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윗 (문단 편집) === 그 이후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다윗인구조사.png|width=100%]]}}} || || {{{#000000 '''다윗이 실시한 인구 조사를 묘사한 그림.''' }}} || 다윗은 하나님이 불어넣어준 마음에 따라 인구 조사를 한다.[* 다만 성경 구절에 따라 사탄이 인구 조사의 마음을 불어넣었다는 대목도 있다.] 성경에 왜 [[인구조사]]가 죄인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인구조사라는 행위 자체가 야훼를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힘(군사력)을 더 믿는다는 의미이므로 불순종과 교만이라는 두 가지 죄목에 해당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허나 사람마다 해석이 미묘하게 다르다.[* 군사력을 믿는게 왜 죄인가? 출애굽기의 인구조사는 왜 문제가 없는 것인가? 다윗을 부추긴 것이 있는데도 왜 다윗에게 책임이 돌아가는가? 같은 문제들에 대해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편 전근대의 많은 문화권에서 인구조사(특히 정확한 인구조사)는 곧 학정(虐政)으로 여겨지던 것과 연관하여 해석할 수도 있다. 전근대 국가에서 인구조사의 목적은 결국 정확한 세금 징수를 위한 것이었고, 이 때문에 정확한 인구조사를 하려 들면 "사람 수 따박따박 세서 그에 맞춰 세금 따박따박 걷으려고 하는 것이다"라고 여겨 불만을 가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개개인의 소득을 정확히 파악하여 그에 맞춰 일정 비율의 세금을 거두는 발전된 조세체계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인구조사 해서 적정 세액 파악하는 게 왜 학정이냐?'라고 여길 수 있지만, 행정 기술 및 교통 통신 기술의 한계가 뚜렷하여 정확한 납세자 규모 파악이 힘들고, 그 반대급부로 각 개인에 대한 조세 부담이 무겁던 전근대에는 인구(=납세자)수가 정확하게 파악되면 세금이 견디기 힘들게 무거워진다고 여기고, 따라서 대략 '전이랑 인구 큰 변화 없지? 그러면 세금도 전이랑 비슷하게 내라' 정도로 넘어가는 정치를 너그러운 정치라고 여겼던 것이다. 당장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에서도 [[조선시대]]까지 왕이 정확한 인구조사를 지시하면 모진 정치를 해서는 안된다는 신하들의 반대 상소가 줄이었고[* 왜냐하면 조선 왕조의 국시인 [[성리학]]의 가르침에 의하면 가급적 백성들한테 [[세금]]을 적게 걷어서 조세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고, 그래서 일부러 호구(인구) 조사나 토지 조사를 철저하게 하지 않았다.], [[조정래(소설가)|조정래]]의 [[태백산맥(조정래)|태백산맥]]을 보더라도 인민군이 점령지에서 농업 소출 파악을 위해 이삭에 달린 알갱이 개수까지 세자 "저걸 다 세서 세금을 매기겠다는 거냐"라고 분노와 공포에 질리는 농민의 일화가 다뤄지며, [[청나라]] 시대에도 [[강희제]]가 정세(인두세)를 고정하자 폭발적으로 인구가 성장(자연인구 뿐 아니라 인구조사를 통해 파악된 인구 자체가 폭증)하기 시작한 사례등을 찾아볼 수 있다. 즉 전근대인의 사고방식에서는 인구조사 자체가 백성들에게 가혹한 세금을 뜯어내기 위해 밑밥까는 죄로 여겨졌다는 것.[* 다만 유럽에서는 오히려 종교적 권위를 이용해 백성들에게 알뜰하게 세금을 거두는데 중세 유럽의 행정은 교회가 담당했고 당시 분위기상 교회는 가톨릭을 의미했으며 가톨릭은 로마 교황청을 중심으로 한 네트워크가 있었고 시대적 분위기상 가톨릭 신자가 아닐 순 없었기에 국가 체계에는 안 잡혀도 가톨릭 체계에는 잡힐 수 밖에 없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성경에서 나쁘게 묘사되는 요압마저도 인구조사를 부당한 처사라고 생각하여 말렸는데, 다윗이 오히려 강행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요압도 다윗의 강행에 짜증이 나서 일부 지역의 인구조사는 생략해버렸다.] 양심에 찔린 다윗은 야단맞기도 전에 잘못했다고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한다.[* 해당 내용에 대해 사무엘기 하권 24장 1절에는 "야훼께서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어떤 죄로 인해 진노를 내리실 일이 있어 다윗에게 이스라엘 유다의 병적을 조사할 마음을 품게 하셨다"라고 되어 있는데, 역대기 상권 21장 1절에는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했다"라고 되어 있어서 문제가 된다. 전자는 일견 '이건 야훼가 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 후자는 '이건 사탄이 한 것'이 되어 상호 모순이 되기 때문이다. 성경 전반에 따른 가르침은 야훼가 징계의 의미로 사탄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탄은 결국은 하느님의 영향력 아래에 있기에 그때그때 허락된 이상의 악행을 할 수 없으며(욥기 참조), 이 경우는 하느님이 그 제어를 어느 정도 풀어서 사탄이 다윗을 격동시키는 것을 묵인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때 야훼는 7년 가뭄, 적군이 침공해서 3달 동안 개고생, 3일 동안 전염병, 이 셋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하고 다윗은 "적군보단 당신께 혼나는 게 그나마 나을 것 같다"라는 말로 전염병 페널티를 골랐음을 우회적으로 말한다.[* 가뭄 7년도 적군 침공과 그다지 다를 게 없다. 국력이 쇠해지기 딱 좋으니까. 전근대적인 농업사회임을 감안하면 현대의 '''경제위기'''에 견줄수 있다.] 그렇게 전염병으로 7만 명의 백성이 죽고 만다. 이후 다윗은 하느님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며 한 농부의 밭을 사서 재단을 쌓아 "죄는 내가 지었는데 왜 백성이 고통받아야 하냐며 자기와 자기의 가문을 벌해달라"라고 기도한다. 다행히 다윗은 용서받아 전염병은 사라졌고 다윗이 번제와 친교제를 드린 장소에 훗날 솔로몬이 [[성전]]을 세웠다. 사울을 처음으로 세우려고 할 때 [[사무엘]]이 백성들에게 한 말을 생각하면, 사실상 기록의 버릇이기보다 기록된 시기와 의도에 대한 차이이다. 사무엘기의 저자는 왕이 중앙 집권을 할 때 백성들의 저항에 대한 당시의 생각을 잘 대변하고 있었고, "손해가 무척 나는 일이었지만 신의 뜻(혹은 왕의 뜻)을 대변한 일이었다"라는 당시의 '''공식 기록'''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사무엘기]]는 의외로 동시대의 궁중비사에 박식하기 때문에 궁중 근무 선지자나 내관급의 신하가 서술했거나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 심지어는 사무엘의 사망 소식도 기록된 것이 사무엘기다. 이 경우 사무엘 사후의 사무엘기는 사무엘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작성했다고 생각 할 수 밖에 없는 것도 하나의 근거. 하지만 [[역대기]] 상하권은 이스라엘이 초유의 쇠퇴와 멸망을 겪은 '''후'''에 기록된 것임을 생각하면, 우리 조상들이 이런 죄를 저질러 하느님께 벌을 받아 망했다는 기록의 의도가 짙다. 즉 '''초심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유혹에 빠져 멸망한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의 의미에서 과거의 문제되었던 사건을 '사탄의 유혹'으로 이야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역대기 상하권이 구약의 동시대를 다룬 사건에 비해서 다른 시각을 가진 경우가 무척 많다. 그래서 상호 모순되어 보이는 위의 두 내용은 서로 보완이 가능하다는 의견이 존재한다. 사탄이 주로 쓰는 전략은 백성들이 죄를 짓도록 유도하여 야훼를 격노하게 하고, 야훼는 곧 이스라엘에게 항상 걸어놓는 가호를 거두는 것이다. 가호가 거둬지면 사탄은 합법적으로 악을 허용하여 땅을 망가뜨리거나 사람들을 해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 상태에서 회개하면 다시 야훼의 은총이 내려 사탄의 행동이 멈추고, 파괴된 땅이 회복된다는 것이다. 이를 해석하면 백성의 죄로 야훼의 보호가 풀렸고, 사탄이 다윗을 충동질해서 인구조사가 시행되었다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