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맹자 (문단 편집) === 한국 === 한국에서는 특히 두드러지게 유교를 공맹의 가르침이라고 칭한다. [[여말선초|고려말]] 정치가 [[정도전]]이 《맹자》를 탐독하며 역성혁명의 꿈을 키웠고, 신진 무장 [[이성계]]와 손잡고 [[역성혁명]]을 일으켜 고려를 잇는 새 왕조 [[조선]]을 건국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정도전에게 《맹자》를 선물한 사람이 절친이면서 고려 최후의 보루였던 [[정몽주]]였다는 점이 역사의 얄궂음이라 하겠다.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을 지으면서 조선 체계 구성의 곳곳에 맹자의 사상을 배치하였다. 이는 실제적으로도 이후 강화된 언론기관과 함께 조선을 움직이는 이념으로 작동하였다. 특히 공부를 통해 맹자의 이념으로 무장한 사림 세력은 개국 공신인 훈구파들을 몰아내며 이 사상을 더욱더 강화하였으며, 특히 언론을 개방해 임금과 신하간의 소통을 원만하게 하기위해 설치한 [[사헌부]], [[홍문관]], [[사간원]]은 임금을 견제하는 기능을 발휘하여 신하들의 힘이 크게 되는데 일조하였다. 조선이 동시대의 [[명나라]], [[청나라]]와는 다르게 신하의 권력이 컸었던 것[* 청나라의 [[강희제]]는 조선을 두고 '''군약신강(君弱臣強)'''의 나라라고 말하였을 정도.]에는 정도전이 《맹자》의 역성혁명론[* 제대로 정치하지 않으면 윗사람을 갈아엎어야 된다는 것.]을 충실히 조선건국에 반영했기 때문이다.[* 정도전이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던 간에, 정도전이라는 사람이 맹자의 사상을 조선건국에 오롯이 반영하려고 했었던 점은 틀림없는 것이다. 또한, 정도전이 실제로 그러한 삶을 살았는가와는 무관하게, 그의 저술과 영향으로 조선에서 맹자를 공자만큼 높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사실이기도 하다.] 조선이 유독 의로움을 강조했었던 것도 정도전의 영향이자 맹자의 공로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조선 후기와 근현대에 들어서도 계속된다. 일제강점기에는 맹자가 강조했던 "의로움(義)"을 내세워 '[[의병]](義兵)'과 '[[의사(동음이의어)#義士|의사]](義士)'[*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등을 가르키는 '의로운 선비'를 뜻한다.]들이 곳곳에서 일어났으며, [[동학농민운동]]과 [[삼일운동]] 역시 이러한 유교적 의로움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유독 잘못된 것을 도저히 참지 못하고 뒤엎어 버리는 혁명들이 많은데, [[2.28 학생민주의거]],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6월 항쟁]] 등도 크게 보면 맹자의 뜻(義)을 그대로 실천하려고 했던 정도전의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백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이든, 그것이 실제로 살기 위해서이든, 자유주의, 민주주의를 위해서이든 간에 그 이론적 바탕의 뿌리는 맹자의 '의로움', 즉 '나쁜 것을 볼 때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에 있다는 것. 민중은 자신의 이익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러한 민중을 이해하며 의로움을 외치는 일부로 시작하여 서로 모여 커다란 전체를 만들어 간다는 것에서, 그 맹자의 의로움이 주는 이론적 함의가 결코 적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