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려행증 (문단 편집) == 기타 == *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만나 온 다수의 탈북자들에 따르면, 탈북자들이 북한을 떠난 후 느꼈던 가장 큰 행복 중 하나는 '''국가의 허가를 구할 필요 없이도 내가 원하는 곳으로 어디든 갈 수 있고, 내가 원할 때 자유롭게 국내외 여행을 할 수 있는 점'''이라고 한다. 실제로 [[https://amnesty.or.kr/45767/|려행증에 대한 탈북자들의 증언들]]을 보면 '살고 있는 곳 바로 근처에 가려고 해도 려행증을 받아야 한다', '려행증 하나를 얻으려면 동사무소, 지역 반장, 담당 보안원 등등을 다 거쳐야 한다', '려행증에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어디에 갔다 올 수 있는지조차 적혀 있다' '다른 지역으로 가야 할 때에도 일일이 보고를 해야 한다' 등등 일반적인 사람들이라면 상상도 못 할 억압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심지어 려행증을 발급받기 위해 일정 액수만큼의 뇌물을 바쳤다는, 한마디로 말해 돈으로 려행증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증언까지 있다. *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상황에서 북한의 [[세뇌]] 교육을 받으며 평생 동안 살아온 북한 주민 중에서는 이웃 군을 갈 때 려행증을 발급받은 후 승인을 받고 가야 하는 것이 인권유린인지조차 모르는 상태로 살아가면서 '''다른 나라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로만 알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케이스까지 있다고 한다.''' [[https://www.rfa.org/korean/weekly_program/eu_defector/eudefector-06292012110746.html|#1]] [[https://www.rfa.org/korean/weekly_program/ae40c528c77cac00c758-c228aca8c9c4-c9c4c2e4/hiddentruth-06282023065740.html|#2]] 다만 전자는 2012년 시점 기사이며, 후자는 2009년에 탈북한 사람의 증언이다. 물론 [[일제강점기]]를 겪은 노인들은 이와는 정반대로 "'''차라리 왜놈 식민지 때는 가고 싶은 곳이라도 마음대로 갈 수 있어 지금보다 훨씬 좋은 세상이다.'''"라고 말하기도 하며, [[http://m.unityinfo.co.kr/9980|#]] 2000년대 이후에 해외 정보들이 많이 유입되면서 려행증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제도인지 깨달은 북한 주민들은 죽기 전에 소원이라면 '''이렇게 짐승처럼 살기 싫고 한국 드라마나 중국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해외 여행을 가보고 싶다'''고 하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GL3SjHf7Y4c&list=PL3KzVaT9YpkeGwzfNd5EdEba8_cbWbIyz|#]] 그러나 2020년 대한변호사협회의 북한인권백서에 따르면, 북한 출신인 증언자 중 무려 82%가 헌법상 이동의 자유에 대한 규정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한다. [[https://www.dailynk.com/20221020-3/|#]] * 주민들의 이탈을 최대한 막기 위해서인지 [[차량]]과 [[운전면허/북한|운전면허]] 제도도 복잡하다. [[https://m.blog.naver.com/gounikorea/220887522912|#]] 운전면허를 따려면 운전 능력과는 관계 없이 당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 심지어 [[자전거]]를 탈 때에도 면허가 있어야 하며 번호판을 반드시 달아야 한다. [[https://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7322|#]][* 해당 기사에서는 여성들의 자전거 이용이 금지되었다고 나오는데, 이는 [[https://news.kbs.co.kr/news/mobile/view/view.do?ncd=4284134|80년대 말, 오극열 국방위원회 위원장의 딸이 자전거를 타고 가다 승용차에 치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뒤부터 제정된 것이다. 2012년에는 [[http://www.munhwai.com/news/view.html?smode=1&page=152&style=title§ion=1&category=3&no=3781&osort=gnum|자전거 금지 제도가 폐지되어]] [[https://www.google.com/amp/s/m.newspim.com/newsamp/view/2018091300041|여성들이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데일리NK]]의 보도에 따르면 [[https://www.dailynk.com/20231016-4/|여성들이 바지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것]]이 규제 대상이라고 한다.] * 1989년 10월부터 1990년 1월까지 잠깐이나마 부분적으로 국내 여행을 자유화한 바가 있으나,[* 김정일이 국정 운영에 참여하기 시작한 1980년대에 전두환의 [[3S정책]]과 비슷한 맥락으로 두발 단속을 없애고 선전 영화 일색이던 영화계에 한계를 느껴서 최은희와 신상옥을 납치해서 괴수 영화와 로맨스 영화 제작을 시도하는 등 문화적 자유화를 이것저것 시도해보았다. 다만 그 시도를 몇 년 못가 그만두었다는것이 문제점이었다 ] [[동구권]]의 공산주의 정권 붕괴의 여파로 통제를 더욱 강화하면서 이 계획은 무효화되었다.[* 물론(?) 평양 시민들에게는 이 '자유화'가 유지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 '자유화'도 실제로는 평양 시민들에게 국경선과 휴전선 지역을 제외한 전 지역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을 허용한 것과 평양 밖 시민들에게 살고 있는 도내만이라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한 거였다. 이를 역으로 해석하면, '''평양 시민들조차''' 평양 밖으로 나가려면 당국의 허가를 받고 려행증을 발급받아야 가능했던 셈이라고 할 수 있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0011200329210004&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0-01-12&officeId=00032&pageNo=10&printNo=13630&publishType=00020|#]] * [[김일성]] 시기 북한에서는 지금보다 국내 여행 가능 조건이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까다로웠다고 한다. 가족에 대한 제사, 성묘 등의 사유로는 통과가 쉽지 않았고, 고향에 있는 부모와 친지를 방문하는 것 등의 사유는 입 밖에도 내지 못했으며, 사실상 본인의 결혼과 직계가족의 사망에 한해서만 려행증을 발급받는 것이 가능했다. 더욱이 동일 군에 있는 다른 동네(리)에 가도 '''사실상의 검문을 받을 위험이 높아 자신이 사는 리 측에서 발급해주는 통행증을 가져가야 안심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지역으로 여행이나 출장을 가는 경우에는 식량 배급을 해주는 해당 직장에서 '식량정지증명'을 받아야 했는데, 이를 가지면 여행 기간 동안 식량 배급이 중단되는 대신 여행지에서 별도의 양권과 차액만큼의 현금을 내고 식사를 제공받을 수 있었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aver?articleId=1990020400239108001&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90-02-04&officeId=00023&pageNo=8&printNo=21181&publishType=00010|#]] 그리고 당시에는 국가기관에 신고 없이 친족이나 친구 집에서 잠을 자는 것, 나라 안에서 업무상 출장을 가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한다. * 아이러니하게도 북한에서 [[배움의 천리길]], 광복의 천리길 같은 답사 행사가 인기가 있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일단 명색이 김일성의 발자취를 따라가려고 참여한다는 것이니 만큼 려행증을 쉽게 발급받을 수 있고, 다리가 아프게 덜어다녀야한들 타지를 돌러볼 수 있는 철호의 기회이다보니 그렇다. * 려행증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가기가 힘드니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길동무'라는 [[내비게이션]] 앱이 앱에 나타나는 지도를 보며 '대리 여행'을 할 수 있게 한다며 인기가 많을 지경이라고 한다. [[https://www.dailynk.com/20220825-4/|#]] * [[사랑의 불시착]] 드라마를 시청한 후의 탈북민 사이에서 가장 이질적으로 보이는 요소가 바로 이 려행증 제도와의 괴리라고 한다. 극중 내용을 보면 아무리 군 간부이고 평양 핵심계층이라도, [[보위부]]도 아닌 현빈이나 아예 남한 사람인[* 극중에서는 '11호 대상'으로 위장하긴 한다.] 손예진이 [[개성]] 인근 마을들을 아주 제 집 드나들듯 하는데, 극중에서는 그것도 자동차로 잘만 다닌다. 물론 후반부에 가면 이들이 기차를 타고 평양으로 갈 때 려행증을 제시하는 씬이 나오긴 한다. 검사하던 수송원이 얼굴이 하얗게 굳어지며 현빈에게 경례를 올리는 모습은 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