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승연 (문단 편집) ==== 2007년 보복 폭행 사건 ==== [[파일:tdi_02.jpg]] 2007년 3월 8일, 새벽 서울 [[청담동]] S클럽에서 술을 마시던 김승연의 둘째 아들이 북창동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는 8명과 시비가 붙어서 싸움을 벌였다가 집단 폭행을 당하는 바람에 심하게 부상을 입었다. 불만있으면 와보라는 식으로 종업원이 던지고 간 명함에 격노한 김승연은 아들을 [[사적제재|폭행한 인물에게 보복을 가하기 위해]] 아랫 사람들을 시켜 G노래방을 통해 S클럽 종업원들을 불렀다. S클럽 종업원들은 자신들 5명에 노래방 종업원 3명을 끼워서 대신 내보냈으며, 그들은 김승연 경호원들에게 붙들려 '''산으로 끌려가 폭행을 당했다.''' 이들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사실 폭행을 저지른 것은 자신들이 아니라고 호소하자, 김승연은 이젠 '''경호원들을 이끌고 가게로 쳐들어갔다.''' 북창동 S클럽에 도착한 김승연은 '내 아들 폭행한 놈들'을 끌고 오라고 말했고, 공포 분위기 속에서 가게 측이 폭행 가담자를 데려오자, 김승연의 아들 [[김동원(기업인)|김동원]]이 자신을 폭행한 사람에게 직접 주먹으로 보복을 가했다고 한다. 이 때 종업원들도 경호원에게 두들겨 맞았다. 이 과정에서 쇠파이프와 전기 충격기까지 동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김승연은 술값이라면서 카운터에 100만원을 던져 놓고 나갔다. >김 회장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내 아들이 눈을 다쳤으니]] [[사적제재|네놈들도 눈을 좀 맞아야겠다]]"라면서 가죽 장갑 낀 손으로 두 팔이 붙들린 종업원들의 눈을 집중 가격했다. 낮은 신음소리가 연신 터져나왔다. "저희는 전무님이 가서 사과하고 오라 그래서 왔을 뿐이에요" (중략) 김 회장 아들 폭행사건의 주모자로 지목된 "조 전무"가 김 회장 앞으로 불려왔다. 김 회장은 조 전무를 룸 안으로 데려갔다. 곧이어 고성과 함께 뺨을 때리는 듯한 소리가 세 차례 들려왔다. 김 회장은 곧이어 새벽에 폭행을 당했던 아들을 불러서 "네가 맞은 만큼 때려라"고 일렀다. 곧 룸 밖에서도 분명히 들을 수 있는 "퍽, 퍽, 퍽" 하는 폭행 소리가 새어나왔다. >---- >한겨레, 2013년 4월 5일.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으며 정치권에서까지 논의가 될 정도였다. 하술할 실상이 알려지기 전 국민들의 이에 대한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뉘었고 공개되고 나서도 반응은 일방적이지 않았다. 조폭과 다를 바 없는 폭행에 이어 경찰까지 움직여 없는 사건으로 처리했다는 점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도 많았으나, 두둔하는 사람들은 "서민 부모는 자식이 집단 폭행을 당해도 합의금만 받고 분을 삭힐 수밖에 없는데 능력이 있는 부모라면 당연히 때린 놈들 사지를 분질러 놓아야 한다"면서 그런 행위를 한 김승연을 칭찬했다. 대중 뿐 아니라 김구라, 복거일 등 유명인들도 김승연 회장을 옹호했다가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이들의 변호역시 원칙적으로 하면 안되는 일을 옹호했기 때문에 비난받았을 뿐이었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저랬겠느냐?"는 식으로 "분명히 잘한 행동은 아니지만 이해는 된다"면서 공감하는 반응들이 적잖았는데 '''"내 자식이 두들겨 맞고 왔으면, 재벌 회장이든 아니든간에 가해자를 한 대 쥐어박고 싶지 않겠냐?"'''는 식의 여론이 상당수 었던 것이다. 이런 반응이 시사하는 의미는 사건상 최초 피해자인 차남의 경우가 결투에 준하는 1:1 대결 끝에 패배했거나 쌍방 폭행 중 폭행 피해를 입은 정황이 아니라 1:8의 상황에서 일방적 집단 린치를 당했으므로 비겁한 클럽 종업원들이 보복의 명분을 제공했다는 인식상 조건이 여기서 갖춰졌다는 것이기도 하였다. 가해자들은 한화그룹 회장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모르고 저질렀다고 한다. 사실 워낙에 김승연이 보복폭행 출구전략을 범죄적으로 해서 묻히는 부분이지만, 보복피해자들도 죄질이 나쁘다. 시비가 붙은 게 누구의 잘못인가를 떠나서 8명이 한 명을 집단으로 구타한 것인데, 피해자가 재벌 아들이 아니라 평범한 서민이었다면 두들겨 맞고 합의금 몇 푼에 분을 삭혀야 했을 것 아닌가. 앞선 여론들의 경우도 분명 있지만 이런 사건은 [[대한민국]] 내에선 하도 [[조직폭력배]]나, [[학교폭력]]같은 문제 때문에 학을 뗀 사람들이 많아서, 보복 폭행의 피해를 입었다고 해도 피해자가 동정받는 경우도 드물고 김승연이 특권계층이 아닌 오히려 일반인이었다면 여론은 반분되지 않고 오히려 절대적 영웅시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이 특권계급으로 행세하던 재벌의 일탈 및 비행이 아니라 더 정치권으로 까지 비화된 까닭이 있다. 그러나 김승연은 단순히 사적제제로 보복 폭행 사건만을 저지른게 문제가 아니었다. 폭행 과정에서 뒤처리를 대신 해 줬던 '''[[조직폭력배]] 맘보파 두목 오 모에게 1억 1,000만원을 지급'''했다. 게다가 이 사건에 관한 소문이 언론에 퍼지기 전후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2&aid=0000233866|5억 8천만원을 뇌물로 뿌려서]] 전직 경찰청장을 비롯한 전 현직 경찰 간부들을 동원하여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하려 했고 이런 죄상이 드러나면서 이는 게이트가 되었다. 경찰이 한 달 넘게 사건 처리를 미적미적거렸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법원에서 재판을 받을 때는 변호인과 상의도 없이 피의자 심문 중에 뜬금포로 검사에게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5&aid=0000281309|'''"검사님은 복싱에 대해 많이 아십니까?"라고 반문하며 "아구 몇번 돌렸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거기다 이를 설명하며 '오른손, 왼손'이라고 말하며 잠시 복싱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변호인들이 진짜 혼이 나갈 정도로 경악했다고.. 또한, 쇠파이프와 전기 충격기 사용에 있어서 기억이 안 난다고 하다가 사실로 드러나자 겁만 주려는 용도로 썼다고 진술을 번복하기도 했다. [[파일:tdi_03.jpg]] 또한 기사 내용에선 '[[싸대기|귀싸대기]], 놈, [[맞짱]]' 드립까지 여과 없이 나오는 바람에 "재판 중인데 나이 먹고 철이 없는 드립을 쳤다"는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재판 중에는 힘들다면서 턱을 괴고 거의 드러누운 자세로 재판을 받다가 재판장에게 주의를 받고 저지를 당했다. 이 결과 1심에서 1년 6개월의 실형을 받았는데,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는지 양로원에서 사회봉사를 열심히 했다. 그 덕분인지 2심에선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200시간이 선고 되었다. 그리고 돈을 받고 뒤를 봐준 전직 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 간부들은 9월~1년 사이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은, 2007년 이후로도, 10년이 넘어도 계속 회자되는 사건이다. 위에서도 말한 SK 회장 [[최태원]]의 사촌동생 [[최철원]]의 [[재벌 2세 야구방망이 구타사건]], 소위 말하는 2010년 '''"맷값 폭행"''' 사건이 이것과 거의 유사한 사건이었기 때문에 잊혀질 타이밍을 놓친 것도 있겠지만, 한화 이글스가 죽을 쑬 때마다 '''"한화에서 유일하게 빠따 좀 휘두를 줄 안다는 인간이 타자를 안 뛰고 있기 때문이다(...)."'''라면서 비웃음이 섞인 비아냥을 듣는 통에 잊힐 리가 없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 사건 이후 [[한화 이글스 갤러리]]에서 '''"청계산'''"은 한화 그룹의 회장이자 [[한화 이글스]]의 구단주인 김승연 회장을 통칭하는 별명이 되었으며. [[https://m.dcinside.com/board/hanwhaeagles_new/2601439|청계산으로 끌려간다는 드립]] 또한 종종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