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다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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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다케

디다케

언어별 명칭
그리스어
Διδαχὴ κυρίου διὰ τῶν δώδεκα ἀποστόλων τοῖς ἔθνεσιν
라틴어
Doctrina Duodecim Apostolorum
영어
Didache
한국어
디다케, 열두 사도들을 거쳐 백성들에게 베푸신 주님의 가르침
기본 정보
저자
익명의 시리아인
기록 연대
기원후 1세기 후반 ~ 2세기 초반
분량
16장

1. 개요
2. 사본군
3. 편집 연대 및 장소
4. 내용
4.1. 두가지 길(1-6장)
4.2. 교회 전례(7-10장)
4.2.1. 세례(7장)
4.2.2. 주간 단식과 주님의 기도(8장)
4.2.3. 감사 기도(9-10장)
4.2.3.1. 해당 식사의 성격
4.3. 교회 규범(11-15장)
4.3.1. 접대 및 공양(11-13장)
4.3.2. 주일(14장)
4.3.3. 감독과 봉사자 선출(15장)
4.4. 예수 내림(16장)
5. 참고 문헌




1. 개요[편집]


초대교회 때 널리 읽힌 초기 기독교 문헌[1]이다.

1세기 말 혹은 2세기 초 기독교의 교리·전례에 대한 문서 중 하나로, 유대계 문서인 두가지 길에 기독교 교훈을 첨가하고, 그 뒤에 교회 규범이 붙어있다. 시리아 지역 교회에서 편집된 것으로 추정된다.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 또는 "열두 사도들을 거쳐 백성들에게 베푸신 주님의 가르침"이라는 제호가 붙어있다.[2]

신약성서의 외경들 중에서는 물론, 정경들까지 포함한 모든 초기 기독교 관련 문헌들 중에서도 추정 연대가 매우 이른 편이기 때문에 성서비평학적으로도 큰 관심의 대상이 되는 문헌이다.

디다케 자체는 현재 어떤 주요 기독교 종파에서도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에티오피아 테와히도 정교회에리트레아 테와히도 정교회에서는 디다케에서 영향을 받고 디다케의 내용을 포함하는 후대의 문서인 에티오피아의 디다스칼리아(Ethiopic Didescalia)를 넓은 의미의 정경으로 인정한다.

2. 사본군[편집]


  • 예루살렘 사본
1873년 콘스탄티노폴리스(이스탄불)에 소재한 성묘 수도원에서 니코메디아(이즈미트) 정교회 주교 필로테오스 브리엔니오스가 양피지 재질 사본을 발견했다. 이 사본에는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이라는 부제와 "열두 사도들을 거쳐 백성들에게 베푸신 주님의 가르침"이라는 제호가 모두 붙어있었다. 이후 1883년 주교는 콘스탄티노폴리스(이스탄불)에서 이를 출판했고, 이후 학계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이 양피지는 120장 정도의 분량이었는데, 이는 1056년 6월 11일에 필사가 완성된 사본으로, 1887년 이래 그리스 정교회 총대주교관에 보관되어있다.

  • 파피루스 옥시린쿠스 1782
4세기에 필사되어 분실된 양피지 사본중 두장에 각각 디다케 원문 1장 일부와 2장, 3장 일부가 전해지며 이는 현존 필사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 사도헌장
4세기 시리아에서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교회 법전인 사도헌장에 원문 전부가 수록되었으나 예루살렘 사본과는 다른 사본을 이용하였다.

  • 콥트어 역 사본
1장에서 12장까지의 내용중 일부가 들어있다.

  • 에디오피아역 사본
8장 및 11장에서 13장까지의 내용이 「교회 규범」역문 속에 끼어있으나 번역 시기 및 번역된 원문 출전은 불명이다.

  • 바르나바의 편지
「두가지 길」이 말미에 첨부되었으나 이 편지 라틴어 사본에 해당 내용이 없는 것으로 보아 후대에 덧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 「사도들의 가르침」
「두가지 길」의 라틴어 역문이다.

  • 「교회 규범」
디다케의 「생명의 길」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으나 이는 디다케 편집자들이 이용한 출전과 다른 출전을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 「사도 교훈」
디다케 1장의 흔적이 보이는 듯하다

3. 편집 연대 및 장소[편집]


붙어있는 제목과 달리 열두 사도들의 교훈이 들어있는 것은 아니고, 시리아의 농촌 지역 교회[3]에서 편집한 책이다. 이 편집자는 유대계 기독교에서 사용한 "두가지 길"과 초기 기독교 교회 전례와 규범을 수록하고 마태오 복음서 등을 참고하여 내용을 보충하였다. 이를 통해 당시 교회의 생활상을 알 수 있게 되었는데, 이 교회 전례와 규범에서 당시의 세례 전례, 주님의 기도, 손님 접대, 떠돌이 예언자들에 대한 대접 등 신약 성서에서 묘사하지 않은 부분들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다. 특히 이 책에는 바오로 서간들과 요한서의 영향이 보이지 않는데, 서기 110년경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스미르나의 주교 이그나티오스의 일곱 서간에 두 계열 서간들이 인용되는 것으로 보아 소아시아 및 시리아 지역에서 이미 110년경에는 이 두 계열 서간이 받아들여졌음이 확실하므로 110년경 이전에 편집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마태오 복음서, 혹은 루가 복음서의 일부는 편집되어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디다케 편집자가 복음서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였거나, 복음서가 사용한 전승과 구전과 동일한 내용을 채록하였음을 알 수 있다.[4]

마태오 복음서와 루가 복음서의 영향만이 나타나고 바오로 서간과 요한 서간은 영향이 없는 것으로 추정할 때 마태오와 루가 복음서가 편찬된 80~90년대 가 집필 상한 연대로 추정된다. 시리아에서 쓰여진 마태오 복음서와 4세기의 사도헌장이 디다케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만큼 디다케 역시 시리아에서 편찬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디다케의 교계 제도를 참고하면, 떠돌이 예언자들이 있기도 하고, 붙박이 교사들과 예언자들이 있기도 하며, 지역 교회에서 선출한 감독들과 봉사자들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폴리카르포스와 이그나티오스가 안티오키아와 아시아 교회에 보낸 서간에서는 감독 한명 아래 원로들과 봉사자들이 임명된 교계 제도를 언급하고 있으므로 서기 110년경 이전에 디다케가 편찬된 것으로 추정된다.


4. 내용[편집]



4.1. 두가지 길(1-6장)[편집]


두가지 길은 1세기경 유대교와 유대계 기독교인 사이에서 유행했던 교훈서이다. 그러나 디다케에 수록된 것은 마태오 복음서에서 따온 내용들도 있고, 후대에 삽입된 구절이 많다.

두가지 길의 1장은 선과 악에 대한 이원론적 윤리관에 대하여 다룬다. 곧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이다. 생명의 길에서는 사랑의 이중계명과 황금률을 지킬 것을 명하고 있다. 또한 원수를 사랑하고, 보복하지 말고, 함부로 돕거나 함부로 도움을 받지 말라고 명한다. 죽음의 길에서는 주로 유대교적 윤리에서 어긋나는 금령들에 대하여 명령한다. 살인, 간음, 동성애, 음행, 절도, 마법, 낙태십계명과 그외 윤리적인 것들도 설명한다. 그러나 또한 마태오 복음서에 나오는 구절들도 있는데 이는 후에 삽입된 구절로 보인다(출처 필요).


4.2. 교회 전례(7-10장)[편집]


이어서 교회 전례에서는 세례 주는 방법, 주간 단식과 주님의 기도, 감사기도에 대하여 설명한다.


4.2.1. 세례(7장)[편집]


세례를 주는 방식에 대해 지시하고 있다. 1-6장의 내용을 가르친 후, 아버지아들,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며 사용하는 물은 흐르는 물을 쓰되 흐르는 물이 없는 경우 찬 물 → 더운 물[5] → 머리에 물을 붓는 약식 세례의 순으로 방법을 선택할 것을 지시하였다. 세례 전에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은 반드시 단식을 하여야 하며 다른 교우들도 되도록 단식할 것을 지시하였다.


4.2.2. 주간 단식과 주님의 기도(8장)[편집]


수요일과 금요일의 단식 및 단식 시 기도에 대해 지시한다. 해당 기도문은 마태오 복음서주님의 기도를 인용하고 있다.


4.2.3. 감사 기도(9-10장)[편집]


1[6]

감사(례)eucharistias[7]에 관해서, 여러분은 이렇게 감사드리십시오.

2우선 잔에 대해서 (이렇게 하시오).

우리 아버지, 당신 종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신 대로 당신 종 다윗의 거룩한 포도나무에 대해 우리는 당신께 감사드립니다.[8]

당신께 영광이 영원히.

3빵조각에 대해 (이렇게 하시오).

우리 아버지, 당신 종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 주신 생명과 지식에 대해 우리는 당신께 감사드립니다. 당신께 영광이 영원히.

이 빵조각이 산들 위에 흩어졌다가 모여 하나가 된 것처럼, 당신 교회도 땅 끝에서부터 당신 나라로 모여들게 하소서. 영광과 권능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히 당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4이 빵조각이 산들 위에 흩어졌다가 모여 하나가 된 것처럼, 당신 교회도 땅 끝에서부터 당신 나라로 모여들게 하소서. 영광과 권능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히 당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5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받은 이들이 아니면, 아무도 여러분의 감사(례)에서 먹지도 마시지도 말아야 합니다. 주님꼐서도 이것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마시오"라고.

《디다케》(AD 100년경), 정양모 역주, 분도출판사, 1993, 9장 1-5절


주님의 주일마다 여러분은 모여서 빵을 나누고 감사드리십시오eucharistēsate[9]

. 그러나 그 전에 여러분의 범법들을 고백하여 여러분의 제사가thysia[10] 깨끗하게 되도록 하시오.

『디다케』, 정양모 역주, 14장 1절


9-10장에서는 감사(eucharistia, 성찬) 기도를 다룬다.

디다케의 감사 기도는, 비록 바울로가 전하는 양식(1고린 11,23-25)과는 차이가 있지만, "감사"(eucharistia, 성찬), "영적 양식과 음료"(디다케 10장 3절)[11] 등의 표현은 근본적으로 신약성경의 신앙과 일치한다.

특히 디다케의 감사 기도가 가진 특징은, 고린토 전서 11장과 달리, 하나의 온전한 빵이 떼어지고 부서짐을 통해 십자가에서 달리신 그리스도의 몸이 찢기고 부서지는 이미지를 나타내지 않으며, 이미 나뉜 ‘빵조각’으로 온 세상에 흩어진 교회 즉 그리스도의 몸으로 표현한다는 것이다.

4이 빵조각이 산들 위에 흩어졌다가 모여 하나가 된 것처럼, 당신 교회도 땅 끝에서부터 당신 나라로 모여들게 하소서. 영광과 권능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원히 당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디다케》, 정양모 역주, 9장 4절

물론 여기서 고린토 전서 11장과 디다케 중 하나의 표상 중 하나가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신약성경의 이해에서든 후대의 신학적 이해에서든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의 현재화이자, 동시에 매우 교회론적인 의미를 지닌 성사이다. '흩어진 빵의 모임' - '흩어진 그리스도의 몸의 모임' - '흩어진 교회의 모임'을 연결시키는 디다케의 아름다운 연상법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도입된 3가지 감사 기도에서도 유사하게 사용되고 있다.

[감사 기도 제2양식]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어

성령으로 모두 한 몸을 이루게 하소서.

[감사 기도 제3양식]

주님, 교회가 바치는 이 제사를 굽어보소서.

이는 주님 뜻에 맞갖은 희생 제물이오니

너그러이 받아들이시어

성자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저희가 성령으로 충만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한마음 한 몸이 되게 하소서.

[감사 기도 제4양식]

주님, 몸소 교회에 마련하여 주신 이 제물을 굽어보시고

같은 빵과 같은 잔을 나누어 받으려는 저희가 모두

성령으로 한 몸을 이루고

그리스도 안에서 산 제물이 되어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소서.


또한 디다케에서는 성찬례가 제사thysia로 이해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11장)


4.2.3.1. 해당 식사의 성격[편집]

해당 부분에서 묘사되는 성찬예배가 현재의 성찬예배와 형식과 그 형식이 내포하는 신학상 큰 차이을 보이기 때문에 이를 성체성사가 아닌 신자들의 공동식사에 해당하는 애찬(Agape)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반론들을 이유로, '성찬이 아닌 애찬'이라는 설은 설득력이 없다.[12]

1. 7장의 세례에서 8장 금식과 주기도를 거쳐 9-10장에 성체성사로 이어지는 구조는 매우 자연스러워 보인다.

2. 디다케는 성찬예배 본문의 첫 구절인 9장 1절을 시작하면서 ‘성체성사’(εὐχαριστία)이라는 용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3. 디다케 9:5에서 세례를 받지 않은 자는 예전에 참여할 수 없다는 이 금지조항은 현재에도 전통적 교회들이 간직하고 있는 명백한 성체성사 규정이다.

4. 2세기 중반에 안티오키아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교부 이냐시우스는 그의 '스미르나 교회에 보내는 서간' 제8장에서 아가페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교부의 허락 없이는 세례를 주거나 아가페를 거행해서는 안된다.” 이냐시우스가 이 훈계에서 아가페를 성체성사의 의미로 이해하고 있음은 명확해 보인다. 왜냐하면 교회의 질서를 가르치면서 직제를 나열하였고 그 뒤에 두 개의 성사, 즉 세례성사와 아가페를 말했다면, 여기 이 아가페는 누가 보아도 성체성사을 의미함이 옳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냐시우스에게 있어 아가페와 성체성사는 같은 것이었다고 판단된다.

이런 차원에서, 정양모는 현재의 논의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1883년 그리스 정교회 주교 브리엔니오스가 디다케를 출판한 때부터 한 세기 동안 9-10장의 출처와 내용을 두고 중구난방, 백가쟁명, 참으로 감을 잡을 도리가 없었는데, 다행히 이제 대체로 뜻을 같이한다. 통설을 약술하면 다음과 같다.

||

1)유대인들의 회식 절차는 전식·본식·후식으로 짜여 있다.(중략)

2)식사와 미사의 밀착과 분리 역사를 약술하면 다음과 같다.

①교회 초창기에는 식사중에 미사를 드렸다(1고린 11,25). 전식중 빵에 대한 찬양 기도를 드리는 대신에, 교회에서는 빵에 대한 설명어("이는 내 몸입니다")를 발설했다. 그리고 후식 때 입가심 포도주에 대한 찬양 기도를 드리는 대신에, 교회에서는 포도주에 대한 설명어("이는 내 피입니다")를 발설했다.

②100년경에는 먼저 교회 회식(아가페=애찬)을 하고(디다케 9-10장), 이어서 미사(성찬)를 드린 것 같다(1고린 11,17-34; 디다케 9-10장).

③112년경 터키 서북부지방 비티니아의 총독 플리니우스 2세가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에게 보낸 편지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은 이른 아침에 미사를 드리고 저녁때 다시 모여 교회회식을 함께 했다. 이처럼 미사와 식사가 분리되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정기적인 교회회식은 영영 사라지고 미사만 남게 되었다.||

『디다케』, 정양모 역주, 9장 주석


그렇기에 디다케는 통설대로 애찬과 성찬이 결합된 문헌이거나[13] 혹은 이어진의 견해대로 거의 단일한 '애찬=성찬'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며, '성찬이 아닌 애찬'으로 보기는 힘들다. "디다케의 성찬예식에 대한 불분명함은 다양한 해석을 낳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에게 인정되고 있는 해석은 이 기도가 성찬예식에서 행해졌다는 것이다."(황훈식, 「고대교회 성찬기도의 역사」, 『신학과 선교』, 2018, 55p.)


4.3. 교회 규범(11-15장)[편집]


떠돌이 사도 및 예언자 및 교우 접대, 붙박이 예언자와 교사 공양 및 주일 예배, 감독 및 봉사자 선출과 형제 충고에 대해 지시하고 있다.


4.3.1. 접대 및 공양(11-13장)[편집]


누가 만일 앞서 말한 이 모든 것들을 가르치러 여러분에게 온다면 여러분은 그를 받아들이시오. 그러나 만일 가르치는 사람 자신이 돌아서서 파괴시키려고 다른 가르침을 가르친다면 여러분은 그의 말을 듣지 마시오. 79p

여러분에게 오는 모든 사도는 마치 주님처럼 영접받을 일입니다. 그는 그러나 하루만 머물러야 합니다. 그렇지만 필요하다면, 이틀을 머물러도 됩니다. 만일 사흘을 머물면 그는 거짓 예언자입니다. 그리고 사도가 떠날 때는 (다른 곳에) 유숙할 때까지 (필요한) 빵 외에 (다른 것은) 받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그가 돈을 요구한다면 그는 거짓예언자입니다. 81p

떠돌이 사도 및 예언자 및 교우 접대, 붙박이 예언자와 교사 공양에 대해 지시하고 있다. 참된 사도와 예언자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그들의 가르침의 내용 및 행실을 제시하고 있으며 사도전승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이들이 붙박이 예언자, 교사와 별개로 언급되는 것을 통해 당시 교회는 교회 조직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과도기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신은 포도짜는 확과 탈곡장과 소들과 양들의 소출들 중 맏물을 모두 거두어 그 맏물을 예언자들에게 드리시오 그들이 바로 여러분의 대제관들(αρχιερείς)이기 때문입니다. 89p


예언자에게 바치는 물품이 농축산물이었다는 것을 볼때 디다케 교회는 시골 교회였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또한 교회 지도자들을 '제관(사제)'이라고 칭한다.[14]


4.3.2. 주일(14장)[편집]


주일마다 모여 빵을 떼고 감사드릴 것을 지시하고 있다. 여기서 성찬을 제사(Thysia)라고[15] 지칭하고 있으며 그 전에 범법을 고백하도록 지시하고 있다.[16]


4.3.3. 감독과 봉사자 선출(15장)[편집]


공동체에게 그들 자신을 위해 감독과 봉사자를 선출하라고(χειροτονήσατε)[17] 지시하고 있으며 품행 등 자격요건을 제시하고 있다.[18] 그들은 예언자들과 교사들과 함께 존경을 받는 이들이라고 말하고 있다.[19] 아울러 감독과 봉사자들의 지도는 단일 지도 체제가 아닌 공동 협의 체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4.4. 예수 내림(16장)[편집]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자세와 재림 직전에 있을 일을 설명하고 있다. 이 결말은 급작스럽게 끝나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자들이 결말부분이 소실되었다고 본다[20]


5. 참고 문헌[편집]


디다케 (영어 위키백과)
디다케 (교회용어사전)
디다케 (종교학대사전)

[1] 초대교회 당시 헤르마스의 목자, 바나바서, 히브리인의 복음서과 함께 널리 읽혔다. 이들과 함께 제2경전(deuterocanonical books)이라고도 할 때도 있지만, 보통 이 용어는 가톨릭/정교회에서 정경으로 인정하지만 개신교에서 인정하지 않는 구약의 일곱 권만을 지칭할 때가 많다.[2] 이하 내용은 '정양모 역주,『디다케』, 분도출판사', 2017 참고, 페이지 표기는 해당서를 따르며, 기타 출처는 각주로 표기[3] 교회 규범 부분에 농산물에 대해 언급하는 내용으로 보아 시골에서 작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4] 그러나 후술하는 주님의 기도와 관련해서 보면 편집자는 마태오 복음서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디다케에서 복음서에 대해 말할때 항상 단수로 말한다는 점을 들어서 디다케 저자가 오직 마태복음 만을 알았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게르트 타이센, "기독교의 탄생", 대한기독교서회, 2018, 479p[5] 여기까지는 침례를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6] (번역자 주석) 100년경에는 먼저 회식(아가페=애찬)을 하고, 이어서 미사(성찬)를 드린 것 같다.[7] εὐχαριστίας[8] "번안하면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종 다윗에게 약속하셨었고 아버지의 종 예수를 거쳐 계시하신 거룩한 포도나무를 두고 우리는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D. Dibelius). '거룩한 포도나무"는 병행문들(9,3; 10,2.3)을 눈여겨보건대 구원을 가리키는 은유이다."(번역자 주석) "다윗의 거룩한 포도나무는 예수의 계시의 대상이고, 예수는 계시자이시지 계시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이 둘은 구분된다.(이어진, 「디다케 9-10장의 성만찬 연구」, 『장신논단』, 2016, 193p.) 물론 '구원(포도나무)'이 구문상으로는 '예수'와 구분되지만, 디다케의 직전 시기에 저술된 요한 복음서에서 예수가 계시의 주체인 동시에 객체(요한 14,6)로 선포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근본적으로는 '구원(포도나무)'을 '예수'로 이해하는 것이 올바르다. 요한 복음서에서도 포도나무가 예수의 표상으로 묘사한다.(요한 15,1)[9] εὐχαριστήσατε[10] θυσία[11] 바울로는 성체성혈을 "영적 양식" 및 "영적 음료"(1고린 10,3-4)라 말한다.[12] 이어진(2016), 186-188p[13] 정양모를 비롯한 학계의 통설이다. 구체적으로 어느 문장이 성찬이고 어느 문장이 애찬인지는 강조점들이 다르지만, '애찬과 성찬이 서로 밀접히 연관되었으되 디다케 시대에 개념적으로는 구분되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디다케의 거의 직후 시대인 112년경의 소아시아 그리스도인들은 아침에 미사를 드리고 저녁에 애찬을 먹음으로써 이 둘을 구분했다.
「성찬례의 식사적 특성이라는 명제는 예수님의 결정적이고 차별화된 행위가 만찬 때 이루어졌을지언정 일상적 만찬 행위를 깨는 파격이었음을 간과했다. 예수님의 특별한 말씀과 행동이 반복되는 데서 이미 보통 만찬과는 판이하게 구별된다. 이는 코린토 1서 11,17-34에서 바오로 사도가 분명히 정리했고, 2세기에 이미 확실히 종결된 사안이다. 성찬례가 이른 아침에 거행되었다는 사실이 증거다.」(Walter Kasper, 『일치의 성사: 성체성사와 교회』Sakrament det Einheit: Eucharistie und Kirch, 조규만·조규홍 옮김, 분도출판사, 2013, p.117.) 또한 이냐시우스가 성찬을 '아가페'라고도 불렀다는 사실은, 말 그대로 '아가페'라는 말로 성찬을 지칭했다는 의미일 뿐이지, 2세기 교회가 성찬을 회식 개념으로 봤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또한 1세기 코린토 교회는 회식 중에 성찬을 행했지만, 동시에 1코린 11,17-34는 회식을 성찬과 구분하고 있으며, 미래에 벌어질 회식과 성찬의 분리를 지향하고 있다.
[14] 디다케 89p[15] 베드로와 바울로의 순교 후 20여년 후에 쓰인 클레멘스 서간에서도 성찬을 '희생 제물'과 결부시켜(44,4) 제의적 용어를 사용한다.[16] 디다케 한국어 역자 정양모 신부의 각주에 따르면 해당 고백은 교회 지도자 앞에서 하는 고백이 아닌 신자 전체의 공동고백이라는 설이 우세하다.[17] '안수하다'는 뜻도 있다.[18] 다만 공동체가 '직무자를 배제한 의미에서의 평신도'를 의미한다고는 확정할 수 없다. 주교/고대 교회 문서 참조.[19] 예언자와 교사들은 지역 교직자보다 높은 초지역적 지도자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20] 『신약 읽기』, 6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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