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기마궁수 (문단 편집) === [[중국]] === 원래 궁술은 [[공자]]의 육예 중 하나로 중시되던 것이었지만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많은 유목민 전사들이 북중국에 들어오면서 궁술의 중요성은 더 높아져갔다. 훈련소에서는 보병궁술과 마상궁술 모두가 정규적으로 실시되었고, 아예 궁술을 평범한 삶의 일부로 여기던 유목민들이 중국에 들어옴에 따라, 정기적 궁술 연마는 점차 필수과목이 되어갔다. 마상궁술은 3세기에서 7세기에 걸쳐 중요한 덕목으로 숭상받았고, 해당 세기들에 걸쳐 점진적으로 유목기병대의 전투양상에 관한 지배적 전투교리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발전양상은 유럽 기병대의 그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중국 및 유라시아 동부 초원일대에서, [[등자]]는 [[카타프락토이]](중장기병)의 도래와 함께 등장했다. 비록 중무장한 기병의 돌격 자체는 타지역에서 등자 이전에 먼저 모습을 선보였지만, 등자는 돌격의 실전성을 강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마상궁술도 등자가 나오기 이전에 이미 실존하고 있었다. 등자는 비슷하게 마상궁술의 효율성 또한 강화했다. 허나 중장기병의 돌격보단, 기동력을 자랑하던 마상궁술이 전장에서 훨씬 선호받는 무예로 떠올랐다. 여전히 중장기병은 보병대열 혹은 적 기병대를 향해 돌격을 감행했지만, 중량보다는 기동성에 더 높은 가치가 매겨졌다. 서구 군사사 학술서에서 꾸준히 지적하는 바에 따르면, 중국 제국의 주적은 거진 초원 유목민이었기에 그 기동성에 대항하기 위해 둔중한 중장기병보다는 재빠른 궁기병을 선호하게 되었다고 한다. 유목민들이 중국에 들어오면서 중장기병의 발전이 가속화되었지만, 그렇다고 궁기병의 가치가 쇠퇴한 것은 아니었고 당 시대에 들어서면 다시금 궁기병이 지배적 기마수단으로 거듭난다. 허나 또 [[송나라]], [[거란]], [[금나라]], [[서하]], [[몽골]]이 난립하는 중세 동아시아 세계는 [[카타프락토이]]의 최전성기를 일구게 된다. 그러나 궁기병은 여전히 이 과정에서도 중시되었다. 삼국지로 유명한 후한 시대의 경우, 삼국지가 끝나갈 때쯤(사마진 건국기) 슬슬 북방 유목민들이 경제적, 군사적으로 발전하며 통상적인 궁기병에 중기병을 섞어쓰기 시작했다. 궁기병 대열과 중기병 대열을 교대로 배치해, 정주민의 보병대에게 번갈아가며 공격하는 것. 정주민 보병대가 창병을 앞세워 기병돌격을 막으려 하면 궁기병이 쏴버리고, 궁기병에게 사격전으로 대응하기 위해 궁병을 앞세우면 그냥 중기병으로 돌격해버리는 식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