민중사>라는 제목의 책으로 출간하였다. 1991년에 나온 민중가요+찬양 모음집인 <평화의 아침을 여는 이>에도 감수위원으로 참가하였다. 이렇듯 말년에는 특히 통일 문제에 주력하다 1994년 1월 18일에 집을 나서던 중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그날 오후 8시 20분에 향년 75세로 사망했다. 사인은 [[심장마비]]. 아버지 문재린 목사와 어머니 김신묵 여사는 함께 민주화 운동을 했고,[[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060705203318252&p=segye|#]] 남동생 [[문동환(정치인)|문동환]] 목사도 [[한신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같이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훗날 [[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평화민주당]] 부총재를 지내기도 하였다. 문익환 목사와 함께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부인 박용길 장로는 [[2011년]] [[9월 25일]]에 사망했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7840.html|#]]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