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문경은 (문단 편집) == 플레이 스타일 == [[이충희]]와 [[김현준(농구)|김현준]]의 뒤를 잇는 한국농구 [[슈터]] 계보를 잇는 존재로 불리며, 같은 편의 스크린을 이용해 수비수를 제친 후 노마크에서 확률 높은 슛을 쏘는 슈터의 기본기에 매우 충실했다. 특히 한번 "터졌다"고 한다면 엄청난 슛 정확도를 보여주는 일도 있었다. 독특하게 자유투 시 백보드를 맞춰 넣는 방식을 구사했다. [[파일:mA2iHD0.gif]] 한때는 경기 중에 백덩크를 구사할 정도의 운동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런 운동 능력을 이용한 돌파도 주요 무기 중 하나였던 때가 있었다. 센터 출신이라 [[포스트업]] 기술도 있었고, 상당히 괜찮은 패싱 센스도 있었다. 고교시절 센터였으나 연세대학교 진학후 190cm라는 작은 신장의 약점이 드러나고, [[최희암]] 감독의 분업화 경향으로 인해 골밑 공간은 당시 연대의 센터라인인 [[구본근(농구)|구본근]], [[김재훈(농구)|김재훈]], [[서장훈]]에게 주고 페이스업보다는 스트레치 4 플레이나 스팟업 등으로 공격 역할이 제한되어 버리면서 연세대 이후부터는 사실상 스트레치 4 전문 롤플레이어로 전환하였다. 여기에 팀내에는 이상민이라는 당대 최고의 포인트가드가 입학하면서 점차 문경은이 직접 볼터치를 주도하는 상황도 줄어들면서 좀 더 슈터성향이 강해졌다. 문경은이 [[이규섭]]과 같이 [[서장훈]] 때문에 하나 위의 포지션으로 옮기고 포제션을 뺏기면서 어정쩡한 기능성 플레이어가 되어버린 서장훈 시대의 피해자라고 평가되기도 하는데, 이건 잘못된 주장이다. 문경은은 서장훈보다 3년 선배고 둘이 같이 뛴 건 문경은의 4학년 시즌 단 1년이다. 문경은은 대학 이후로 내내 스몰 포워드로 슈터로 활약했으니 서장훈과는 무관하게 슈터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오히려 그나마도 일찍부터 신장에 맞는 3번으로 전환했기 때문에 연세대학교에서도 부동의 주전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있던 것.[* 키가 2m나 되는 [[이규섭]]의 경우는 고려대학 시절까지 센터였다가 삼성 썬더스 입단 이후 서장훈과 겹치면서 슈터로 변신한건 사실이지만, 어차피 당시에는 [[이규섭]] 말고도 2미터 내외의 대학시절 빅맨이었던 선수들 다수가 외국인선수들과의 매치업 문제로 3번으로 전향하는 하는게 흔했다. 그런 선수들 중에서 [[이규섭]]은 이 중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 중 하나로 꼽힌다. 당시는 자유계약으로 고액의 외국인 선수 2명이 동시 기용되었고 대부분 빅맨이었기에 한국인 빅맨들이 프로 와서 살아남기기 거의 불가능이었다. 이후 프로농구에서 외국인 선수를 한경기에 2명을 동시 기용하는 것에 여러 가지 제한을 두게 하거나 단신 용병을 두거나 하는 식으로 토종 빅맨을 보호 정책을 편 이후로는 토종 빅맨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한다.] 게다가 문경은이 키가 190cm인데, 한 세대 선배인 [[허재]]는 키 186에 1번 2번을 주로 맡았고, 동시대인 [[김영만(농구)|김영만]], ~~[[양경민(1972)|양경민]]~~은 193cm의 키에 고교까지는 센터를 보다가 대학 이후 스몰 포워드로 전향했고 문경은과 같은 포지션이다. 또 동 포지션의 [[추승균]]은 190cm, [[우지원]]도 191cm로 대학부터 스몰 포워드로 포지션 변경을 시도했다. 즉 문경은의 키는 당대의 대학 농구에서 딱 스몰 포워드 신장이고, 그래서 자연스레 스몰 포워드로 슈터로 활약한 것이다. 최희암 감독의 분업농구 하에서 슛만 던지는 슈터로 역할을 한 셈이지만, 그래도 실업과 프로 초창기에는 팀을 이끄는 에이스로 다양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실업농구 삼성시절에도 김현준과 쌍포로 내외곽 공격을 주도했고, 프로 신인시절 팀에서 득점을 이끄는 외국인 선수가 있음에도 여전히 발군의 득점력을 발휘하면서 평균 득점 25점 정도로 국내 선수 중에서 단연 탑에 이르는 득점력으로 외국인 선수급의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1999-2000 시즌 무렵 김동광 감독 부임 이후로 2명의 외국인 선수가 중심이 되는 전술로 완전히 바꾸면서 나머지 국내 선수는 보조 역할만 하는 한국프로농구의 분업 시스템을 더욱 문경은에게 강요하게 되면서, 문경은은 팀 득점 에이스에서 블루워커 스타일로 변신을 강요당했고, 외국인 선수 득점을 보조하는 외곽 슈터로 제한한 이후로 플레이가 단조로워졌다. 게다가 자기 관리 문제인지 뭔지 급격히 몸이 가로로(...) 넓어지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운동 능력도 많이 상실했다. [[김동광]] 감독의 역할 제한 이후로 출전 시간까지 줄면서 급격히 고전을 하게 되었다. 결국 팀 우승 이후 신세기 빅스로 자진 트레이드 되게 된다. 이후 신세기 빅스에서 주득점원인 외국인 선수에 뒤를 이은 주축 슈터로 나름 중심역할을 하면서 선수생활 전성기 후반을 이어가게 된다. 자신보다 좀 더 큰 사이즈를 가지고 있으면서 비슷한 스피드를 가진 수비수와 매치업되면 고전하는 일이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대학 시절부터 라이벌이었던 [[김영만(농구)|김영만]]과 ~~[[양경민]]~~. 그리고 [[추승균]] 등 수비 좋은 선수와 매치업에서 밀리는 경우가 있었다. 제 2의 [[허재]]가 될 만한 재목이 그냥 슈터로 끝났다, 라고 말하는 농구팬들도 일부 있다. 사이즈와 운동 능력, 거기다 농구 센스를 겸비한 덕에 슛만이 아니라 다재다능한 득점 능력과 패스 능력을 가진 선수가 될 수 있었는데, 연세대 시절 간혹 그런 모습을 보여주나 싶다가 최희암 감독의 분업농구론에 의해 골밑이 아닌 3점 라인 밖으로 나와서 패스를 받아 슛 던지는 역할로만 계속 뛰었기 때문이다. 문경은이 제2의 [[허재]], [[이충희]]가 되지 못한 것에는, 농구대잔치 시절과는 다른 한국 프로농구의 변화가 큰 이유가 되었다는 분석도 많다. 프로농구 이후 외국인 선수 2명이 에이스 역할을 하게 되고, 그 결과로 한국 센터의 몰락, 한국 슈터의 역할 제한, 그리고 유일하게 국내 선수가 살아남은 포지션이 포인트 가드였던 것이 프로 초창기의 한국프로농구의 모습이다. 그 결과 농구대잔치 시절 센터 중 톱급으로 남은 빅맨은 사실상 서장훈 외엔 없으며, KBL 1~3회 MVP가 모두 포인트가드 포지션에서 나오게 된다.[* 전체적으로도 KBL의 MVP 비중은, 농구에서 포인트가드가 갖는 중요성을 감안해도 1번 포지션의 수상비율이 기형적으로 높은 편이다. 97년부터 2021년까지 25년간 26번 시상되었는데(06년에 공동 MVP가 탄생) 이 중 포인트가드에게 상이 간 적이 무려 12번이다. ([[두경민]]과 [[김선형]]은 슈팅가드로도 뛰지만 수상 시즌엔 PG로 뛰었다) 반면 센터 포지션에서 뛰는 선수에게 간 적은 서장훈 2번, 포지션이 애매한 [[오세근]]까지 포함해도 총 3번이다. ([[김주성(농구)|김주성]]은 주 포지션이 파워포워드이므로).] 서장훈 이외에 팀의 득점 에이스가 몰락한 현실로.. 결국 한국 슈터의 역할 변화는 한국 대표 슈터였던 문경은의 역할까지도 제한시키게 되었다. 즉, 프로농구 이후 2명의 외국인 선수가 주득점원이 되면서, 그 전까지 에이스 역할을 하던 슈터들이 더 이상 에이스가 아닌 블루워커 스타일로 변신이 강요되었고, 조공격수인 한국 선수는 '''수비 + 캐치 앤 슈팅'''으로 플레이가 제한되었고, [[우지원]] 등 슈터들이 그런 스타일로 굳어졌다. 즉, 궂은일 잘하는 선수가 좋은 선수로 인식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애초에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던 문경은 스타일의 선수보다 보조 공격수로 적당하면서 블루워커로써 궂은일도 꽤 잘하는 [[김영만(농구)|김영만]], [[추승균]] 스타일이 외국인 선수와 조화가 좋았다. 외국인 선수가 주득점원에 해결사 역할을 할 때 '''수비 + 캐치 앤 슈팅(보조공격수)'''로 외국인 선수 보조를 잘 해내는 선수가 쓰임새가 많았고, 그런 이유로 문경은은 트레이드를 요청하게 된다. 문경은마저 이럴 정도이니 [[우지원]], [[김훈(농구)|김훈]] 등 정통 슈터들도 '''수비 열심히 하고 간간히 3점 던져주는 마당쇠'''로 변신해서 겨우 살아남았다. 하다 못해 [[전희철]], [[이규섭]], [[김동우(농구)|김동우]] 등 2m 정도 센터 출신들도 '''수비 + 캐치 앤 슈팅''' 스타일로 다들 변신할 정도이니 말할 나위가 없다. 즉, 더 이상 한국인 팀 에이스가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문경은이 이충희, 허재가 되지 못한 이유도 많다는 것이다. 사실상 프로 이후로 팀 주득점원으로 한두 시즌이라도 계속 활약한 선수는 문경은, [[조성원]], [[방성윤]] 정도이며, 꾸준히 팀의 에이스였던 선수는 [[서장훈]]밖에 없다. 그 [[서장훈]]마저도 블루워커 노릇을 안 한다고 해서 선수 생활 내내 욕을 먹던 것이 프로이후 한국의 득점 에이스들의 현실이다.[* 물론 이건 농알못들의 헛소리에 불과했다. 전성기 시절 서장훈은 에이스로서 역할을 충분히 할 정도로 뛰어난 선수였고, 실제로 전자랜드 시절까지 그를 보유한 팀들은 좋은 성적을 거뒀기 때문. 당시 트렌드에서 외국인선수를 맨투맨으로 막을 수 있던 서장훈이 차지하는 수비 비중이나 리바운드 개수를 보면 '궂은 일을 안 한다'는 것 자체도 무의미한 태클이다.] 프로 초창기 이후로 한국 선수가 다양한 득점 루트로 팀 득점을 주도하는 건 비효율적이고 이기적이라고 욕먹던 시절이다.[* 주 득점원이 용병 2명으로 바뀐 상황에서 이충희가 프로에 왔다면 외국인 선수 2명이 설치는 프로 초창기에 팀 득점을 주도해나갈 수 있었을까?? 이충희 역시 프로에 왔으면 '''수비 +캐치 앤 슈팅'''으로 역할을 제한받는 처지가 됐을 수도 있다.] 물론 프로 이전부터 문경은은 한국 농구를 대표하는 슈터로 불리면서도 반쪽짜리 슈터 소리를 듣는 일도 많았다. 앞선 세대인 이충희나 [[김현준(농구)|김현준]]이 자신보다 큰 수비수를 앞에 두고도 일대일 상태에서 드리블 등으로 수비수를 제치고 풀업 점퍼를 정확하게 쏘는데 능했는데 비해 문경은은 슈터로서 풀업 점퍼가 안 되는 받아먹기 전문이었기 때문에 상대의 밀착수비에 약점을 보였다. 그러나 역할 제한을 받지 않고 에이스로 활약하던, 실업이나 프로 초창기에는 내외곽에서 자기 하고 싶은 플레이를 맘껏 하던 시절에는 내외곽에서 다양한 득점력을 구사하고 풀업점퍼 등의 다양한 플레이가 가능했다. 연세대시절이나 프로 이후 차차 역할 제한이 들어가면서 캐치 앤 슈팅이라는 단조로운 스타일 외에는 버릴 수밖에 없었다. 즉, 시대가 제 2의 이충희, 허재가 나올수 없던 시절이다. 그럼에도, 문경은은 국내선수로는 최고 수준의 3점 공격력을 가졌고, 다른 수비 약점을 포함해도 역대급 공격력을 가졌던 선수였다. 이후 문경은만큼 노마크 슛이라도 확률 높게 넣어주면서 슈터의 기본에 충실한 선수는 거의 없다. 국내리그에서 비슷한 급이었던 김영만 등에 비해 문경은은 확실한 3점 슛이라는 무기 덕분에 좋은 커리어를 이어갔고 '''국제용'''으로 중용받을 수 있었던 것. 이런 공격력의 장점 때문에 수비상의 약점 포함해도, 김영만, 추승균, 양경민을 제치고 국가대표 선수로 선호받았다. 그리고 2015년 [[스테판 커리]]의 MVP 이후 세계 농구 트렌드가 꽤 크게 바뀐 시점에서 되돌아본다면, [[서장훈]], 문경은 등은 한국 농구의 또 하나의 편견에 시달린 선수이다. 바로 '''외곽 공격은 영양가가 없다'''는 식의 시각이다. 용병 이전 전통적 한국 농구는 양궁농구라는 양날의 검을 가진 농구 스타일이었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외국에 비해서 장신 센터가 골밑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오랜 컴플렉스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중국과의 국제경기에서 한국이 외곽이 밀려서 지는 경우는 적었고, 높이의 차이 골밑파워 차이로 밀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장신인 [[서장훈]]이 골밑을 버리고 중거리슛을 던진다는 이유로 겉멋 들었다며 욕을 엄청 먹었고, 3점 중심의 슈터들은 한편으론 인기도 많았지만 한편으론 영양가 없다는 비아냥에 시달렸다. 그런 이유로 장신센터인 [[김주성(농구)|김주성]], [[하승진]]의 경우 중거리 슛 센스가 생각보다 좋았음에도 감독들이 의도적으로 중거리슛, 외곽슛을 멀리하게 교육했고, 그 결과로 김주성은 충분히 성공한 선수가 되긴했지만 수비와 팀플레이 중심의 선수로의 한계를 가지게 된다. [[김주성(농구)|김주성]]이 초창기 골밑 플레이가 막히면 공격에서 막힐 수밖에 없지만, 어차피 공격은 2명이나 되는 용병에게 맡기면 되니까 그게 한계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김주성(농구)|김주성]]이 슛팅 능력이 없는 선수가 아닌 것이, 선수생활 후반에 3점슛을 개발한 이후로 선수 생활 연장이 가능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만약 [[김주성(농구)|김주성]]이 더 일찍 전성기 시절 미들슛과 3점을 장착한 선수였다면 더욱 무서운 선수가 되었을 수도 있다. 사실 [[김주성(농구)|김주성]]이 한국 역대 최고의 선수 중의 하나이지만 역대 No. 1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선수는 아니고, 또 중국 등 국제 경기에서 훌륭하게 활약했지만 그렇다고 압도한 것은 아니기에 스스로 골밑이라는 영역 제한을 두고 자신의 선수 능력치를 제한하지 않았으면 더 뛰어난 선수가 되었을 수 있다는 아쉬움인 것이다.[* 사실 2015년 이후 트렌드로 보면 미국식 키로 210에 이르는 김주성이 달릴 수 있고 수비와 전술 이해력도 좋은 데다가, 3점이 가능했다면 NBA에서도 백업이라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의미로 [[서장훈]]이 정확한 슛이 없었으면 [[서장훈]]의 가치는 훨씬 낮아졌을 것이다. 슛이 좋다는 이유로 평가절하받는 게 억울한 셈이다. 센터의 중거리 슛과, 슈터의 3점 공격이 영양가 없다며 평가절하당하던 시절이라 [[서장훈]]과 문경은의 가치가 더욱 낮아진 것도 있다는 시각이 있는 것이다. 문경은의 은퇴 이후 꽤 세월이 흘렀지만 문경은급의 슈터가 한 명도 나타나지 않으면서 최근 재평가를 받고 있다. 문경은의 말년기 때의 평균 득점을 따라가는 슈터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거기에 지도자 생활을 한지 어언 10년이 넘고 3점슛 거리, 공인구까지 바뀐 상황에서 아직도 선수 시절 슛감을 고스란히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 농구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하는 등 한국농구 역사를 통틀어 손꼽히는 슈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역대최고의 슈터가 누구냐는 질문에는 신동파, 이충희, 김현준, 허재 등 이견들이 많지만 역대최고의 3점슈터가 누구냐는 질문에는 누구나 문경은이라고 할만큼 국내무대 국제무대 가릴것없는 꾸준하고 폭발적인 3점슛을 보여주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