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모문룡 (문단 편집) == 기타 == 모문룡이 '''[[마오쩌둥]]'''의 조상이라서 천하의 간신 모문룡이 현대에 높이 평가된다는 주장이 한국의 [[역덕]]들 사이에서 정설이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 단순한 동성이라고 해서 마오쩌둥이 모문룡을 높였다고 보는 것 자체가 아전인수의 극치이다. [[마오쩌둥]]의 집안은 [[후난성]] 토박이 [[성씨]]인 샤오산(韶山) 마오(毛)씨이며 집안 내력은 대대로 농민이었다. 마오쩌둥의 출생지는 그리고 [[후난성]]의 중심지인 [[창사]]이다. 모문룡의 원적은 [[후난성]]에서 북쪽으로 수백km를 가야 닿는 [[산시성]]이며 출생지는 마오쩌둥의 고향 샤오산에서 [[양쯔강]]을 따라 1000km 더 가야 닿는 [[저장성]] [[항저우]] 출신이라 아예 다르다. 더구나 모문룡의 집안은 농민이 아니라 원래는 상인 이후에는 [[향신]]계급이었다. 아버지 모위는 돈으로 사기는 했지만 [[생원]]이었으며, 항주에서 자라나던 모문룡의 아들 모옥(毛鈺)[* 생몰년도 : 1621년 ~ ?년]은 [[명나라]]가 망하기 직전 원시에 합격해 [[생원]]이 되었고, [[향신]]계급으로 일생을 마쳤다.[* 이후 모문룡의 부하들이었던 번왕들이 모옥을 찾아와 청나라의 출사를 권유했지만, 모옥은 거절하고 야인으로 지냈다. 모문룡이 간신배라는 일부 주장에도 불구하고 모문룡의 아들은 명나라에 끝까지 충성을 바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원숭환의 아들 원문필은 역적으로 몰린 아버지 때문에 후금으로 귀순, [[청나라]]의 장수로 활약했다.] 모문룡이 마오쩌둥의 조상이라는 이야기는 한자로 성이 일치하는 것 외에는 전혀 출처나 근거가 없다. 설령 만에 하나 모문룡이 마오쩌둥의 일가 사람이라고 해도 마오쩌둥은 아버지 장례식에도 참여하지 않을 정도로 봉건제를 경멸했으며, [[숭정제]] 때 [[랴오닝성]] [[단둥시]]에 세워졌던 모문룡비가 마오쩌둥이 주도했던 [[문화대혁명]]때 박살이 나서 마오쩌둥이 사망한 이후인 [[1979년]]에 재건할 정도였다. [[http://www.dddld.com/html/tupianzhongxin/qiyefengcai/113.html|#]] 이런 마오쩌둥이 자기 조상 또는 자기 집안 사람이라서 갑자기 역사적 평가를 높인다는 건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도리어 마오쩌둥은 모문룡을 죽인 원숭환을 존경해서 [[베이징]]에 있던 원숭환의 묘소가 도시계획상 철거위기에 처하자 마오쩌둥이 직접 지시해서 보존했을 정도였다. [[https://www.sohu.com/a/413166107_120492288|#]][* 물론 이 묘도 문혁당시 [[홍위병]]에 의해 파괴된 것을 복원한 것이다.] 그러니까 모문룡과 마오쩌둥의 관계는 삼국지로 따지자면 [[손견]]과 [[손건]]의 관계처럼 '''그냥 성씨만 같을 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