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윗 (문단 편집) == 평가 및 의의 ==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사도행전]] 13:22)''' > 성경에 기록된 모든 유다의 왕들의 기준 사실 이스라엘의 전성기를 가져온 왕이라서 [[주인공 보정]]으로 넘어가는 일이 있지만 솔로몬~르호보암 연대에 있었던 '''외국인과의 우호 관계 및 우상숭배'''가 이 시대에 비롯된 경우가 많았다. 암논의 강간 범죄 때 그의 죄를 처벌하지도, 왕족 자리에서 폐하지도 않은 점, 그리고 암논을 살해한 압살롬이 외가 왕국으로 도망간 점은 모두 왕자의 외가쪽, 즉 정략결혼의 세력 분배에 따른 문제일 가능성이 있다. 어찌 됐든 그는 이스라엘-유대의 가장 중요한 영웅이자 왕으로서 그와 관련된 성경 기록도 많으며, [[기독교]]에 의하면 그의 혈통이 '[[왕중왕]]'인 [[예수]]로 전해져 그의 왕가는 영원히 이스라엘의 왕가가 되었다고 한다. 즉, 하느님이 믿음의 사람을 다른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에 올려놓아 선한 영향력을 끼치도록 한 대표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자식 농사는 무척 나빴다. 언급되는 자식들 중에서 [[혈연 때문에 개고생|장자인 암논은 이복누이를 강간했고, 압살롬은 왕위를 계승하려고 반란을 일으켰으며, 아도니야 역시 멋대로 대관식을 치르다가 용서 받았음에도 정신 못 차리고 부왕의 첩을 탐내는 등 인간성에 문제가 많은 이들이었다. 거기다 그나마 나아 보이는 솔로몬조차도 말년에 하는 짓거리를 봐선…]][* 사실 구약성경 속의 왕이나 사사들의 상당수가 가진 치명적인 문제중에 하나가 성적으로 굉장히 문란한 생활을 했다는 점이다. 사실 인구가 국력으로 통하던 시대인데다 유목민족인 이스라엘의 특성상 다산과 축첩은 당연한 문화이기도 하지만 몇몇 인물은 그걸 감안하더라도 아스트랄한 수준을 보이는데 그중 대표적인 인물들이 다윗과 그 아들인 [[솔로몬]]이다. 그리고 이렇게 자식들이 많이 생겨나다보니 후계구도가 상당히 불분명해져서 [[아비멜렉|자기 형제 70명을 싸그리 죽여버린다거나]] [[압살롬|자기 형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킨다거나]] 하는 막장스런 일들이 자주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다윗은 여러모로 후대에 많은 영향을 남겼다. 예루살렘을 건설하여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가 치열하게 싸울 [[성지]]를 제공한 인물이 바로 그다. 물론 사울 때부터 그 단초를 보이긴 했으나, 이스라엘이 다윗 아래에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나라 꼴을 갖추고 복잡한 중동 정세에서 일익을 담당하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이스라엘과 훗날의 팔레스타인 지역 국가들에겐 재앙이 되기도 했으니, 다윗 왕 시대에 군사•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해서 여러 강적들을 두들겨 준 것은 좋았으나, [[아람#s-2.1]]이 [[아시리아]]의 발목을 열심히 잡아주던 이 중요한 시기에 하필이면 다윗 왕에게 일격을 당해서 아시리아의 급성장을 허용하고야 말았다. 덕분에 여유롭게 성장한 아시리아는 그때까지 대여섯 차례에 걸쳐 지배와 종속, 정복 관계를 뒤바꾸던 바빌로니아를 끝내 굴복시키고 메소포타미아의 초강대국으로 성장한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나중에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패망한 걸 생각한다면 이스라엘의 융성기를 연 성군이 동시에 패망까지 준비한 셈이니 그야말로 아이러니. 하지만 이 책임을 모두 다윗에게만 전가할 수는 없고, 아람의 약화는 후일 북이스라엘과의 잦은 싸움도 한몫 했다고 봐야 한다. 후대에는 굴욕을 많이 당했다. [[하스몬 왕조]]의 요한 힐카누스 왕은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7세가 쳐들어오자 그와 협상을 하기 위해 '''다윗 왕의 능을 털어서''' 은 3,000 달란트를 마련해 뇌물로 주고 포위를 풀 수 있었다고 한다. 일각에서는 예루살렘이 그간 수많은 침공과 점령, 파괴를 겪었는데 다윗 왕의 능에서 은 3,000 달란트라는 거금이 있었겠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그 시대로부터 불과 100년 이후의 [[플라비우스 요세푸스]]가 기록했으니 무조건 신빙성이 없다고 하기도 힘들다.[* 요한 힐카누스가 턴 무덤이 다윗 왕의 무덤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무덤 [[도굴]]로 자금을 마련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로 보인다. 그리고 예수 관련 구절로 신뢰성 의문을 제기하는 이도 있지만 예수에 대한 구절은 후대 익명의 기독교인이 부분적으로 가필한 것으로 거의 확정되었으므로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보기는 힘들다.] 현재 예루살렘에는 예수가 [[최후의 만찬]]을 했다는 마르코의 다락방 기념 교회 밑 지하에 다윗 왕의 무덤이라는 것이 전한다. 물론 이 무덤은 진짜 다윗 왕의 무덤은 아니고 십자군 시대에 예루살렘 왕국에서 마르코의 다락방 기념 교회 밑에 다윗 왕을 기념하는 무덤을 세웠을 뿐이다. 십자군이 만든 이 가묘는 아이러니하게도 유대인들의 성지가 되었다. 또한 이슬람의 성지이기도 하기 때문에 두 신자가 함께 예배를 올리는 몇 안되는 곳이다. 근데 다윗의 행적을 생각해보면 나라가 안 망한 게 신기할 정도로 그의 치세 때 [[국가 막장 테크]]가 연속으로 터졌다. * 왕은 되었지만 왕 되자마자 나라가 둘로 쪼개지고(이스보셋)[* 사실 엄연히 따지면 이 당시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라 유다의 왕이 되었다. 게다가 정통성으로만 보면 오히려 전 왕인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 있었으니 사실상 다윗의 유다 왕 등극은 내란죄에 해당된다. 하지만 결국 이스보셋의 2인자이자 사울의 삼촌인 아브넬이 다윗에게 귀순하면서 다윗에게 나머지 지파들이 힘을 주기 시작한다.] * 이를 어찌어찌 합쳐놨더니 옆나라가 2번이나 쳐들어오고 * 이를 또 무찔렀더니 이번에는 먼 이웃나라가 시비를 걸어서 쳐들어가 박살을 내놓고 * 그 와중에 밧세바를 범하는 [[네토라레|NTR]]을 저질러서 밧세바의 할아버지인 유능한 신하[* 그것도 '''당대 이스라엘 최고의 지략가이자 [[책사]]''' 아히도벨. 정 이해가 안간다면 삼국지연의의 [[제갈량]]을 아히도벨에, 다윗을 [[유비]]에 놓아보면 된다. '''말그대로 그 제갈량이 유비에게 반기를 든 그림과 같다.''' 정사로 본다면 [[진궁]]의 사례로 보면 된다.]가 사표를 내버렸고 * 이제 좀 조용해지나 싶었더니 방목해서 키운 큰아들(암논)이 [[다말#s-1.2|배다른 여동생]]을 강간하고 [[압살롬|그 배다른 여동생의 오빠]]가 빡쳐서 [[존속살해|그 큰아들을 살해했으며]] * [[압살롬|그 동생내미]]를 용서했더니 더 삐딱선을 타서 반란 일으켜 내전으로 번지고[* 여기에 책사 아히도벨이 합류해서 진짜 나라가 멸망 직전까지 갈 뻔했다.] * 이 반란을 어찌어찌 막았더니, 어떤 양아치 하나(세바)가 반란 또 일으키고 * 또 정리하고 나니 역병 돌아 사람들 떼죽음 당하고(인구조사 사건) * 말년에는 부하들한테 전쟁터에서 짐짝 취급 받았으며 * 후계자를 정해놓기만 하고 공표하지 않는 바람에 또 다른 욕심쟁이 아들내미(아도니야)가 왕위 계승을 주장하며 쿠데타를 일으키려 하는 등.[* [[열왕기]] 초반 참조] 다름이 아니라 다윗이 예루살렘의 성전을 지으려는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그는 너무 피를 많이 흘려서 그에게는 허락치 아니하시고 그의 아들에게 성전건축을 하게 하시고 대신 다윗이 시키지도 않은 성전을 세우고 싶어하는 마음을 기특하게 여겨 다윗 왕조는 최소한 망하지는 않게 하신다는 약속이 있었다.[* 그런데 사실 솔로몬이 성전 건축하는데 썼던 재원과 시간을 보면, 위와 같은 시기에 성전을 건축하는 건 거의 나라기둥을 뽑는 일이 아니었을까도 싶다.] 거의 평생을 전쟁 속에서 살았는데, 이 때문인지 군부와 각 지파의 입김이 상당히 셌던 모양.[* 사실 유목제국의 특성 중 하나가 각 분파와 파벌의 힘이 상당히 강하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몽골 제국]]도 황제권이 상당히 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유목민은 아니지만 전쟁을 상당히 많이 벌린 고구려 같은 경우도 생각보다 왕권이 약했다. 반면 유목민족인 여진족이나 투르크인이 세운 나라이지만 중앙권력이 상당히 강했던 [[청나라]]나 [[오스만 제국]]은 어느 정도 영토와 군사력이 확보된 이후 유목민을 농민으로 전환하고 행정력을 보강하여 정주 제국으로 전환한 사례이다.] 그러나 전쟁 영웅이었던 다윗의 지속적인 왕권 강화 덕분에 후계자인 솔로몬의 치세 동안 각 지파의 수장과 선지자들이 솔로몬에게 감히 대들지 못하였다.[* 사실 건국 초기에 수많은 개업 군주들이 많이 하는게 바로 대규모의 숙청작업이기도 하다. 그만큼 왕권을 안정시켜놔야 후대에 왕조가 안정적으로 클 수 있기 때문. 사실 다윗이 어마어마하게 사람을 많이 죽이긴 했지먼 당장 똑같이 구약시대 인물 중에는 [[아비멜렉|자기 형제 69명을 싹다 죽여버린 사람]]도 있고 [[명나라|먼 훗날 지구 반대편]]에는 [[방효유|신하 한명]] 잡겠다고 그 사람의 일가친척과 친구, 제자는 물론 동네 사람들까지 죄다 잡아다가 죽여버린 [[영락제]] 같은 사례도 등장한다.] 사실 성경상 다윗이 저지른 가장 큰 잘못이 바로 밧세바를 불륜했던 건데, 문제는 그것 때문에 다윗의 집안에서 말 그대로 칼이 떠나지 않았고, 나중에는 나라가 두동강이 나서, 둘 다 약해져서 그대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결국 여자 하나 잘못 건드려서 그 대가로 자식들이 서로를 죽이고 죽는 것을 보고, 몇 번이고 목숨의 위험을 겪었으며 (그것도 자식에게) 종국엔 죽음 다음에도 다윗 본인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나라 전체가 완전히 박살나버리는 엔딩을 맞은 것. 이걸 보면 다윗의 간통에 야훼가 얼마나 분노했는지 대충 감이 올 것이다... 또한 구약성경의 사무엘하 3장에서는 "사울 왕실과 다윗 왕실 사이의 싸움은 오래 계속되었다. 다윗은 갈수록 강해졌고 사울 왕실은 갈수록 약해졌다."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사울의 장군인 아브넬이 죽은 사울의 후궁인 리스바를 겁탈하자, 이를 사울의 아들인 이스보셋이 문제 삼았는데 오히려 아브넬은 화를 내며 "내가 사울과 당신을 위해 충성을 바치고 당신을 다윗한테 넘겨주지 않았는데 하찮은 여자 일로 나를 꾸짖는 것이오? 이 나라 사울 왕실을 다윗한테 넘겨주어야겠소."라고 협박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문장에서 드러나는 사실은 다윗이 사울로부터 평화적으로 권력을 넘겨받은 것이 아니라, 사울의 가문과 치열한 내전을 벌인 끝에 승리하여 힘으로 권력을 빼앗았던 것이다. 달리 말하면, 폭력적인 [[쿠데타]]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아울러 다윗의 손자인 르호보암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대로 한 노역을 줄여주지 않자, 그들은 화가 나서 "우리가 다윗에게서 받을 몫이 어디 있느냐? 이새의 아들에게서 받을 것이 없구나. 다윗이여, 이제 네 집안이나 돌보아라(구약성경 열왕기상 12장 16절)."고 울분을 터뜨렸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르호보암의 조상인 다윗에 대한 반발심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