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디다케 (문단 편집) ===== 해당 식사의 성격 ===== 해당 부분에서 묘사되는 성찬예배가 현재의 성찬예배와 형식과 그 형식이 내포하는 신학상 큰 차이을 보이기 때문에 이를 성체성사가 아닌 신자들의 공동식사에 해당하는 애찬(Agape)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반론들을 이유로, '성찬이 아닌 애찬'이라는 설은 설득력이 없다.[* 이어진(2016), 186-188p] 1. 7장의 세례에서 8장 금식과 주기도를 거쳐 9-10장에 성체성사로 이어지는 구조는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 2. 디다케는 성찬예배 본문의 첫 구절인 9장 1절을 시작하면서 ‘성체성사’(εὐχαριστία)이라는 용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3. 디다케 9:5에서 세례를 받지 않은 자는 예전에 참여할 수 없다는 이 금지조항은 현재에도 전통적 교회들이 간직하고 있는 명백한 성체성사 규정이다. 4. 2세기 중반에 안티오키아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교부 이냐시우스는 그의 '스미르나 교회에 보내는 서간' 제8장에서 아가페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교부의 허락 없이는 세례를 주거나 아가페를 거행해서는 안된다.” 이냐시우스가 이 훈계에서 아가페를 성체성사의 의미로 이해하고 있음은 명확해 보인다. 왜냐하면 교회의 질서를 가르치면서 직제를 나열하였고 그 뒤에 두 개의 성사, 즉 세례성사와 아가페를 말했다면, 여기 이 아가페는 누가 보아도 성체성사을 의미함이 옳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냐시우스에게 있어 아가페와 성체성사는 같은 것이었다고 판단된다. 이런 차원에서, 정양모는 현재의 논의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1883년 [[그리스 정교회]] 주교 브리엔니오스가 디다케를 출판한 때부터 한 세기 동안 9-10장의 출처와 내용을 두고 중구난방, 백가쟁명, 참으로 감을 잡을 도리가 없었는데, 다행히 이제 대체로 뜻을 같이한다. 통설을 약술하면 다음과 같다. >|| 1)유대인들의 회식 절차는 전식·본식·후식으로 짜여 있다.(중략) 2)식사와 미사의 밀착과 분리 역사를 약술하면 다음과 같다. ①교회 초창기에는 식사중에 미사를 드렸다{{{-2 (1고린 11,25)}}}. 전식중 빵에 대한 찬양 기도를 드리는 대신에, 교회에서는 빵에 대한 설명어{{{-2 ("이는 내 몸입니다")}}}를 발설했다. 그리고 후식 때 입가심 포도주에 대한 찬양 기도를 드리는 대신에, 교회에서는 포도주에 대한 설명어{{{-2 ("이는 내 피입니다")}}}를 발설했다. ②100년경에는 먼저 교회 회식{{{-2 (아가페=애찬)}}}을 하고{{{-2 (디다케 9-10장)}}}, 이어서 미사{{{-2 (성찬)}}}를 드린 것 같다{{{-2 (1고린 11,17-34; 디다케 9-10장)}}}. ③112년경 터키 서북부지방 비티니아의 총독 플리니우스 2세가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은 이른 아침에 미사를 드리고 저녁때 다시 모여 교회회식을 함께 했다. 이처럼 미사와 식사가 분리되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정기적인 교회회식은 영영 사라지고 미사만 남게 되었다.|| >---- >『디다케』, 정양모 역주, 9장 주석 그렇기에 디다케는 통설대로 애찬과 성찬이 결합된 문헌이거나[* 정양모를 비롯한 학계의 통설이다. 구체적으로 어느 문장이 성찬이고 어느 문장이 애찬인지는 강조점들이 다르지만, '애찬과 성찬이 서로 밀접히 연관되었으되 디다케 시대에 개념적으로는 구분되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디다케의 거의 직후 시대인 112년경의 소아시아 그리스도인들은 아침에 미사를 드리고 저녁에 애찬을 먹음으로써 이 둘을 구분했다.[br]「성찬례의 식사적 특성이라는 명제는 예수님의 결정적이고 차별화된 행위가 만찬 때 이루어졌을지언정 일상적 만찬 행위를 깨는 파격이었음을 간과했다. 예수님의 특별한 말씀과 행동이 반복되는 데서 이미 보통 만찬과는 판이하게 구별된다. 이는 코린토 1서 11,17-34에서 바오로 사도가 분명히 정리했고, 2세기에 이미 확실히 종결된 사안이다. 성찬례가 이른 아침에 거행되었다는 사실이 증거다.」(Walter Kasper, 『일치의 성사: 성체성사와 교회』{{{-2 ''Sakrament det Einheit: Eucharistie und Kirch''}}}, 조규만·조규홍 옮김, 분도출판사, 2013, p.117.) 또한 이냐시우스가 성찬을 '아가페'라고도 불렀다는 사실은, 말 그대로 '아가페'라는 말로 성찬을 지칭했다는 의미일 뿐이지, 2세기 교회가 성찬을 회식 개념으로 봤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1세기 코린토 교회는 회식 중에 성찬을 행했지만, 동시에 1코린 11,17-34는 회식을 성찬과 구분하고 있으며, 미래에 벌어질 회식과 성찬의 분리를 지향하고 있다.] 혹은 이어진의 견해대로 거의 단일한 '애찬=성찬'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며, '성찬이 아닌 애찬'으로 보기는 힘들다. "디다케의 성찬예식에 대한 불분명함은 다양한 해석을 낳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에게 인정되고 있는 해석은 이 기도가 성찬예식에서 행해졌다는 것이다."{{{-2 (황훈식, 「고대교회 성찬기도의 역사」, 『신학과 선교』, 2018, 55p.)}}}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