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길남 (문단 편집) === 언론인 시절 === 1944년 4월 3일 생으로 [[강원도]] [[강릉]]에서 5형제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적은 현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양정동(부산)|양정동]]. 본래는 민주화운동가이자 언론인으로,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출신으로 학보 편집국장으로 근무했다. 재학시절 박정희 정권 반대투쟁을 하다, 1973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출처: [[https://news.joins.com/article/23763504|중앙일보 기사]] ] 1975년까지 텍사스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도시 사회학을 공부했다 [* 인터뷰에서 본인이 urban sociology를 공부했다고 말했다. 출처: [[https://kahistorymuseum.org/%EB%85%B8-%EA%B8%B8-%EB%82%A8-kilnam-roh-%E7%9B%A7%E5%90%89%E7%94%B7/|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다.]] ]. 이후 [[한국일보]]에서 미주지사 기자와 코리안스트릿저널 편집장, '라디오코리아' 앵커 등을 지냈다. 그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을 계기[* 광주민주화운동을 계기로 종북활동을 했다고 본인이 언급했는데, 이를 계기로 한 것은 민주화운동, 학생운동이지 종북 활동이 아니다. 오히려 [[5.18]]은 반공주의 성향도 있었을 정도로 반북 성향 시위였다. 이를 보아 노길남은 민주화운동과 종북 활동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로 미국 동포사회에서 한국 [[민주화운동]]을 하기도 했다. 이후 [[NLPDR]] 활동을 거쳐 1999년부터 민족통신이라는 친북 성향 언론을 창간,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영상을 올리기 시작했으며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재미본부 위원과 6.15 공동성언 미주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태극기를 걸어놓고 활동을 했으며 독립운동가, 민주화운동가 출신인 [[함석헌]][* 독립운동,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인물로, 소련에 의해 [[신의주 반공학생사건]]의 사상적 배후로 지목되어 사령부에 체포, 구금되었던 인물이다. 적어도 종북 성향이면 초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종북성향이 짙던 [[고은]] 주례를 선 점에 의아할 상황이다. 물론 고은이 여러개의 인맥으로 연결된 터라 맡았다란 말도 있다.] 초청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성향이 바뀐 것을 염려할 때 이 때까지는 그저 강하게 봐야 친북 정도의 성향이었는 듯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