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수환 (문단 편집) ==== [[국민의 정부]]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김수환 추기경 은퇴.jpg|width=100%]]}}} || || 1998년 6월 22일, 서울대교구장 은퇴 미사 후 기념사진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김수환 추기경 성탄미사 2002.jpg|width=100%]]}}} || || 2002년, 혜화동 성당에서 성탄 미사를 집전하는 김수환 추기경 || [[김대중]] 대통령 취임 후 김 추기경의 활동이 그나마 가장 평화로운 시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보수와 진보 양대 세력의 거두가 모두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1997년 12월 15대 대선이 끝난지 4개월 뒤, [[봉두완]] 전 의원의 설득으로 1998년 2월 14일 이회창 후보가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를 축하하러 당선자 축하 미사에 나왔다. 김 당선자는 놀라며 덕담을 아끼지 않았고, 김 추기경도 큰 찬사를 보냈다. 그도 그럴게, 내키지 않았던 이회창 후보가 설득 된 것이 김수환 추기경의 전화였다고(...) 한국 현대사에서 보기 드문 화합의 장면이 연출 된 것. 한편으로는 대북화해 움직임에 발맞춰 남북화해를 위한 한반도 평화라는 주제로 많은 강연을 하였다. 그러던 1998년 6월 22일, 공식적으로 서울대교구장과 평양교구장 서리 직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위 문단에 서술된 것처럼 본래 1992년에 사임하려고 했으나 요한 바오로 2세의 권유로 6년 더 맡은 것이었고, 이미 나이가 80에 가까워지는 고령이었기에 더 이상의 직무 수행에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일주일 후 정진석 추기경이 새로운 서울대교구장으로 취임했다. 교구장 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왕성하게 사목활동을 했으며, 이 시기에는 김 추기경이 정치적 발언 같은 건 거의 하지 않고 온전히 사목활동만 했던 시기로 평가된다. 이 시기 PC통신과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혜화동 할아버지' 라는 닉네임으로 계정을 만들어 직접 글을 남기거나, 신자들의 편지에 답장을 해주었다. 김 추기경은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아서 처음에는 타자를 치는 것도 연습이 필요했다고 하는데, 나중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져 도움 없이도 글을 남길 수 있을 정도로 인터넷을 능숙하게 썼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들어 김 추기경의 건강이 조금씩 나빠지면서 온라인에서의 활동은 중단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