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데숙 (문단 편집) === 고대 === ||[[파일:람세스 와제트 이집트 부토.jpg|width=328]]||[[파일:부토 유적지 이집트.jpg|width=265]]|| ||부토 유적지의 [[람세스 2세]] & 와제트 조각상 ||람세스 2세 독신상 || 먼 옛날 일대에는 페와 뎁이란 두 도시가 있었는데, 이들이 합쳐져 '[[와제트]]의 집이란 의미인 페르-와제트가 되었다. 지명처럼 도시는 하이집트의 수호신이자 코브라 여신인 와제트 숭배의 중심지였고, 영험한 신탁을 내리는 신전으로 유명했다. 매년 와제트를 기념하는 축제가 열렸고, 그외에 [[호루스]]와 [[바스테트]] 및 [[이시스]] 역시 숭배되었다. 이는 이시스가 남편 [[오시리스]]의 주검을 찾아나서며 어린 호루스를 와제트에게 맡겨 이곳에서 기르게 했기 때문이다. 통일 후 하이집트의 주신인 와제트는 상이집트의 주신 네크베트와 함께 '두 여인'으로 묶여 이집트 전체의 수호신이 되었고, 파라오의 왕관 위에는 전자의 상징인 코브라가 위치하게 되었다. 한편 페르-와제트는 선왕조 시절 하이집트의 수도였고, 그 왕들은 상하 이집트의 이중 왕관을 쓰는 등 통일을 염두에 두었다. 다만 결과적으로 통일은 상이집트의 왕 나르메르에 의해 이루어졌고, 그후 하이집트 제6 노메의 주도가 되었다. 통일 이집트 하에서 파라오들은 정통성을 얻기 위해선 페르-와제트의 신전에 와서 와제트에게 봉헌하는 의식을 치러야 했다. 다만 중왕국 이후 [[힉소스]] 인들의 침공으로 도시는 파괴되었다. 비록 [[신왕국]] 시기에 재건되었지만 [[람세스 3세]] 시기 [[바다 민족]]과의 전쟁으로 재차 파괴되었다. 또다시 재건된 도시는 26왕조의 창건자 프삼티크 1세를 도왔고, 26왕조 내내 [[사이스]]에 이은 두번째 수도로 번영하였다. 29왕조와 30왕조 때에도 [[부바스티스]]와 함께 번영했으나 [[아케메네스 제국]]의 침공 후 페르시아 지배기를 거치며 쇠퇴하였다. 한편 지명 역시 페르-와제트의 다른 이름인 비딥을 그리스 식으로 발음한 부토 (Βουτώ) 혹은 부투스 (Βοῦτος)로 더 알려지게 되었다.[* 한편 델타 동북부에도 부토라는 도시가 있었는데, 제19 노메의 주도였고 현재는 텔 네베셰라 불린다] [[헤로도토스]]는 일대의 쇠퇴를 묘사하며 언급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기에 들어 부토는 알렉산드리아, 아트리비스와 함께 하이집트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성장하였고, 화폐 주조소가 위치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