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남조선로동당 (문단 편집) == 사회노동당•근로인민당과의 관계 == [[사회노동당]]을 주도한 것은 [[김철수(독립운동가)|김철수]], 강진, 서중석, 이정윤, 김근, 문갑송 등 공산당 대회파이며, 여운형은 사회노동당에 이름은 올렸지만 박병엽 증언을 봐도 스티코프 일기를 봐도 사회노동당과는 선을 긋는다. >여운형이 김일성•김두봉에게 보낸 편지(1946.11.30) >---- >내가 11월 16일에 보내 편지를 받았을 것으로 생각하며 이하는 그 보고사항의 연속입니다.(중략) 나는 좌익진영의 통일이 중요한 문제이며 당내 파쟁을 중지시킬 최선의 방법은 사회노동당을 해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의 지도분자인 몇몇 은퇴한 공산주의자들이 다시 당으로 복귀할 것입니다. (중략) 강진과 백남운은 합동에 관여하지 않고 있으며 끝까지 싸울 테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 >박병엽 구술 <김일성과 박헌영 그리고 여운형> p215 >백남운은 자신은 사회로동당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으며 사회로동당의 선언이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 >여운형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스티코프 일기[[https://db.history.go.kr/item/level.do?sort=levelId&dir=ASC&start=1&limit=20&page=1&pre_page=1&setId=-1&totalCount=0&prevPage=0&prevLimit=&itemId=fs&types=&synonym=off&chinessChar=on&brokerPagingInfo=&levelId=fs_010r_0010_0010_0460&position=-1|#]] 여운형은 사로당을 해체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여운형과 김일성의 의도와 달리 사로당 관계자들이 남로당과 갈등하자, 김일성과 여운형은 다음과 같이 [[근로인민당]] 창당으로 대응하였다. 즉 사로당의 공산당 대회파와 조선인민당 출신들이 남로당과 계속 갈등하여 좌익 통합이 안 되니까 여운형을 중심으로 뭉치는 근로인민당을 만들어 좌익 통합을 하라고 김일성이 여운형을 설득한 것이다. >김일성은 백남운에게 사로당에서 탈당한 뒤 남로당으로부터 배척당한 사람들이 여운형을 중심으로 재집결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게 좋겠다는 얘기를 이미 했었다. 김일성은 여운형에게 백남운과 공산당 대회파 출신의 이영, 나아가 장건상같은 중도세력까지를 결집시키는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로당 지도부는 여운형에게 사회노동당을 완전히 해체한 바탕 위에서 몽양이 나서서 보다 대중적인 정당을 결성해야 한다고 설득했던 것이다. 북로당은 여운형에게 공산당 대회파 출신들 가운데 종파분자들을 새 당의 중앙간부로 뽑아서는 안 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당 강령에 대해서는 이전의 인민당•신민당 강령의 수준이면 될 것 같다는 의견교환도 있었다. 북로당 지도부는 특히 몽양에게 사로당의 공식 해체과정을 밟는데 힘써달라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몽양도 이 점에 대해서는 분명히 약속을 하였다. >---- >여운형은 사로당 출신들 가운데 남로당에 입당하지 않은 사람들을 결집시켜 2월 26일에 근로인민당 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인민당 출신들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공산당 대회파 출신들을 당에 끌어들이는 게 쉽지만은 않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해서는 북로당이 개입하게 됐던 것이다. >---- >박병엽 구술 <김일성과 박헌영 그리고 여운형> p226~236 스티코프 일기나 박병엽 증언록을 보면 박헌영 뿐 아니라 여운형의 의사결정에도 평양과의 의사교환이 매우 중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근로인민당은 북로당이 개입해서 만든 정당이다. 한편 역사학자 김기협은 인민당[* 근로인민당이 아니라 조선인민당을 말한다.]의 전술계획이라는 사료를 보고 다음과 같이 분석하기도 한다. >인민당의 전술 계획(1946년 7월) >---- >1. 우리는 남조선에서 합작추진 우익을 반대하는 반동적 요소를 좌우익 합작과정에서 평화적 전투를 통해 저지해야 한다. 우리는 소극적인 반탁진영이 반동적 지도자와 미국의 영향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오게 되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공산당에 대한 반동적 공격을 약화시켜야만 한다. >우익의 분열에서 바라는 효과를 “공산당에 대한 반동적 공격을 약화”시키는 데 있다고 했다. 그(여운형)는 공산당이 좌익의 ‘본산(本山)’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믿었다. 인민당의 역할을 공산당에 대해 보조적인 것으로 본 것이다. 남로당이 세워진 뒤 그가 남로당에 대항하던 사로당을 해체시키고 근민당을 창당한 것도 이 관점을 지킨 것으로 이해된다. 그는 남로당이 이남 좌익을 위한 첫 배라 보고, 그 배를 놓친 사람들을 위해 두 번째 배로 근민당을 만든 것이었다. >---- >김기협, 해방일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