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완섭 (문단 편집) == 행적 == [[살레시오고등학교]]를 졸업했고, [[1982년]] [[서울대학교]] 이과 계열에 입학해 [[천문학]]을 전공하다 1989년에 중퇴했다. 서울대 노래 동아리 메아리에서 활동하였다. 학창시절 때부터 [[가톨릭]]적 세계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이후 열성 가톨릭교도로서 관련 저서의 [[번역]]과 편집을 맡았다. 자칭 [[맑스]]와 [[예수]]의 제자라 불렀으며, 1987년까지 [[주체사상파|주사파]]로 활동하였다. 북한의 실상을 접한 후에는 [[주체사상]]에 회의를 느끼고 주사파 활동을 중단하였다고 한다. 학생운동 및 사회운동 등으로 인해 수차례 투옥된 적이 있으며, 서울대 복학생 협의회장을 맡기도 하였다. 또한 [[이해찬]] 의원 보좌관으로 일한 적이 있다. 나중에 인터뷰에서 밝혀진 바로는 서울대학교 82학번인 [[원희룡]], [[진중권]]과 동기였다고 한다. 물론 재학 당시 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복잡하던 시대에 사회에 대한 참여는 없고 얌전하게 학교만 다닌 진중권이 지금 사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애초에 대학이란 곳은 소속 학과가 다르면 동아리 활동을 같이 했거나, 같은 강의를 듣는 게 아닌 이상, 서로 남남일 수 밖에 없다. [[원희룡]]은 [[법학과|공법학과]], [[진중권]]은 [[미학|미학과]], 김완섭은 [[천문학과]] 출신이니, 만날 이유도 없었던 것이다. ~~일단 서로가 [[문과]]와 [[이과]]라는 차이도 있다~~] 그러나 진중권은 [[유시민]]이나 [[심재철]]처럼 학생운동의 지도부는 아니었지만, 각종 시위나 집회에는 뻔질나게 참여한 인물로, 스스로도 "나는 그냥 되는 대로 따라다녔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와서 보니 학생운동의 역사에 남은 현장에는 꼭 내가 가 있었더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실제 진중권은 서울대 PD계열 운동권의 이론가로 학생운동의 흐름에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특히 [[조국(인물)|조국]], 이진경(본명 박태호)[* 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1987년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약칭:사사방)을 출판해서 당시 운동권과 사회과학계에 [[사회구성체 논쟁]]이란 파란을 일으켰던 사람이다. 이진경은 공안기관의 추적을 피해기 위해서 지은 가명으로 '이'것이'진'짜'경'제학이다의 약자.]와 함께 <주체사상비판>을 출판하면서 당시 운동권에서 광풍을 일으키고 있던 [[주체사상]]을 신랄하게 비판하였고, 졸업후에는 독일 유학 직전까지는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약칭 노문연)에서 활동했다. 진중권의 학자나 사회평론가로서의 능력이나 노선에 대한 비판은 얼마든지 가능[* [[진중권]]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미학]] 전공자로의 전문성과 학문적 성취, 시사평론가로서의 팩트체크에 대해선 많은 논란이 있다.]하지만, 엄연히 학생운동, 사회운동 경력이 있는 사람을 얌전히 학교만 다녔다고 폄하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것은 국내에서 좌파 논객의 대표로 자리잡은 진중권에 대한 김완섭의 열폭이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 [[파일:external/www.study21.org/wanseop.jpg]] 1980년 [[5.18 민주화운동]]에 참가하여 '''민주화 유공자'''가 되었으며[* 실제로 5.18 단체에서는 김완섭의 유공자 취소를 결의했지만 5.18유공자인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5&oid=143&aid=0000016956|#]]] 이때 계엄군에게 엄청 맞고, 몇 달 동안 구금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때 [[장티푸스]]에 걸려 고생하다가 풀려났다고 훗날 인터뷰에서 밝혔다. 1987년 12월에는 서울 구로구청 농성사건으로 또 수감된 바 있다. 1989년부터 '하이테크 정보', '소프트 월드' 등 잡지사 기자 등을 역임하다가 소설가, 문학 평론가로서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3> 같은 컴퓨터 전문도서를 냈고,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의 진화>를 번역한 바 있다. 다른 한편 한국 사회 내부의 [[파시즘]]적 요소를 '''자의적으로 비난'''하는 책을 출간했다가 송사와 비판을 받았다. 1990년대 초중반 PC 통신 [[하이텔]]에서 활동했다. 당시 하이텔 ID는 자신의 영문 이름인 'WANSUP'. 이 시기에는 하이텔 내 서울대 통신망 '버들골'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처음에 운동권을 매개로 논란을 일으켰고 그 다음으로는 성 문제를 소재로 삼으면서 [[천리안]]의 극렬 페미니스트논객 [[신정모라]][* 그녀는 2000년대 초반부터 ‘신정모라 문학서재’, ‘엄마성쓰기협회’, '통일시대 여성주의' 등의 개인 홈페이지와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2010년경에 포털사이트 다음의 종북성향 카페 '태양계통신' 및 네이버 카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바로알기' 등지에 참여하여 [[종북]] 성향 게시글을 올려오다 2013년에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6215970|기사]]]와 대립각을 형성했다. 1995년 '피씨 통신'지에서 발표한 '창녀론'이 화제가 되며 일약 문제 작가로 발돋움했다. 그 내용은 아래 내용을 참조. 이후 그해 9월에 그간 올려 온 게시글들이 분란의 소지가 있어서 하이텔에서 이용정지를 당하고 ID를 개명한 뒤 신생 PC통신 서비스인 [[나우누리]]로 이적했으나, 하이텔 시절이나 다름없는 행보로 인해 '불량이용자' 딱지를 달며 나우누리에서도 추방당하고 하이텔에서도 ID가 회복된 틈을 타서 복귀했으나 거기서도 추방당했다. 전체적인 행보의 흐름을 살펴 보면, 사상 혹은 성향의 일관성이 아니라, 운동권/사회운동 - 여성/성담론 - 친일문제 - ... 등으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시점에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안에 관하여 의도적으로 논란을 촉발하는 모습으로 일관되어 있는데, 그 논란도 선도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거나 새로운 관점을 제창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핫토픽을 따라 다니며 작위적으로 반대 포지션을 취하는 행태로 노이즈 마케팅적인 모습을 보인다. 1997년 [[호주]]로 잠시 이주했으나, 1998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