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영희 (문단 편집) === 닥종이 인형 작가 겸 에세이 저자 === 통칭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 아이를 많이 낳기도 했지만[* 사별한 한국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3명을 낳았고, 5년후 재혼한 독일인 남편과의 사이에서 2명을 낳았다.] 아이 모양의 닥종이 인형을 많이 만들기 때문에 붙은 별칭이다. 또한 본인이 1992년에 펴낸 자전적 에세이의 제목도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인데, 미술에 크게 관심 없는 이들에게는 닥종이 인형 제작자보다는 이 책의 작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저자의 인생 및 저자 집안(친정)의 사연이 매우 드라마틱하고, 인터넷도 없고 해외여행자도 적어서 해외가 미지의 세계였던 시절에 독일에서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이 책은 입소문을 타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저자의 필력도 좋다.] 참고로 이 책 이후로 계속해서 독일 생활과 자식들을 소재로 하는 여러 에세이를 썼다. 1944년 해주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동 대학원에서 회화와 조각을 전공했다. 첫 남편과 사별 후 1981년에 열네 살 연하의 독일 청년과 결혼해[* 유럽에서 한국의 인지도가 매우 낮았던 시절이었는데, 태권도를 배워서 한국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에 복학하기 전 한국으로 여행을 왔다가 김영희와 만나게 되었고 적극적으로 구애했다.] 독일 뮌헨으로 이주, 그곳에서 닥종이 조형작가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다만 이 독일인 남편과는 2000년대 별거를 거쳐 결국 이혼했다.] 김영희는 그 당시 어떤 작가도 다루지 않았던 재료와 형태, 표현기법으로 찬사와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독일뿐 아니라 네덜란드, 프랑스, 스웨덴, 스페인, 스위스 등에서 지금까지 70여 차례의 개인전과 그룹전, 퍼포먼스를 가져 국내보다 국제무대에서 더 잘 알려진 예술가로 인정받고 있다. 1978년을 시작으로 국내에서도 꾸준히 개인전을 열어 1990년, 1992년, 1994년, 1998년, 2002년, 2003년에 귀국 초대전을 가져 국내 관객들에게도 커다란 화제가 되었다. 2008년, 5년 만에 고국에서 전시를 열게 된 김영희는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서정적이고 회화적인 종이 조형 작품과 사진, 조각 작품 70여 점을 선보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