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려행증 (문단 편집) == 유래 == 여행증은 [[소련]]의 국내여권 제도에서 유래한 제도다. 국내여권 제도는 원래 러시아 제국에서 농노해방 이후 농민들의 거주 및 이주 제한을 위해 개발한 제도였다. 소련 건국 초창기에는 국내여권을 농민들의 자유를 억압한 제정 시절의 잔재라고 간주하여 폐지했으나, 1932년 [[스탈린]]이 산업화 과정에서 국내 노동자의 이동을 통제하기 위해[* 이 국내용 여권도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집단농장의 농민들은 국내용 여권 신청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농민들한테 국내용 여권이 발급되기 시작한 때는 스탈린 사후인 1954년이었다.] 재도입한 제도를 북한에서 그대로 수입한 것이다. 이 제도는 북한에서는 대략 [[도서정리사업]] 직후인 [[https://www.rfa.org/korean/weekly_program/defector_view_hr/defectorview-05222019101858.html|1967년에]] 도입되었으며,[* 물론 해외여행은 그 이전에도 금지되었다.] 이때부터 현재까지 '''반 세기 넘게''' 존속되고 있다. 정작 유래가 된 소련의 국내 여권은 스탈린 사후 통제가 완화되었다. 국내용 여권의 발급이 전 인민으로 확대됨에 따라 신분증과 비슷한 역할을 하게 되었고, 비행기를 탑승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버스와 기차 탑승 시 신분증을 제출하지 않아도 되었다.[* 물론 버스, 기차, 비행기표를 구매해야 할 때에 당국의 허가는 전혀 필요가 없었다. 거기에 소련은 이름 그대로 15개의 연방 국가로 이루어진 체제였기에 연방 내에 있는 국가들을 오가는 데에 여권과 비자가 필요했던 케이스라 북한과 비교하기는 힘들며, 애초에 소련이 진짜로 국내 여행도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하게 했으면 구소련 시대에 '다차'라는 [[별장]]을 국가 차원에서 국민들에게 나눠주는 일은 전혀 없었을 것이다.] [[비밀도시]]나 [[원자력 발전소]], 군 기지 등의 중요시설의 출입 정도에서야 여권의 기능을 수행한 것이었다. 다만 이 때도 중국의 [[호적|후커우]] 제도처럼 통제의 기능이 남아있어서 이사를 위해 지역을 옮길 경우 제일 먼저 지역 내무관청을 방문해 '프로피스카'라 부르는 거주허가를 얻어야 했으며, 호텔 체크인을 위해서도 국내 여권이 필요했다. 이런 거주 허가가 없을 경우 해당 지역에 불법으로 체류하는 것으로 판단되어 곤욕을 치를 수 있었다. 소련 붕괴 이후 프로피스카 제도는 거주이전을 심각하게 제한한다고 판단되어 거주등록 제도로 바뀌었지만, 국내여권은 [[러시아 연방]]에도 아직 신분증으로써 남아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