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마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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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족의 궁기병

1. 개요
2. 특징
2.1. 전략적 이점
2.2. 전술적 운용
2.3. 기마궁술의 어려움
3. 역사
4. 대중매체


1. 개요[편집]


언어별 명칭
한국어
궁기병()
기마궁수(騎)
영어
Horse Archer
Mounted Archer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기병. 역사적으로 기마궁수는 군 편제상 기병으로 편성되었고, 다른 기병들과 마찬가지로 마상에서 싸웠다.

역사적으로 말을 타면서 을 쏜다는 개념 즉 기사(騎射)는 인간을 길들이는 동시에 시작되었기에 상당히 오래되었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애용된 방법이지만, 서양보다는 동양[1]에서 애용한 방법이다. 전통적으로 활을 선호해 온 한민족의 선조들도 마찬가지로, 고구려 시대 고분벽화에도 말을 탄 채로 몸을 돌려 활을 쏘는 기병의 모습이 보인다.

중동, 중앙아시아, 몽골, 중국, 조선까지 사실상 아시아 전 지역에서 폭넓게 활용된 병종이다. 그러나 일본 전국시대 기마보병 같이 이동할 때만 말을 타는 병과는 기병으로 분류되지 않는다.[2]

2. 특징[편집]



2.1. 전략적 이점[편집]


육성이 매우 어려운 대신에 기병의 기동성과 궁병의 사거리를 동시에 보유했기에 전근대에는 한두 가지 병종만으로는 전술적으로 사실상 카운터가 없는 전략무기였다. 단편적인 전투 한두 번에서는 기마궁수보다 중기병이 전술적으로 더 강력할 수 있지만, 기마궁수는 일반적으로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경기병 중에서도 원거리 전투를 수행하였으므로, 적의 정보전달 속도보다 더 빠르게 적의 영토를 여기저기 들쑤시고 독립적인 활동을 벌이면서도 개개인이 몇 배의 보병에 맞먹는 전투력을 발휘하는 동시에 큰 피해를 입지 않은 채 장기간 활동할 수 있는 병종이었다.

현대에 와서 그냥 생각하기에는 "말타고 활 쏘는 게 뭐 얼마나 대단한 거라고..?"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는데, 이런 궁기병을 대단위로 편성하는 군사 세력은 당시 사람들에게 악몽 그 자체였으며, 역사에 이런 세력이 등장할 때마다 한 지역의 판도가 뿌리채 뒤흔들릴 정도로 영향력이 어마무시했다. 이는 많은 경우 유목민족이었고, 그 끝판왕은 너무나도 유명한 훈족몽골 제국이다.

전근대에는 최강의 정예부대라도 무적은 아니었다. 숫자의 차이가 있거나 지형상 제약이 있다면 자칫 수준이 떨어지는 보병 따위에게도 포위되어 전멸당할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마궁수는 10여 기만 모여있어도 10배의 보병에 맞먹는 독립적인 전투력과 생존력이 있었다. 빠른 속도로 영토를 휘젓는 기마궁수들을 상대하는 것은 현대의 전쟁으로 따지면 전투기를 미리 막아내는 수준의 노력이 필요했다. 특히나 현대에야 레이더나 정보통신 기술 따위가 있으나, 전근대에는 정보전달이 순전히 사람과 말의 속도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에 가장 빠른 정보전달 수단인 말을 타고 다니는데다가 생존에 집중하면 죽일 방법이 매우 적은 기마궁수들의 기동전술을 막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근본은 경기병인 까닭에 이나 요새와 같은 방어시설 앞에서는 한계를 보이고는 했다. 유목민족들이 제국을 세운 경우에는 따로 공성 병기나 다른 병과를 육성할 여건이 되어 그래도 정주민족 상대로 공성전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조직적이지 못한 침략은 이러한 방어시설에 격퇴당하고는 하였다.[3] 그래도 미처 보호받지 못하는 재산이나 인명에 대한 피해는 발생하였기에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기마궁수의 진정한 가치는 지속적으로 적을 괴롭힐 수 있게 해주는 생존력이었기에, 인류역사에서 총기류가 발달하기 이전까지 항상 특수한 위상을 지킬 수 있었다. 빠른 발을 이용해 유리하면 싸우고 불리하면 가버리니, 보병 중심 군대라면 언제나 상대방의 선택에 따라가는 신세일 수 밖에 없었다. 예컨대 일찍이 고대부터 기마궁사를 보병부대의 쇠뇌로 하나씩 잡아내는 효율적인 전술행동을 보였던 중국에서조차 기마궁사의 전략·전술적 유연성과 기동성을 이기지 못하고, 만리장성과 대형성곽 같은 미친 짓을 해가면서 이들을 막는 전략적 구도에 집착했다.


2.2. 전술적 운용[편집]


일단 궁기병과 궁보병의 순수한 사격전은 보병의 승리로 돌아갈 가능성이 컸다. 기마궁사들의 실제 전투거리는 1m~20m 내외로서 보병궁사에 비해서 사정거리가 매우 짧았다. 일부 전술서에서는 25m에서 일제사격을 시키라는 등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달리는 마상에서 활을 정확히 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었으므로 마상사격의 사거리는 보병궁사보다는 확실히 짧았다.[4] 이는 이라는 동물이 아무리 잘 훈련시키더라도 궁술 같은 섬세한 행동을 하기에는 동물의 호흡 같은 들숨날숨 등으로도 조준이 흔들리고, 말 위에서 활을 당긴다는 것 자체가 지상에서보다 2배는 많은 힘과 허릿심이 필요한 특수한 상황 때문이었다. 게다가 말 위에서는 일반적으로 크고 강력한 활을 사용하는 것이 어려웠고, 보병은 여차하면 활보다 더 멀리 쏠 수 있는 쇠뇌까지도 사용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강성한 유목민족이라도 전술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마케도니아 왕국과 싸운 스키타이인들처럼 정주민족한테 참패를 당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기마궁수는 단순히 활을 쏘는 기병이라는 전술적인 기능만 따졌을 때는 무적이 아니었다. 심지어는 평지에서 방패와 쇠뇌로 무장한 보병들에게 패주하는 일도 의외로 많았으며, 이로부터 전투 마차가 고안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사거리가 짧은만큼 활의 장력을 매우 강력하게 조절했고, 경무장 보병은 화살 한방만으로 죽일만큼 강력한 근접궁술을 사용했다. 기마궁술은 원거리 싸움법이지만, 기마창술에 가까운 근접 운용을 애용했다는 것이 다수의 기록에 남아있다.[5] 어차피 보병들은 기마궁사들의 기동력 탓에 일방적인 선제공격만으로도 즉사당할 위험을 안고 싸워야했으므로, 기마궁사의 전투거리도 전혀 짧은 거리가 아니었다. 전근대의 보병들은 단독으로는 거의 쓸모가 없고 대열을 맞춰서 단체로 정면공격을 해야 했는데, 기마궁수들은 보병의 대열이 회전하는 속도보다 빠르게 측면을 칠 수 있고, 보병들의 공격이 닿을락말락한 10m 내외에서 강력한 화살을 날리고 도망쳤으므로 보병들의 대열이 반격을 하려고 방향을 바꾸면 이미 저 멀리에 있었다. 게다가 잡으려고 달려가면 더 빠른 속도로 멀리 도망가고 그렇게 도망가면서 활을 쏴대니 골치가 아프다. 마치 스타크래프트의 뮤짤을 당하는 바이오닉 같은 처지인 셈이다. 이 경우 중요한 건 사거리가 아니라 기동력이었다. 이렇게 몰려와서 퍼붓고 가는 전술을 스웜 전술이라 부른다.

결국 궁기병을 상대할 때는 똑같이 기마궁수를 쓰는 것이 매우 좋았다.[6] 전 세계적으로 기병을 상대하는 법으로 가장 효율적인 건 결국 동수의 기병을 육성해 맞대결을 펼치는 것이었다. 예루살렘 십자군은 무슬림 궁기병을 상대하고자 현지 튀르크 궁기병인 투르코폴레스를 용병으로 고용하였으며, 유목민과 싸우던 조선 북방군은 기병-보병 비율이 8:2가 되기도 하는 등 기병을 육성하였다. 유명한 장수들이 기마궁술에 능한 사례도 많았는데, 어유소는 단기필마로 기마궁술로써 급습해오는 여진족 수십 명 발라버렸고, 신립도 기마궁술이 뛰어난 사람이었으며, 중국 후한말 장군인 공손찬 역시 기마궁수들로 백마의종을 편성해 엄청난 성과를 거두었다. 그밖에 삼국시대 때부터 고구려나 신라도 기마궁수를 육성했다. 조선전기 조선군은 토지문제로 세병제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국제정세가 안정적으로 변하자 군비 부담을 줄이고자 군축을 하면서 궁기병 비율이 높아지기도 하였는데, 이 또한 유목민족을 상대할 때 가장 효과적인 존재였기 때문이다.

다만, 이 모든 것은 유연한 기동성을 보장받는다는 전제 하에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궁기병들이 제대로 날뛸 환경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같은 궁기병으로 맞상대하지 않더라도 이들을 이길 수 있었다. 10세기 레히펠트 전투나 11세기 귀주 대첩, 13세기 아인 잘루트 전투, 14세기 크레시 전투 등 무수히 많은 전투에서 기동력을 상실한 기병들을 궁기병은커녕 설령 중기병이라도 순식간에 궤멸당하고는 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이름을 날린 기병대와 그 지휘관들은 탁 트였으며 충분히 넓고 평탄한 전장에서 싸우려고 했다. 게다가 궁기병으로서는 생존성과 기동성의 대가로 파괴력이 부족했던 까닭에, 기마문화를 지닌 정주민족은 물론 유목민족조차 여건이 된다면 대규모 중기병을 육성하고 기마충격전술을 구사하였다. 중기병 충격대와 경기병 기마궁수들은 상호보완적 존재로서, 카르헤 전투처럼 돌격시 제병협동전술을 구사하고는 했다.


2.3. 기마궁술의 어려움[편집]


궁술과 기마술은 둘 중 하나만 매진해도 숙련되기 매우 어려운 기술인데, 기마궁술은 그 두 가지 기술을 통달해야 나올 수 있는 기예였다. 그래서 두 기술이 생활화되어 있는 유목민들을 제외하면 자연스럽게 일상적으로 익힌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활을 쏘려면 두 손을 모두 써야 하는데, 고삐로 말을 통제하는 데에도 손이 필요한 상황에서 다루기에는 다른 무기들보다도 훨씬 어려웠기 때문이다.[7] 따라서 기마궁술을 쉽게 쓰려면 팔이 최소 세 개, 가능하면 네 개 달려있던지 해야 하는데 이는 키메라나 인공 기계팔이 개발되지 않는 이상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기사가 가능하려면 손으로 고삐를 쥐지 않고도 다리만 사용하여 말 위에서 능숙하게 균형을 잡고 행동할 뿐 아니라 말을 자기 뜻대로 통제(조종)까지 할 수 있어야 한다.[8] 또한 사격 측면에서도, 마상에서의 사격은 지상에서의 사격처럼 단단하게 발디딤을 할 수도 없고 몸과 시야가 계속 움직이고 흔들리는 상태이므로 이에 대해서도 별도의 숙련이 필요하다.

결국 능숙한 기마궁수는 어릴 때부터 장기간의 훈련을 거쳐야 육성할 수 있으며, 이런 고급인력을 대규모로 육성하기 위한 조건은 어릴 때부터 말 타고 사냥하는 게 생활의 일부인 유목민이 아니면 충족하기 어려운 것이다. 덤으로 말 역시 궁기병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훈련(왼 앞뒷발과 오른 앞뒷발이 동시에 움직이게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군마 공급이 비교적 용이하던 훈족이나 몽골 같은 유목민족 사회에서는 궁기병의 대량 편제가 가능했으며, 이는 이들이 세계를 제패하는 데에 중요한 요인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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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역사[편집]



3.1. 중국[편집]


원래 궁술은 공자의 육예 중 하나로 중시되던 것이었지만 삼국시대 많은 유목민 전사들이 북중국에 들어오면서 궁술의 중요성은 더 높아져갔다. 훈련소에서는 보병궁술과 마상궁술 모두가 정규적으로 실시되었고, 아예 궁술을 평범한 삶의 일부로 여기던 유목민들이 중국에 들어옴에 따라, 정기적 궁술 연마는 점차 필수과목이 되어갔다.

마상궁술은 3세기에서 7세기에 걸쳐 중요한 덕목으로 숭상받았고, 해당 세기들에 걸쳐 점진적으로 유목기병대의 전투양상에 관한 지배적 전투교리로 자리잡았다. 이러한 발전양상은 유럽 기병대의 그것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중국 및 유라시아 동부 초원일대에서, 등자카타프락토이(중장기병)의 도래와 함께 등장했다. 비록 중무장한 기병의 돌격 자체는 타지역에서 등자 이전에 먼저 모습을 선보였지만, 등자는 돌격의 실전성을 강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마상궁술도 등자가 나오기 이전에 이미 실존하고 있었다. 등자는 비슷하게 마상궁술의 효율성 또한 강화했다.

허나 중장기병의 돌격보단, 기동력을 자랑하던 마상궁술이 전장에서 훨씬 선호받는 무예로 떠올랐다. 여전히 중장기병은 보병대열 혹은 적 기병대를 향해 돌격을 감행했지만, 중량보다는 기동성에 더 높은 가치가 매겨졌다.

서구 군사사 학술서에서 꾸준히 지적하는 바에 따르면, 중국 제국의 주적은 거진 초원 유목민이었기에 그 기동성에 대항하기 위해 둔중한 중장기병보다는 재빠른 궁기병을 선호하게 되었다고 한다. 유목민들이 중국에 들어오면서 중장기병의 발전이 가속화되었지만, 그렇다고 궁기병의 가치가 쇠퇴한 것은 아니었고 당 시대에 들어서면 다시금 궁기병이 지배적 기마수단으로 거듭난다. 허나 또 송나라, 거란, 금나라, 서하, 몽골이 난립하는 중세 동아시아 세계는 카타프락토이의 최전성기를 일구게 된다. 그러나 궁기병은 여전히 이 과정에서도 중시되었다.

삼국지로 유명한 후한 시대의 경우, 삼국지가 끝나갈 때쯤(사마진 건국기) 슬슬 북방 유목민들이 경제적, 군사적으로 발전하며 통상적인 궁기병에 중기병을 섞어쓰기 시작했다. 궁기병 대열과 중기병 대열을 교대로 배치해, 정주민의 보병대에게 번갈아가며 공격하는 것. 정주민 보병대가 창병을 앞세워 기병돌격을 막으려 하면 궁기병이 쏴버리고, 궁기병에게 사격전으로 대응하기 위해 궁병을 앞세우면 그냥 중기병으로 돌격해버리는 식이었다.


3.2. 유럽[편집]


중세 서유럽에는 기마노병이 존재했었다. 주로 동유럽중동의 재빠른 경기병들과 맞써기 위해 창설되었고, 비교적 작은 쇠뇌를 사용했지만, 장전 속도는 그대로였기에 재빠른 기동성을 살려 치고 빠지는 전술을 썼으며, 장전시 을 안장과 왼쪽 다리에 낀 체 장전했었다.

유럽의 기마 석궁병은 (아시아의) 기마궁병과는 달리 사격전보다는 돌격전에 적합한 병종이었다. 이들은 중기병과 함께 편제되었고 그들 자신도 갑주를 착용해, 아군 기병이 적의 보병대에게 돌입하기 직전 석궁 직사를 가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방식은 훗날 권총기병으로 이어진다.

반면 동유럽에서는 순수한 궁기병도 존재했다. 이는 해당 지역들이 유목민족의 영향을 받거나 헝가리처럼 아예 그 후신인 경우가 많아 기마술과 궁술 모두 익숙했고, 쇠뇌가 마상에서 다루기에는 활보다 신경 쓸 게 많다보니, 숙련자라고 가정할 시 활이 쇠뇌보다 다루기 쉬웠기 때문이다. 특히 몽골을 비롯한 유목민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동유럽에 많았다.


3.3. 한국[편집]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 궁기병을 상당히 중요시했다.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에서도 말 위에서 효시로 보이는 화살을 그것도 어려운 배사(파르티안 궁법)로 날리는 궁수들이 등장하며, 고려시대 몽골과의 전투 이후로 이러한 궁기병은 더욱 더 중요시되었다. 조선에서는 그냥 궁술도 아니고 기마궁술이 무과시험 중 하나였고 무인으로써 마땅이 익혀야 할 기예로 인식하였다. 조선통신사에서도 일본인들 사이 유난히 인기있던 건 일본에서 좀처럼 보지 못하는 조선인들의 마상재와 기마궁술이었다.

조선 전기 창기병이 건재할 때에도 주력 병종은 궁기병이었으며, 임진왜란 당시 양반 의병장 정문부도 주력 부대가 궁기병이었기에 가토 기요마사의 군대를 유격전과 기습 매복으로 굴복시켰다. 실제로 왜군은 조선에서 겪은 의병쇼크와 화포쇼크 덕분에 개전 1년만에 병력 히데요시에게 벌써 병력 1/3을 잃었다고 장계를 올렸는데, 현대전에서 이 정도 손실은 전멸로 취급된다.[9] 그래서인지 한국의 기사 스포츠 역시 평가가 좋은데, 현대에는 유사한 스포츠인 활쏘기나 승마에 비하면 비교적 규모가 작긴 하지만 아주 없진 않다.


3.4. 일본[편집]


전국시대 이전의 사무라이들은 자주 을 타고 로써 전투를 벌이곤 했는데, 이들은 길이 2.2m가 넘는 일본장궁을 사용했다. 전국시대에는 손자병법풍림화산을 적극 차용한 걸로 유명한 다케다 신겐의 사례처럼 기마로 이동 후 내려서 싸웠던 "기마보병"의 형태로도 기병을 운용했으나, 이는 전국시대 특유의 운용법이었다.

일본식 장궁인 화궁(和弓)은 독특하게도 아랫장이 짧은 비대칭형 구조인데, 이에 관해서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흔히 알려져있듯 장궁으로도 말 위에서 활을 쏘기 위해서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습한 자연환경 탓에 각궁과 같은 고도의 복합궁을 만들기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자 목궁의 재료적 한계를 크기를 키우는 식으로 해결하던 중 나온 부작용이라는 것이다.

비록 일본도 5세기에는 단일궁을 벗어나 복수 목재를 결합한 복합궁 정도는 만들 수 있게 되었으나, 더 다채로운 소재를 쓸 수 있던 여타 지역보다는 성과가 미미할 수 밖에 없었다. 각궁 덕에 140m 유효사거리를 가진 한반도의 활에 비해 고작 25m 남짓되는 유효사거리를 늘리려고 2.2m로 크게 만들다보니 궁여지책으로 윗장이 길어졌다. 나무만 가지고 장력을 확보하려니 궁수 본인의 키보다도 큰 활을 만들었고, 그 결과 지면이라는 한계 탓에 아랫장을 최대치로 만들고도 부족하여 윗장으로 더 확장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당장 장력을 확보하더라도 탄성의 불균형 탓에, 시위를 당긴상태까지는 균형을 잡을 수 있더라도 쏘는 순간 균형이 흐트러져 힘이 분산되어버렸다.[10]

현재는 기예의 형태인 야부사메로 그 전통이 남아 있다. 신사에서 매년 예대제를 지낼 때마다 치르는 필수요소가 되어 일본 각지에서 시연되고 있다. 그러나 야부사메 자체가 일종의 제례의식같은 형태로 전승되고 있기에 여러나라의 마상궁술들에 비하면 실전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3.5. 북미[편집]


북미대륙에는 본래 이 서식하지 않았고 말 같은 용도로 쓸 수 있는 비슷한 가축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유럽인들이 북미대륙에 말을 가지고 들어오기 전까지 아메리카 원주민들 사이에서는 기마궁수라는 개념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유럽인들로부터 말이라는 가축을 얻은 아메리카 원주민들 중 아파치 부족과 코만치 부족은 아무도 가르쳐 준 적이 없는 기마궁술을 독자적으로 체득했다. 심지어는 영국 등을 통해 서양의 총까지 입수하여 탁월한 기마사격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3.6. 쇠퇴[편집]


기마궁사의 쇠퇴는 몇 단계에 걸쳐서 일어났다. 1차는 성벽과 같은 방어구조물의 발달이었으며, 2차는 쇠뇌와 같은 보병화력의 증강이었고, 최종적으로는 화승총을 시작으로 총기의 시대가 열리면서였다. 그 이전에는 기마궁사라는 존재가 단 수십 기만 있어도 상대방은 보병연대, 중기병 수십기, 성곽 방어물 같은 엄청난 경제적인 지출과 사회적인 보안망을 강요받아야 했다. 아니면, 똑같이 기마궁사를 육성하거나.

기마궁술은 궁극적으로 총포의 발달에 밀려 점점 쇠퇴하였다. 보병은 물론 기병조차 총을 중심으로 무장이 통일되어갔고, 전술도 테르시오를 거쳐 전열보병으로 발전하였다. 이제 궁기병은 조밀하게 구성된 보병들의 가공할 화력 앞에서 녹아내리기 십상이었다. 특히 서유럽의 경우, 기마궁술 자체가 유목민족과 밀접한 반면 지리적으로 그들과 멀리 떨어져있었기에, 고대 시절부터 기마궁술의 전통이 없다시피 했고, 중세 때 이미 보병조차 활 자체를 잘 안 쓰기 시작하여 거의 사장되었다. 그나마 웨일스 산악지대의 장궁 문화를 접한 영국이나 바다 건너 합성궁을 써대는 동로마 제국, 레반트, 투르크 등과 교류하던 이탈리아 등에서는 소수 기마궁수 부대를 편제한 적은 있지만 대규모는 아니었다. 보병이든 기병이든 주로 쇠뇌와 창을 썼기에 화기 도입 후에는 쇠뇌의 지분을 총이 빠르게 차지하였고, 총검 발명 후에는 창조차 도태되었다. 게다가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조차 총을 접한 후로는 활보다 총을 선호하며 기마총병으로 활동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런데도 기마궁수는 19세기까지 실존했다. 청나라는 망하기 직전까지도 기강이 해이해진 팔기군을 어떻게든 유지하면서 이들에게 기마궁술을 훈련하도록 했으며, 일부 아메리카 원주민도 총의 보조로 활을 사용했다. 심지어 서유럽에서도 19세기 초에 기마궁수들이 활동한 적이 있었는데, 나폴레옹 전쟁러시아 제국바시키르인 경기병들이 대표적이다. 유럽인 화가들은 바시키르인 궁기병들을 매우 이국적인 존재로 보고 이들 관련한 그림을 적잖이 남겼다. 다만 궁기병이 본격적으로 활약할 시기는 한참 지난 까닭에 바시키르 경기병들의 역할은 정찰, 패잔병 추격에 국한되었다.[11]

활이라는 무기가 총이라는 더 우월한 무기로 대체되면서 궁병과 동시에 기마궁수도 몰락했지만, 말 위에 탄 채 원거리 무기를 사용하는 병종이라는 개념은 총기병(Carabineer)과 용기병(Dragoon)으로 계승되어 한동안 남았다. 이후 총기병과 용기병도 전통적인 기병 자체가 도태되자 이들도 기갑이나 항공 수색대, 기계화보병 등으로 전환되어 오늘날에는 헬기전차, 장갑차를 타고 다닌다.


4. 대중매체[편집]


유목민족 및 그 계통 정주민족을 다루는 매체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특히 몽골제국의 역사를 다룬 드라마에서 기마궁수가 많이 나온다. 그리고 중국 사극에서는 꽤 기마궁수들이 많이 나왔다.

한국 사극에서는 KBS의 삼국기, 불멸의 이순신, 천추태후, 근초고왕, 광개토태왕, 대왕의 꿈, 징비록, 한국사기, 화랑에서 기마궁수가 나왔다. MBC에서는 주몽, 무신에서 기마궁수가 나왔다. SBS는 연개소문에서 볼 수 있다.

이현세의 만화한국사에서도 궁기병이 많이 나온다.

RTS류 게임에서도 전근대를 다룬다면 곧잘 볼 수 있다. 주로 경쾌한 기동성과 원거리 공격이라는 특성이 맞물려 전술적 유연성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장갑 및 체력이나 사거리, 유지비 등에서 무언가 하나 이상은 반드시 손해를 보는 병종이기도 하다.

반면 FPS류 게임에서는 활을 쏘는 캐릭터는 있어도 궁기병은 거의 없다. 이는 마상전투라는 메카니즘 자체가 제작자의 제작도 플레이어의 숙련도 모두 극악으로 어렵기 때문이다.기사나 유목전사들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련하는데 당연할 걸지도 그래도 마운트 앤 블레이드 시리즈나 엘더스크롤 5: 스카이림처럼 구현하거나 최소한 쓸 수는 있는 수준으로 만든 경우도 있다.


4.1. 개별 문서가 존재하는 기마궁수[편집]





4.2. 라이즈 오브 네이션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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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빙샷이 가능한 견제 유닛. 무빙샷이라고 해서 도망치다 멈춰서 쏘고 다시 도망치는 게 아니라, 사거리 내에 적이 들어오면 아무런 페널티 없이 이동하는 채로 활이나 총을 연사한다! 공격력이나 공격 속도, 정확도 등이 정지해서 사격하는 것과 전혀 차이가 없다. 심지어 오른쪽에 있는 적도 공격이 가능하다.[12] 정규군이 없는 빈틈을 타 약탈하는 데 특화되었다는 이미지 때문인지 일꾼이나 보급 차량 등 민간인 유닛에게 추가 피해 보너스가 있어서 이들을 엄청나게 잘 녹인다. 다만 일반 궁병보다 사거리가 약간 짧고, 기병에게 별 피해를 주지 못하는 궁병의 특성은 여전하며, 적의 보병과 맞서는 정규전 효율은 한 번 생산하면 셋씩 분대를 이루어 나오는 궁병에 비해 떨어진다.

화약 시대부터 무기가 화약 무기로 바뀌어 용기병이 되며, 다음 시대에는 카빈을 사용하다가 최종적으로 산업 시대가 오면 경기병 계열과 통합돼 장갑차가 된다. 장갑차도 이동 사격이 가능한 것은 마찬가지.


4.3. 문명 시리즈[편집]


문명 4부터 최신작 문명 6까지 등장한다.
  • 문명 4: 고전 시대의 기병 유닛으로, 원거리 공격 시스템은 후속작부터 생겼으므로 활을 쏘긴 하지만 근접 공격을 한다. 높은 전투력과 행동력 덕분에 고전 시대의 주력을 맡는 일이 많으며, 창병이나 코끼리 정도만 피하면 적수가 될 만한 유닛이 드물다. 중세 시대에는 근접 유닛을 상대로 전투력 보너스를 제공하는 충격 진급을 찍고 철퇴병과 교환해 생산 비용 측면에서 이득을 볼 수도 있고, 근접 유닛을 상대하라고 만들어진 유닛인 석궁병과 맞바꿀 수도 있다.
  • 문명 5: 훈 문명의 고유 유닛이다. 전차 궁수를 대체하는데, 말 자원이 필요 없고 전차 궁수와 달리 험지로 이동해도 행동력을 모두 소모하지 않으며 평지에서 전투력 보너스를 제공하는 정확도 1 진급을 받은 채로 생산된다. 이 하나하나는 소소하지만 몽땅 모으면 이게 뭐지 싶을 정도로 강력해지는데, 심지어 훈은 목축업 기술을 가지고 게임을 시작하므로 기술 두 개만 연구하면 이 괴물을 뽑을 수 있게 된다. 진급을 착실히 쌓고 수를 불리면 고전 시대의 검사는 물론 중세 장창병과도 상대할 만 하며, 이렇게 적 유닛들을 다 치우고 도시 공격에 특화된 또다른 괴물인 공성추에게 배턴을 넘기면 된다.
  • 문명 6: 야만인의 고유 유닛인 야만인 궁기병과 스키타이 문명의 고유 유닛인 사카 궁기병 두 종류가 있다. 이 중에 야만인 궁기병은 원거리 기병 계통임에도 대기병 페널티를 얻어맞는 등 큰 위협은 아니며, 사카 궁기병은 단독으로는 그렇게까지 큰 위력을 발휘하지는 못하며 생산 비용도 싼 편이 아니다. 하지만 스키타이의 문명 특성 덕분에 하나 생산할 때마다 원 플러스 원으로 하나 더 생성되며, 부상당한 적 유닛을 상대로 전투력 보너스를 받고 적 유닛을 제거할 때마다 체력을 회복하는 토미리스의 지도자 특성이 더해지면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다만 적의 기마병에는 유의. 행동력이 똑같기 때문에, 추격에서 벗어나기가 굉장히 힘들다.


4.4. 삼국지 조조전[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삼국지 조조전/병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궁기병이란 병과로 등장한다. 똑같이 활을 사용하는 궁병보다 사거리는 짧지만 공격력이 A인 궁병에 비해 궁기병은 공격력이 S로 매우 강하며 기병이라는 설정답게 평지에서 기동력이 좋다. 하지만 후반에 갈수록 궁기병에게 불리한 지형이 많이 나와서 후반엔 버려지게 되는 비운의 병과. 주요 아군 무장으로는 하후연장합이 있다.

4.5. 토탈 워 시리즈[편집]


토탈 워: 나폴레옹, 토탈 워 사가: 브리타니아의 왕좌를 제외한 전 시리즈에서 등장하며,[13] 주로 유목민 문명의 전매 유닛이나 다름없다. 성능은 공통적으로 원거리에선 막강하지만 근접전에 돌입하면 몹시 무력하다. 다만 기병 중에서도 기동성이 몹시 뛰어난 유닛이기에 원거리 유닛이 없다면 근접전으로 돌입하는 것 자체가 몹시 어려우며, 이를 이용해 궁기병 부대를 가지고 사격능력이 빈약한 적 군단을 유린하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대부분 갑옷이 빈약해서 사거리나 화력이 상대적으로 뛰어난 궁병이나 총병이 천적이다. 또한 궁병에 비해 화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중무장한 보병이나 기병 역시 잡기 까다로운 상대. 근접전 능력이나 돌격 효과가 떨어지므로, 이들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충격 효과가 뛰어난 중기병이나 군단을 보조해줄 중보병대가 필수이다. 그렇지 않다면, 신나게 적을 유린해 놓고서도 결정타를 먹일 수단이 없어 도망가거나 역관광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14] 반면 갑옷이 빈약한 경보병이나 원거리 기병이지만 사거리가 짧은 투창기병 상대로는 최고의 상성을 보인다.

다만 위의 사항들은 근접전이 빈약한 초기 궁기병에 한정. 로마: 토탈 워토탈 워: 로마 2, 미디블2: 토탈 워 등에는 근접전도 뛰어난 중무장 궁기병들도 간혹 등장하는데, 이 경우 높은 사격능력에 여차하면 돌격할 수도 있고, 적 궁병의 사격에도 잘 죽지 않는 최강의 먼치킨 유닛이 된다.[15] 가장 악명높은 경우가 롬토의 카타프락트 아처로, 이 유닛만으로 어지간한 적 군단을 쓸어버릴 수 있는 미친 위력으로 유명하다. 미디블2의 바르다리오타이나 드보르 궁기병 역시 여기에 해당하는 사례.

파르티아, 스키타이, 아르메니아의 유닛으로 등장하며 초반에는 극도의 거지 생활을 해야하는 3팩션에게는 희망과도 마찬가지인 유닛이다. 또한 이들은 중무장 궁기병도 운용하기에 초반 이후로도 계속 쓰인다. 그 외 세력은 스키타이 지역이나 카프카스, 아나톨리아 지역에서 용병 스키타이 궁기병을 고용해서 운용할 수 있다.
동유럽권 국가인 러시아, 동로마 제국, 폴란드, 헝가리와 이슬람권인 투르크, 이집트, 몽골, 티무르, 서유럽권 국가 중 프랑스의 유닛으로 등장한다. 그외 팩션들도 아나톨리아레반트 등 동방 지역에서 용병으로 고용 가능하다. 기병 토탈워의 대표 사례답게 이 시리즈에서도 어마무시한 위력을 자랑한다. 특히 근접 능력도 좋고 유지비도 없는 몽골 중무장 궁기병대가 개사기급이며 그외에도 드보르 궁기병, 바르다리오타이등도 사기급 평가를 받는 중. 그외에도 서유럽권으로 가면 말위에서 쇠뇌를 다루는 쇠뇌기병들도 존재한다. 킹덤즈 캠페인으로 가면 브리타니아와 아메리카 캠페인을 제외한 나머지 시리즈에서 등장한다.
폴란드-리투아니아와 러시아, 크림 칸국, 쿠를란트 공국 같은 동유럽 국가들이나 오스만 제국, 페르시아, 마이소르, 무굴 제국 등의 중동~인도의 이슬람권 국가의 유닛으로 등장한다. 다만 시대가 전장의 주역이 냉병기에서 화기로 넘어간 시대인지라 큰 활약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토탈 워: 나폴레옹에서는 활을 든 기병은 사라졌지만 샤쇠르나 낙타 총병 같은 총기병은 남아있어 비슷한 역할을 맡는다.
일본문화의 궁기병에 해당하는 야부사메 기병이 등장한다. 성능 자체는 쓸만하지만, 근접전이 빈약한데다 다른 시리즈의 궁기병과는 달리 도망치면서 활을 쏠 수 있는 파르티안 샷 기능이 없어 활용도는 다소 떨어지는 편. 일반적인 구성에서는 애매할지 몰라도 올기병 군단을 만들때는 중요한 유닛인데 적 진형을 흔들고 창병을 카운터 칠 수 있는 기병이기 때문.[16] 특히 기병 특화인 다케다 가문 플레이시 능력치도 더 좋고 모집비, 유지비도 싸기 때문에 한 번쯤은 써보게 된다. 사무라이의 태동에서는 사무라이 기병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데 근접전 수치도 괜찮아서 쇼군 시리즈에서 그나마 대접받는 궁기병의 케이스. 사무라이의 몰락에서도 활 키헤이와 사무라이 영웅이라는 두 기마궁수 유닛이 존재한다. 그러나 전국시대에서도 효용이 떨어지는 유닛이 전열보병의 시대에선 더더욱 힘을 발휘할 순 없기에 컨셉질이 아니면 버려진다.
파르티아, 아르메니아 등의 동방 문명권, 마사게타이, 로열 스키타이, 록솔라니의 유목민 문명권의 주력 병종으로 활약한다. 그 외에는 흑해 문명권의 콜키스와 키메리아, 발칸 문명권의 게타이, 헬레니즘 문명권의 박트리아에서도 사용하며 사막 문명권이나 이집트 같은 경우 낙타 궁기병을 운용하기도 한다. 그외에는 로마가 보스포루스, 폰토-카스피아, 스키티아, 사르마티아, 파르티아 속주에 보조병 병영을 지으면 생산할 수 있다. 특히 중갑 궁기병의 성능이 좋다보니 아예 로마를 버리고 보스포루스로 런하는 예능성 전략도 나올 정도다. 그외에도 위의 보조병 생산 지역들과 루기, 코라스미아 지방에서 용병으로 고용이 가능하며 궁기병이 존재하는 팩션을 속국화시켜 징집도 가능하다. 분열된 제국 캠페인에 들어서면 동방 문명권인 사산조와 아르메니아, 유목민 문명권인 알란이 당연히 생산 가능하고 로마와 팔미라, 갈리아 제국 같은 로마 제국 문명권에서도 정규군 기마궁수를 운용해볼 수 있다. 나머지 팩션들은 코라스미아, 사르마티아, 스키티아, 트란스옥시아나, 보스포루스 지방에서 용병으로 고용할 수 있지만 사르마티아가 스타팅 지역인 고트가 아니고서야 고용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려 굳이 뽑을 일은 없다. 그외에도 스파르타의 분노 캠페인에서 논플레이어블이긴 하지만 페르시아의 유닛으로 사카 기마궁수가 나오며 공화정의 부흥 캠페인에서도 그리스 문명권인 타라스와 시라쿠사가 히포톡소테라는 이름으로 생산하지만 여기서는 활 성능도 시원찮고 파르티안샷이 안돼서 버려진다.
아틸라의 시대이니만큼 당연히 등장. 플레이어블 팩션 중에서 훈족, 백훈족, 사산조, 동로마, 알란, 악숨, 힘야르 팩션이 가지고 있다. 백훈족의 백훈족 궁기병이나 훈족의 악마 궁기병이 사기급으로 강하며 두 유목민 팩션 먹여살리는 원동력으로 평가 된다. 여기서는 특이하게 모든 궁기병이 파르티안샷을 들고 있는 것이 아니며 그것 때문에 궁기병을 안쓰는 유저들도 있다.[17]
괴물과 화약, 마법이 판을 치는 판타지이지만 중세~근대풍 세계관이기에 여기서도 등장. 순수 활을 든 기병으로는 브레토니아의 요맨 아처기수, 우드 엘프의 글레이드 라이더, 그린스킨의 고블린 울프 라이더 아처, 포레스트 고블린 스파이더 라이더 아처가 있다. 요맨 아처는 평범한 궁기병이지만 브레토니아가 스웜 전술을 쓸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지만 캠페인에서는 농민 경제 페널티에 들어가기 때문에 많이 쓰지는 못한다는 게 단점. 글레이드 라이더는 역시나 우드 엘프 궁수 시리즈를 장식할 정도로 명성이 있다. 다만 두르투 플레이 시 엠버를 소비함으로 오리온으로 플레이 해야 상대적으로 자주 볼 수 있었는데 뒤틀림과 황혼 dlc로 우드 엘프 리메이크가 진행 되면서 엠버 소모 부담 없이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린스킨 같은 경우 초반 기동성과 싼 가격으로 상투머리 밀때는 유용하나 그 외에는 성능이 애매해서 잘 쓰이진 않는다. 활이 아닌 투척무기를 쓰는 원거리 기병도 있는데 제국의 피스톨리어와 아웃라이더 총기병, 투창이나 도끼를 던지는 노스카, 카오스 워리어의 머로더 호스맨이 대표적이며 비스트맨들도 센티고어라는 도끼 투척 기병을 운용한다.
하이 엘프의 엘리리안 라이더(아처)와 다크 엘프의 다크 라이더(리피터 크로스보우)로 운영된다. 엘리리안 라이더는 궁기병으로서 장갑이 상위성능이라 좀더 원 거리에 잘 버티는 특성이 있으며 다크 라이더는 슈투르첼시처럼 석궁을 들었기에 딜링도 쏠쏠해 아웃라이더처럼 써먹을수 있는 다크 엘프 플레이의 핵심이다. DLC로 추가된 툼킹 팩션에도 해골 궁수기병이라는 궁기병이 있는데 근접스탯은 사격보병에게도 질 정도로 절망적이지만 선봉대 특성과 일반 궁병급 사정거리를 가지고 있어 시작부터 적의 배후지에 배치해 근접전을 피하면서 긴 사정거리를 이용해 지속적으로 적을 깎아먹으며 피해를 누적시키는, 전형적인 스웜 전술에 충실한 궁기병이다.
기마 궁수, 기마 노병의 두 가지 유형이 있으며 기마 궁수는 모든 유형의 장수들이, 기마 노병은 책사 유형의 장수가 뽑을 수 있다. 안 그래도 궁병이 자비없이 강하다고 평가받는 이 게임에서 준수한 탄약량과 빠른 연사력에 근접전도 어느정도 되는, 쓸만한 유닛이라는 평가는 계속 이어진다. 그 뒤로도 팔왕 dlc에서 철갑 기마 궁수가 천명 dlc에서 최고급 노기병인 황궁 기병대가 추가되는 등 계속 인기를 끌 병종. 공손찬과 마등, 사마영, 유총, 사마옹은 각각 백마의종, 강족 습격대,[18] 진군 치안대, 선비족 기마 궁수라는 고유 궁기병을 뽑을수 있다.
켄타우로스 최종 티어 유닛인 켄타우로스 고참병과 아마존 문명인 히폴리테의 고유 유닛으로 등장한다.
키슬레프 소속 유닛으로 등장이 확정되었다. 선봉배치도 되고 성능도 썩 나쁘진 않지만 경장 썰매라는 완벽한 상위호환 유닛이 있어 잘 쓰이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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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특히 중동중앙아시아, 동북아시아.[2] 일본도 말 위에서 활을 쏘는 기사법이 한반도를 통해 전해졌으나, 헤이안 시대 이후 전술이 변화하면서 전국시대 때는 사장된 군사 기술이다. 현대에 전해지는 야부사메 같은 기마 궁술도 사실상 행사용에 가깝다. 중세 말 영국 기마장궁병도 마찬가지 이유로 기병으로 분류되지 않는다.[3] 전자의 대표적 사례는 한창 잘 나가던 시기의 몽골 제국이 있으며, 후자의 예시로는 가톨릭 개종 이전의 마자르족이 있다. 마자르인들은 중부유럽의 거주지들이 요새화되자 차츰 재미를 보기 힘들어졌고, 레히펠트 전투에서는 지형 탓에 기동력이 상실되자 그대로 도륙당하고 말았다.[4] 더불어 상대가 갑옷이라도 차려입었다면 화살로 뚫는 게 어려워서 도보 궁병들조차 일부러 가까이서 쏘기도 했다.[5] 반대로 창은 사거리가 제한되는 비소모성 원거리무기로 취급되었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기병창을 쓰는 서유럽 기병문화 상 중기병이 궁기병의 영역을 일정 부분 선점한 셈이다. 이에 관해서는 창(무기) 문서를 참고할 것.[6] 마치 현대전에서 저격수를 상대하는데는 저격수가 좋은 것과 비슷하다.[7] 예컨대 도검류는 무기를 안 쓰는 손에 고삐를 쥘 수 있었고, 방패를 들더라도 역시 고삐를 함께 잡을 수 있었다. 창의 경우 최초에는 등자도 없이 양손으로 휘두르거나 찔러야 해서 매우 위험하고 고난도의 기술로 취급되었으나, 한 손만으로 창을 잡는 카우치드(couched) 방식이 고안된 후에는 마찬가지로 안정적으로 고삐를 잡을 수 있었다.[8] 이게 왜 힘든지 체감하고 싶다면 핸들 놓고서 자전거를 타보면 된다. 고삐 놓고 말 타는 것은 이것보다도 훨씬 어렵다. 그런데 심지어 기마궁술로 유명했던 파르티아인이나 스키타이인들은 등자도 없이 이것을 해냈다. 비유하자면 핸들을 놓았을 뿐만 아니라 페달조차 밟지 않은 채 자전거를 타면서 비비탄총을 쏘는 것의 몇 배나 더 어려운 일이라고 보면 된다.[9] 의병장들이 더욱 활약할 수 있던 배경으로는 조선사회와 일본사회 간 차이도 있었다. 수백년 간 이어져온 사무라이의 압제와 60~90% 세율을 자랑하는 가렴주구 속에 무기력한 일본 백성들에 익숙했던 왜군들은 조선의 백성도 반항하기를 두려워할 줄 알고 본국에서 하던 대로 안이하게 약탈을 즐기려고 종종 흩어졌다가, 의병대에게 각개격파당하기 일쑤였다.[10] 전근대 내내 일본에서도 활과 투석을 비롯한 원거리 무기 비중이 늘 컸으나, 이러한 원거리 사격 수단의 기술적 제한 탓에 전국시대 일본은 일본 소녀들을 포르투갈 노예상에게 팔아치워서라도 조총과 화약을 빨리 단번에 더 많이 수입하려는 군비 경쟁에 혈안이었다. 일본의 백성이 팔려나가는 노예무역이 워낙 극심해져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금지령까지 내려야할 정도. 물론 인신매매 자체를 금지한 게 아니라 이제 일본인 말고 외국인만 납치해서 팔아버려라는 소리였지만, 이런 법령 또한 회피하려고 동남아를 시작해서 20세기 초까지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해외 매춘굴에 일본 소녀 가라유키상을 보내 포주짓을 해서 각종 전쟁자금과 나라 발전기금을 강제로 벌어들이게 했다. 메이지 유신 기간으로만 한정하더라도 이렇게 희생된 일본 소녀만 30만 명이 되었으나, 그만큼 벌어들인 외화도 어마어마한지 일본의 위정자들은 부끄러워하기는커녕 후쿠자와 유키치 같은 1만엔 최고액권에 실리는 유신지사들마저 가라유키상이라는 속된 말보다 "죠시군(낭자군)"이라 부르면서 국가기간 사업으로 칭송했다. 참고로 가라유키상을 유행시킨 장본인은 중국인 왜구 두목 왕직 휘하 포르투갈인으로부터 조총 조기 도입 사업의 자금줄을 찾던 오다 노부나가였다.[11] 러시아 제국의 경우 다양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민족들이 살다보니 전쟁에 신민을 동원하다보면 이렇게 구시대적 병력이 소집되기도 했다. 심지어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십자군의 후예로 알려진 조지아 산골 부족에서 쇄자갑을 차려입고 칼과 방패, 머스킷을 쥔 전사들이 참전하기도 했다. #조지아 산악부족들: KHEVSURS[12] 무언가에 앉아서 활 쏘는 시늉을 한 번만 해 보면 알겠지만, 말을 타고 사격을 할 때에는 몸 오른쪽이 사각지대가 되므로 이쪽을 공격하려면 말을 부려 방향을 돌려야 한다. 쇠뇌나, 쇠뇌와 기본적으로 자세가 거의 같은 소총도 마찬가지다.[13] 단 나토에서도 총기병이 등장하고 브리타니아 사가에서는 투창 기병이 나오기에 이들 시리즈에서 원거리 기병 자체가 없는 건 아니다.[14] 단, 이를 역이용해 지속적인 짤짤이로 적을 깎아먹고 화살이 떨어지면 바로 퇴각하는 전술도 쓸만하다.[15] 한 마디로 모든 유닛이 중기병과 궁기병의 역할을 겸하게 되는 셈이다. 중기병과 궁기병으로 나뉘는 일반적인 스웜잔술을 쓸 때보다 효율이 훨씬 좋아지는 셈.[16] 모든 시리즈에서 궁기병의 카운터인 궁병은 어쩔까하는 의문은 올기병이라는 점을 이용해 야부사메 기병이 창병의 발목을 잡는 사이 카타나 기병이나 야리 기병, 하다못해 경기병이나 장군 근위대로 끊어버리면 된다.[17] 훈과 백훈, 알란은 유목민 세력이니 당연히 모든 궁기병이 파르티안샷이 가능하고 사산조는 자예단을 제외한 나머지 궁기병은 파르티안 샷이 안된다. 동로마, 악숨, 힘야르도 파르티안샷이 없어서 궁기병이 버려진다.[18] 마등과 사마영이 겹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