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하우 (문단 편집) == 다하우 강제 수용소 == [include(틀:나치 독일의 전쟁범죄)] Das Konzentrationslager (KZ) Dachau([[독일어]]) Dachau Concentration Camp([[영어]])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bf05538510ae42af7ba0ee9aa022fe1a.jpg]] [[파일:external/www.letsgo-europe.com/ditch2_800.jpg]] [[파일:external/redoubtreporter.files.wordpress.com/dachau-crematoria.jpg]] >'''"다하우, 이 곳에서 나의 고난이 시작됐단다."''' - [[블라덱 슈피겔만]], 만화 [[쥐(만화)|쥐]]에서의 회상 [[1933년]] 3월 '''[[나치 독일]]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수용소'''다. [[1945년]] [[4월 29일]] 해방되었다. [[영어]] 발음인 '다카우'라고도 알려져 있다. [[하인리히 힘러]]가 버려져 있던 군수 공장을 기초로 정비해 최초로 개관했을 때는 [[정치범수용소]]로 이용되었는데 곧 강제노역 목적으로 확대되었다가 [[나치]]의 [[홀로코스트]]가 본격화되면서 수많은 [[유대인]]들이 [[유럽]] 전역에서 끌려와 수용되었다. [[집시]], [[동성애자]],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범죄자들은 물론 독일이 점령한 국가들의 국민들까지 잡아가둬 나치의 [[독재]]와 [[인권침해]], [[홀로코스트]]의 상징이 된 장소다. 서류상으로만 32,000명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었으며 해방 당시 3만 명의 수용자들 가운데 무려 만 명이 환자였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엄청난 존재감으로 인해 가려진 편이지만 다하우는 아우슈비츠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의 [[강제수용소]]이며 현재 독일 영토 내에서는 단연 최대 규모의 수용소였다. 산하에 노역소로 기능한 100여 개의 부설 강제수용소를 거느리기도 했는데, 독일 남부와 오스트리아에 흩어져 있었다. 무엇보다 나치가 세운 최초의 강제수용소로써 아우슈비츠를 비롯해 이후 나치의 여러 수용소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해방 후엔 전범 재판을 기다리는 친위대를 수용하는 용도로 사용했고 전후 독일에 주둔하던 미군의 기지로 이용되기도 하다가 1960년 재사용이 완전히 중지되었다. 수용소와 내부의 [[박물관]] 및 [[전시관]] 입장은 [[무료]]이며 오디오 가이드는 3.5[[유로]]에 대여할 수 있다.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등이 있으며 [[한국어]]는 없다. 부대 시설로 [[식당]], 기념품점, 무료 [[화장실]] 등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