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봉연 (문단 편집) == 교육인 경력 == [[파일:external/image.munhwa.com/2010040201033633006002_b.jpg]] 이후 야구계를 떠나 2001년부터 [[극동대학교]] 사회체육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정년 퇴임했다. 정확히는 2001년 겸임 교수, 2002년부터 전임 교수였으며 2016년 2학기까지 강의를 하고 정년에 퇴임을 한 것이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과를 나왔기 때문에 교원 자격증이 있었는데 의도치 않게 교육자의 길을 가게 된 것 같다고 자평했다.[* 당시 프로야구가 출범전이라 고교 졸업 후 실업야구로 직행하거나, 대학교에 진학해 선수 생활을 이어나갔기 때문에 많은 선수가 학사 학위를 가지고 있다.] 그의 석사학위 취득 및 교수경력은 야구선수 중에서 보기 드문 경우이며[* 김봉연 외에 대표적인 석/박사 학위를 얻은 야구선수로는 [[박노준]], [[서용빈]]이 있다. 심지어 박노준은 박사학위를 따고 전임교수를 하다가 대학 총장까지 올랐다.], 선수/지도자 은퇴 이후 제 2의 삶을 성공적으로 개척한 사례로서 귀감이 되고 있다.[* 스포츠 선수나 군인, 연예인 같은 직종은 그들만의 리그가 구축되어 있는데다가, 어릴 적부터 해당 업계에 종사하면서 그 일만 계속해서 하다보니 사회경험을 쌓을 기회를 얻지 못하여 은퇴 후 사회에 진출했다가 실패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김봉연이 코치 시절 애제자로 키웠던 '''[[이호성]]'''이 그 대표적인 사례로 언급되곤 한다. 실제로 이호성이 범죄자가 되어 자살하자 가장 안타까워했던 이가 김봉연.] 그가 교수가 된 과정은 이렇다. 2000년 11월에 기아 타이거즈가 출범하고 나서 팀을 떠나게 되었는데, 친구들과 회포를 푸는 자리에 극동대학교 유기일 총장을 만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친구들이 "이 친구는 최고 선수였음에도 항상 공부를 해왔습니다. 강의를 해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어, 2001년 1학기에 겸임교수로 발령이 났다. 첫 강의 때는 자신의 이름을 대기만 해도 다 알고 강의 진행이 쉬워질 것이라 생각했으나, 왕년의 홈런왕이라고 하니까 "홈런왕은 [[이승엽]]이 아닌가?"라는 학생들의 반응이 왔다. 그래서 "부모님께 김봉연 선수한테 수업을 받는다고 말해보라"고 했더니 첫 강의하고 나서 다음 주 부터는 부모님 부탁으로 사인을 해달라는 학생들이 하나둘 나타났으며, 확인차 학교를 찾아오는 부모들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이 좋아지고 영어와 일어를 어느 정도 하던 터라서 부임 이듬해인 2002년에 전임 교수로 발령받았고, 학생처장과 홍보실장, 학과장 등 주요 보직을 도맡았다.[* [[http://www.kwangju.co.kr/article.php?aid=1195196182275965050|관련 기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