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북역치 (문단 편집) === 역치의 합의 === 이때 장제스도 상당히 관대한 조건으로 동북 삼성을 다시 통합하는 것에 대해서 국민당을 설득하고 있었다. 펑위샹과 국민당원들은 동북 삼성을 사실상 별개의 자치구역으로 놔두는 역치에 대해 반발했으나 장제스와 국민정부 수뇌부는 동북 삼성의 국방상의 중요성과 만주에 대한 일본의 오래된 침략 실태를 지적하면서 동북 삼성 문제를 신중하게 처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반대파들을 설득했다. 자칫했다간 만주가 동아시아 전체를 태울 전쟁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장제스는 현재 중국이 일본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일본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는 방식으로 역치를 이룩하고자 했다. 7월 17일엔 장쉐량이 기자회견을 열고 남북타협이 상당히 진전되었으나 구체적인 문제가 아직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면서 삼민주의를 수용하는 것은 굴복하느냐 굴복하지 않느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일본과 공존공영할 수 있을 것이란 입장을 설명했다. 장쉐량은 일본이 아니라 공산당이 중국의 적이라고 지적하며 장제스와 타협하고 일본을 안심시키려는 양다리 전략을 구사하려 했다.[* [[시안 사건|후일 그가 벌인 일]]을 생각하면 상당히 모순적인 대목.] 7월 중순 장제스는 왕수한, 형사렴 등 4인의 동북의 대표단과 베이핑에서 회담을 가졌다. 봉천 측은 만약 봉천군벌이 국민정부에 복종하게 된다면, 동삼성에서 청년 1백명을 난징에 파견하여 당무를 실습시킨 뒤, 동삼성의 당부의 사무를 개시할 것, 동삼성의 정부직원이 되었던 자의 생명과 재산을 모두 보호해줄 것 등을 요청하였다. 장제스는 모두 수락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동삼성은 국방의 중요한 변경이다. 일본의 세력이 침입한지 오래이므로 우리의 처치방법도 신중하고 용의주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동아에 있어서 전화의 도화선이 될 것이고 일단 불이 붙으면 수습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쑨원|총리]]의 이른바 평화통일에 입각하여 우리는 지성으로 봉천측 장령이 기꺼이 중앙으로의 귀속을 결정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이에 대표들은 중앙과 국민정부에 복종할 것을 표시했고 장제스는 "진심으로 본당에 복종하고 중국을 통일할 수 있다면 매우 기쁘다. 그러나 억지로, 형식적으로 통일하는 것이라면, 참외가 익어 꼭지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낫다."라고 대답하며 의심을 표했고 대표단은 장쉐량에게 딴 마음이 없다고 해명했다. 장쉐량은 7월 16일 봉천 총영사에게 역치의 결정을 통고하며 일본과의 친선관계 유지 의사를 전달했다. 장쉐량은 동북삼성의 관민이 모두 지쳐 장제스와 협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설명하며 만주의 주민들이 순박하며 일본과의 국경을 접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 남방에서 실시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삼민주의를 실시하진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장쉐량의 방침은 7월 24일부터의 역치의 시작이었는데 장쉐량은 시범적으로 7월 19일 열하성에서만의 역치를 시행했는데 이는 열하성에 대한 봉천파의 지배를 확고히하고 역치에 대한 일본의 반응을 엿보기 위함이었다. 하야시 총영사가 다나카 수상에게 앞으로의 대응에 대해 문의하자 다나카 수상은 청천백일기와 삼민주의는 그것이 형식적인 것이라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다나카 수상은 자신들이 만주에 대해 너무 호의적으로 대했기 때문에 장쉐량이 자신들을 물로 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나카 수상은 하야시 총영사에게 강경한 모습을 보며 일본의 무서움을 알게 해주라고 강경한 대응을 지시했다. 허나 장쉐량이 다시 보경안민의 정책과 난징과 일본 사이의 중립을 고수한다면 일본이 장쉐량을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