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동북역치 (문단 편집) === 일본의 반발 === 장쉐량과 남방의 접촉이 급진전되자 일본은 크게 불안해했다. 하야시 봉천 총영사가 7월 9일에 다시 장쉐량을 찾아 우려를 표했다 이에 장쉐량은 역치를 해도 국민혁명군이 산해관 쪽으로 조금 오는 것 뿐이라면서 일본을 안심시키려 하며 그간의 진정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우선 모든 교섭 자체는 톈진을 점령한 펑위샹 일파가 북평을 떠난 후에 재개할 것이며 이후의 문제는 국민당과 차근차근 교섭을 통해 결정될 것이란 것이었다. 당시 장쉐량과 장제스의 합의는 대략 이 정도였다. * 1. 만주에 청천백일기를 게양한다. * 2. 역치는 통일의 대의에 합의한 것이지 국민당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국민회의를 열어 결정해야 한다. * 3. 열하를 봉천파에 귀속시킨다. * 4. 산동군을 남군으로 개편하면 봉천군은 탕산 동쪽으로 이동한다. 허나 분치합작에 불과하다는 장쉐량의 설명에도 일본은 7월 12일 장쉐량의 남방과 어떠한 형태로든 접촉하는 것 자체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혔고 7월 16일 국민당의 외교정책과 일본의 이익의 충돌은 불가피한 것이라면서 국민당이 만주에 영향력을 확장하는 것에 대해 경기를 했다. 일본은 남방과의 합작은 일본에 대한 반기로 알겠다고 경고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