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맹자 (문단 편집) === 역성혁명론 === >맹자가 제나라의 [[제선왕|선왕(宣王)]]에게 말하기를 이와같이 하였다. >"왕의 신하 가운데 그 처자식을 벗에게 맡기고 초(楚)나라로 유람을 간 자가 있었다 하지요. 그자가 돌아와 보니 처자식이 추위에 떨며 굶주리고 있었다고 한다면,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왕이 말했다. "절교해야 겠지요." > >맹자가 말했다. "사사(士師)[* 고대 중국에서 법령과 형벌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재판관(裁判官).]가 사(士)[* 이 경우에는 하위 사법관(司法官).]를 다스리지 못한다면,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왕이 말했다. "파면시켜야 겠지요." > >맹자가 말했다. "사방 국경의 안이 다스려지지 않는다면, 어찌해야 하겠습니까?" >왕은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말을 돌렸다. [* 맹자는 "왕을 잘라야겠지요."라는 대답을 왕에게 강요한 셈이다. 제선왕이 쫄아서 대답을 회피한 것(...).] > >《맹자》〈양혜왕장구 하(下)〉 [* 원문: 孟子謂齊宣王曰, “王之臣有託其妻子於其友而之楚遊者, 比其反也, 則凍餒其妻子, 則如之何?” 王曰, “棄之.” 曰, “士師不能治士, 則如之何?” 王曰, “已之.” 曰, “四境之內不治, 則如之何?” 王顧左右而言他.] >제나라의 [[제선왕|선왕(宣王)]]이 맹자에게 물었다. >"과인이 듣기로는, '[[탕왕|탕(湯)]]은 [[걸왕|걸(桀)]]을 몰아내고, [[무왕(주)|무왕]]은 [[주왕|주(紂)]]를 쳐내었다'고 하던데, 이런 일이 있었습니까?" >맹자가 답했다. >"전해오는 기록에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 >왕이 말했다. >"신하 된 자로서 그 임금을 시해한 것이 옳은 것입니까?" > >맹자가 말했다. >"인(仁)을 해치는 자를 '해롭다'라 말하고, 의(義)를 해치는 자를 '잔인하다'라 말하니, 잔인하고 해로운 사람은 '일개 보통사람(一夫)'에 불과합니다. '일개 보통사람에 불과한 [[주왕|주(紂)]]를 죽였다'는 말은 들었어도, '임금을 시해하였다'는 말은 아직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 아무리 왕의 자리에 있어도 인간답지 못한 행동을 하는 자는 왕으로 여겨서는 안된다는 말을 직접적으로 한 셈. 그러한 왕은 일개 보통사람일 따름이므로, 신하들이 '나쁜 짓을 하는 일개 필부'를 죽이는 것은, 정당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왕의 입장에서는 매우 무서운 말이다.] > >《맹자》 <양혜왕장구 하(下)> [* 원문: 齊宣王問曰, “湯放桀, 武王伐紂, 有諸?” 孟子對曰, “於傳有之.” 曰, “臣弑其君, 可乎?” 曰, “賊仁者謂之‘賊’ , 賊義者謂之‘殘’ . 殘賊之人謂之‘一夫’ . 聞誅一夫紂矣, 未聞弑君也.”] 유교적 민본주의(民本主義)를 설명할 때 가장 자주 인용되는 대목이다. 맹자는 왕 앞에서 대놓고 '잘못된 왕은 갈아 엎어야 한다', '백성을 착취하는 왕과 관료들은 도둑놈이다' 라는 말을 서슴없이한 사람이기도 하다. 또한 모든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의 권위를 마냥 인정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면 바꾸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것은 단순히 최대다수의 이해득실을 따지는 [[공리주의]]가 아니라, 통치의 정당성은 어디까지나 백성의 복지에 있다는 말이다. 맹자가 굉장히 강조하는 것 중의 하나가 "좋은 것을 독점하지 말고 최대한 많은 백성들과 함께 하라"는 것이었다. 특히 [[천]](天)을 백성과 동일시하여 천명(天命)의 개념을 인문주의적으로 뿌리박았고, 이 천명이 바뀌는(革) 기준을 민심으로 규정하여서 민본(民本)의 개념을 정치의 축으로 세웠다. 또한 이런 백성을 위한 정책도 말하였는데, 맹자는 [[정전제]]를 통하여 어떻게 민생을 구하고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지에 대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 애초에 맹자는 당대 패권자들에게 정책 파트너로서 초청을 받은 사람이다. 그냥 바른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실질적인 정책을 제시하는 사람이었고, 그를 초청한 군주들도 그 말을 실제로 실천하려는 의지가 있었다는 뜻이다. 백성과 함께하기 위한(여민동락) 군주의 도덕적 근본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 시대에 맹자의 민본 사상이 중요한 까닭은, 민(民)과 천(天)을 동일시하면서 국가의 정통성에 있어서 "민심"을 중시하도록 만들어 놓은 데 있다. "민심을 따르지 않으면 권력자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은 민주주의가 대세가 되기 이전에는 찾아보기가 어려운 사상이다. 이후 이러한 맹자의 민본주의는 동아시아 근현대 [[민주주의]] 발전에 일정한 영향을 주었다.[* 비록 맹자의 시대에 그의 학설이 제도적으로 뿌리내리지는 못했고 오늘날의 시선으로는 맞지 않는 것도 있지만, 그것은 맹자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시대의 한계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사실 조선 시대의 시선으로 보더라도 전국시대는 까마득한 옛날이었고, 맹자의 주장을 당시의 조선에 그대로 적용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역시 유학자들이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자의 근본적인 메세지는 조선 시대에 유효하였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주장이다.] [[리콴유]]와의 그 유명한 민주주의 논쟁에서, [[김대중]]이 맹자의 민본주의를 바탕으로 아시아도 민주주의를 실현 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 [[김대중]]과 [[리콴유]](이광요)의 그 유명한 민주주의 논쟁에서 언급된다. 서구가 동아시아의 권위주의를 민주주의 입장에서 배격하는 것은 문화적 몰이해라는 리콴유의 주장에 대해서, 김대중은 맹자를 인용하며 권위주의를 비판해온 지적 전통과 역사가 동아시아에서도 있었음을 지적한다.[[https://m.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1503251135171|#]]]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