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데숙 (문단 편집) ==== 이브라힘 엘 데수키 ==== [[파일:이집트 데숙 1878.jpg|width=630]] 시디 이브라힘 엘데수키 모스크, 19세기 오스트리아인 여행가 레오폴트 뮐러의 삽화 평생 고향에 살았기에 호칭인 '엘 데수키'로 더욱 알려진 그는 어린 시절[* 전설에 의하면 엘데수키는 라마단 기간에 태어났는데, 금식의 시작을 알리는 아잔이 울린 후에는 모유를 그만 먹었다고 한다. 또한 2살 때부터 쿠란을 가르쳤고 9세부터는 천문을 읽었으며 12세에는 한 제자를 지옥에서 천국으로 이동시켰다고 한다.. --이걸 진짜로 믿는다-- 이후로는 신통력이 더해져 세상을 손가락의 반지처럼 돌리고 대천사 가브리엘에게 지시를 내렸다 한다. --대략 정신이 멍해진다--]부터 외가와 연관된 샤딜리 수피 종단에 심취하였고, 남쪽 탄타에서 활동하던 수피 성인 아흐마드 알 바다위와 줄곧 교류하였다. 은둔하며 학문과 수행에 치중했음에도 그의 명성은 널리 알려졌고, 마침내 부친의 장례를 치른 후 공식 활동에 나서자 많은 추종자들이 몰렸다. 이러한 명성을 접한 술탄 [[바이바르스]]는 1276년 알 바다위가 사망하자 불과 21세의 엘 데수키에게 [[파트와]]를 내릴 수 있는 수석 율법학자의 지위인 셰이크 울 이슬람에 제수하였다.[* 그는 받은 녹봉을 빈자에게 기부했다고 한다] 또한 그가 설법할 수 있는 자위야 (수피 수도원)을 지어주었는데, 바로 후일 수피 성지가 되는 엘데수키 (이브라히미) 모스크의 전신이다. 바이바르스의 사후 셰이크 울 이슬람에서 물러나 후학 양성에 치중하던 엘 데수키는 1290년, [[십자군]] 토벌을 위해 과도한 세금을 매기던 술탄 [[알 아슈라프 칼릴]]에게 서신을 보내어 비판하였다. 이에 분노한 술탄은 온갖 위협을 가하였으나 엘 데수키는 --요술로-- 이겨내었다. 마침내 승복한 술탄은 친히 데숙으로 와서 그에게 돈이나 재물을 원하는대로 주겠다고 제안하였는데, 이에 엘 데수키는 빈자들에게 인근 라흐마니야 섬의 절반을 줄 것을 청하였다. 술탄이 동의하자 엘 데수키는 임박한 [[아크레]] 원정의 성공을 기원하며 화답하였다.[* 이후 칼릴은 엘 데수키에게 편지를 쓸 때에 '맘루크 칼릴'이라고 겸양하였다] 엘 데수키는 일대에 많은 전설을 남겼다. 데숙의 한 아이를 악어가 물어가자 되찾아온다거나, 알렉산드리아에서 부당히 재판을 받은 제자를 위해 써준 편지에서 화살이 나와 탐관오리의 가슴에 꽂힌다거나, 다만후르로 향하는 길에 있는 소금기 많은 우물에 침을 뱉었더니 단물이 되었고, 모든 사람들과 상대방의 모국어로 소토했으며, 나일 강의 물고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는 등의 이야기이다. 한편 [[수피즘]]에 있어 엘 데수키는 그 본질이 의복에 있는 것이 아닌 영혼의 정화를 통해 점진적으로 신에게 다가가는 것에 있다고 보고, 수피의 상징인 수프 (양모)를 입을 필요가 없다고 설법하였다. 또한 무함마드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빛, 즉 본질의 일부로 보아 아담의 창조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성스러운 빛이 무함마드를 거쳐 '한 시대의 셰이크'인 쿠트브에게 전래되었고, 자신은 그 마지막 쿠트브라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을 남긴 그는 1296년, 예배 도중 향년 41세로 사망하였다. 사후 그는 자위야의 한 구석에 매장되었고, 동생 샤라프 앗 딘 무사가 법통을 이어받아 설법하였다. 비록 당시 기준으로도 요절하긴 했지만 이브라힘 엘 데수키의 가르침은 계속되어 데수키야 혹은 그의 별명 부르한에서 유래된 부르하니야라 불리는 수피 종단으로 이어졌다.[* 남쪽 탄타를 중심으로 한 바다위야와 함께 이집트의 양대 수피 종파이다] 비록 알 아즈하르에서 이단으로 규정되어 비판받기도 하지만, [[하르툼]] 등 수단과 유럽 일대에 퍼져있다. 그리고 1300년경, 엘 데수키의 제자들 중 데숙의 총독에 오른 이스마일 빈 이와드는 스승이 묻힌 자위야가 낡은 것을 보고는 그의 명성에 걸맞는 모스크를 건설하였다. 15세기 말의 술탄 [[카이트베이]]는 모스크를 증축하고 정식으로 영묘를 세웠다. 19세기 말엽 이집트의 테우픽 파샤는 재차 모스크와 영묘를 3000m^^2^^ 면적으로 증축하였고, 마지막으로 1969 ~ 1976년간 75만 파운드를 들여 6400m^^2^^ 규모로 확장되어 오늘날에 이른다. 1976년 완공식 때에는 당시 대통령 [[사다트]]가 참석하였다. 동시에 2만 5천명이 예배 드릴 수 있는 이브라히미 모스크는 이집트 최대의 사원 중 하나이자 세계 20대 모스크 중 하나라고 한다. 매년 10월 엘 데수키의 탄신제 때에는 세계 각지에서 최대 백만이 넘는 순례객이 몰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