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국공내전/대체역사 (문단 편집) == 중국판 [[남북분단]] == ||[[파일:999999456456456456.png|width=100%]]|| || 중국 남북분단을 가정한 지도 || 중국이 [[중국국민당]](여당)과 [[중국공산당]](야당)이 공존하는 양당제 국가가 되는 것은 불가능했다. [[장제스]]와 [[마오쩌둥]]은 서로를 말살해야 하는 적으로 여겼기 때문에, [[국공합작]]이 깨지고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결국 전쟁이 무승부로 끝났다면 다음과 같은 상황을 가정할 수 있다. * [[황허]]나 [[회하]], 혹은 [[장강|장강(양쯔강)]]을 경계로 '''[[남북분단]]'''되어 '''[[분단국가]]'''가 된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쪽은 현실 역사와 중국 남북 균형에 비추어 장강. * 과거 [[오호십육국시대]]나 [[삼국시대]], [[남북조 시대]], [[금나라]] - [[남송]], [[청나라]] - [[남명]]처럼 비슷한 사례들이 있다. *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도는 [[베이징]], [[중화민국]]의 수도는 경계가 [[황허]]나 [[회하]]의 경우 [[난징]], 장강의 경우 [[광저우]]가 된다. * 남중과 외교를 맺은 나라에서 [[중국어]]를 배울 때 [[정체자]]로 배우게 된다.[* [[유럽]]은 아무래도 [[중국어]] 교육이 [[간체자]] 중심이지만 [[미국]]은 중국과 수교한 지 40년이 넘었음에도 간체자 일변도의 교육을 하진 않는다. 간체자와 정체자와 공존하는 편이다. 그러니 외교 관계라는 것이 어찌 보면 절대적이진 않다. 대만을 봐도, 미국과 단교 후에 미국식 영어 교육을 폐기하면서 외교 관계가 있는 벨리즈, 마셜제도, 세인트빈센트그레나딘 같은 나라가 쓰는 영어로 교육 방식을 바꾼 것이 절대 아니다. 계속 미국식 영어 교육을 유지한다. 바티칸(중화민국의 수교국) 박물관 역시 중국어 안내에서 간체를 사용한다.] * 국제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공]]", "[[중국|북중]]"(North China) 등으로, [[중화민국]]은 "[[민국]]", "[[자유중국]]", "[[대만|남중]]"(South China) 등으로 불릴 것이다. * 국공 내전보다는 [[6.25 전쟁|중국 전쟁]]이라 불릴 것이다. * 남중국은 [[일본]]이 [[타이완]]에 남겨둔 기술을 활용하여 경제 발전을 크게 이룰 가능성이 있다. 특히 위 사진처럼 분단이 이루어질 경우 해양 진출로의 거의 전부를 남중이 독차지하므로 해양무역을 통해 경제 발전이 훨씬 가속화되었을 것이며, [[중화민국]]이 초강국이 될 확률이 매우 높았을 것이다. 아무리 일본이 중국 동해안을 초토화시켰다지만 중화민국은 중국 전통의 곡창지대인 강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애당초 우위에 있는데다 공산주의 포위 명목으로 통일한국, 일본과 같이 미국이 지원을 많이 했을 가능성이 높다. * 중화민국은 장강 이남의 거대한 경제력을 이용하여 동아시아에서 뛰어난 입지를 차지할 수 있게 되며, 1980~90년대 일본처럼 자본주의 진영 맹주 미국을 위협하는 경제대국 2위 자리를 차지했을 수 있다. 특히 중화민국이 일본 수준의 1인당 GDP까지 챙겨가는(실제로는 인구가 너무 많아서 그 정도는 어렵겠지만.) 경제성장이 이뤄질 경우 훨씬 대놓고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국력에 도달했을 수 있어서 중소분쟁이 아닌 중미분쟁이 이뤄졌을 가능성도 있다. 물론 자본주의 국가 특성상 중소분쟁 같은 군사적 충돌보다는 미중 무역전쟁 같은 돈의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 반대로 [[중화인민공화국]]의 경우는 소련에게 지원을 많이 받아서 발전을 어느정도 하고 소련 견제를 위해 미국과 데탕트가 일어날 가능성은 높았기에 개혁개방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았겠지만, 현대 중국처럼 급격히 성장을 할 가능성은 낮았을 것이다. 애당초 강남 지역을 [[중화민국]]에게 내주고 시작한데다, 양쯔강 이북인 경우는 중국판 [[비무장지대]]가 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 북중은 안전하게 쓸 수 있는 해로가 사실상 극동 지역만 남게 되므로 해양 진출이 매우 곤란해질 것이다. 따라서 육로 무역에 치중할 수밖에 없으며 공산권 무역을 위해 소련 영토를 지나는 루트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서 소련 의존도가 훨씬 높아졌을 것이다. 물론 남중과의 체제 경쟁을 위해서도 소련의 지원을 받아야 하므로 이중으로 소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특히 현재 중국의 경제 발전은 데탕트를 거치면서 서구의 기술과 자본을 지원받아 개혁개방을 성공시킨 덕분인데, 중화민국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면 소련에 묶여 개혁개방을 시도할 수도 없고, 한다해도 서구의 지원을 받을 수 없어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베트남 같은 경우도 서구와 연을 끊은 통일 직후에는 사실상 최빈국이었다. 개혁개방 후 서구 자본을 받아들이고 자본주의 논리를 이용하기 시작하면서 그나마 현재 수준까지 올라온 것이다.] 결국 현재보다 훨씬 폐쇄적인 국가가 되었을 것이며, 그런 폐쇄성을 유지하기 위해 북한처럼 군대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양쯔강변에서의 군사적 충돌은 매우 격해졌을 수 있다. * 중공이 경제성장도 실패하고 부유한 남중과 체제경쟁을 벌이다보니 공산권 맹주 소련의 중공 지원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중국 대륙이 통째로 공산권에 포함되어 있는 안보적 메리트를 상실하므로 대미 군사적 리스크는 커질 수밖에 없다. 즉, 소련에 가해지는 압박이 더욱 커지며, 동구권 붕괴가 더욱 가속화될 수도 있다. * [[하나의 중국]] 개념이 시기가 지날수록 더욱 강화되어 상호 충돌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혹은 1개만 존재하였다가 2개 이상의 정권으로 바뀐 [[한국]]처럼 [[대한민국|2개의]] [[북한|정부]]로 쪼개지듯이 [[두 개의 중국]]으로 탈바꿈하려는 움직임이 클 가능성이 있다. 그러므로 2개의 중국이 공존하는 양상이 나오게 되고 하나의 중국을 위시한 무력 충돌, 갈등 따위의 걱정은 없을 수 있다. * 냉전기에는 남중(홍콩, 마카오 포함)+한국+남월+미국+일본 VS 북중+북한+북월+소련+몽골로 치열한 대립 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다만 만주랑 가까운 북한은 몰라도 북베트남의 경우 [[중국국민당]]이 대륙을 통일했어도 비슷하겠지만 중국 남부를 중화민국이 지배했다면 중공이나 소련의 지원을 못받게 되어 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프랑스에게 패배하여 프랑스에 의해 재식민지화되었거나 프랑스가 인도차이나를 포기했어도 중화민국이나 미국에 의해 공산화가 저지되었을 것이다. 이는 캄보디아와 라오스도 마찬가지. * [[6.25 전쟁]]보다는 "제2차 중국 전쟁"이 일어나고 거대한 중국의 특성상 '''[[제3차 세계대전]]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 6.25 전쟁이 터졌다면 '''[[북한]]은 100% 멸망했을 것이다.''', 북한이 살아남은 건 중국의 지원이 제일 큰데, 이런 대치 상황에선 국력을 온전히 6.25 전쟁에 올인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중국이 6.25 전쟁에 병력을 쏟아부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이미 중화민국을 쫒아내는 데 성공하고, 티베트와 위구르도 점령한데다 남부엔 베트남 민주 공화국이 있었기 때문이다. * 2차 국공내전이 벌어지지 않더라도 중국에서의 거대한 대치 상황 때문에 중공은 한반도에 개입할 수 없게 될 것이고, 김일성도 한국 침공을 단념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8월 종파 사건]]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현재의 북한이 김씨 일가 독재체제가 된 것은 휴전 이후 [[김일성]]이 적화통일 실패의 책임을 물어 연안파와 소련파를 대거 숙청했기 때문이다. [[6.25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김일성이 누굴 숙청할 수 있을 정도로 정치력이나 명분이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고, 초기 북한의 집단지도체제가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훨씬 정상국가에 가까웠을 것이다. 어쩌면 동구권 붕괴 때 민주화에 성공하면서 한국과 [[평화통일]]에 성공했을 수도 있다. * [[인도차이나 반도]]에 널리 퍼진 공산화 위기감이 한층 낮아졌을 것이다. 특히 [[베트남 전쟁]]에선 [[북베트남]]이 아닌 [[남베트남]]이 이겼을 가능성이 높다. 사실 [[북베트남]]이 이렇게 영향력이 커진 것도 중화인민공화국의 지원을 받은 게 상당했고, 미국이 북진금지를 한 것도 바로 중국과 또 다른 분쟁이 터질 우려가 높았기 때문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만약 양쯔강에서 국민당이 방어에 성공했다면 [[베트남]]은 현재의 사회주의 공화국이 아닌 [[남베트남]]의 후신이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비슷한 시기에 공산화가 된 [[라오스]]와 [[캄보디아]] 등 역시 마찬가지로 공산화에서 벗어나거나 최소 지금과는 다른 사건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 [[대약진 운동]]이나 [[문화대혁명]]은 북중에서만 일어났을 것이고 남중에서는 문화대혁명과는 관계없이 문화재들이 대부분 보존되었을 것이다. 다만 내분을 틈탄 침공을 우려해서 문화대혁명까지 이르게 되는 뻘짓을 서로 자중해서 일어나지 않거나, 문화대혁명 발생 초기, 중기쯤에 점령당해서 파멸적 결과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을 공산도 크다. *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로 더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고, [[마카오]] 역시 [[포르투갈]]의 보호령으로 계속 존재할 수 있게 된다.[* [[동아시아]] 유일의 [[영국]] 영토인 홍콩은 실제대로 [[1997년]] 중국에 공식 반환되었고 마카오 역시 [[1999년]] 말쯤에 반환되었다.] 다만 조약대로 기간이 지난 후에 도로 중국(중화민국)에 복귀할 가능성도 있다. 홍콩 섬 자체는 영국에 할양하였으니 계속 유지될 수 있겠지만 섬 단독으로 경제를 꾸려가는 것이 힘든 만큼 무리를 하지 않는 이상 결국 돌려주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90년대 말에서야 [[홍콩]]과 [[마카오]]가 반환된 이유부터가 그 이전까지는 [[죽의 장막]]으로 유명한 폐쇄적인 나라였던 [[중국]]이 서방 국가와의 대화창구로 써먹을 겸, 이 두 도시를 인질삼아서 이런저런 외교 분쟁에서 서방 측에 유리한 위치에 서기 위해 고의로 반환을 거부한 탓이 컸다. 그랬던 것이 [[냉전]]이 끝나서 더 이상 이렇게 할 필요가 없어진 중국 측에서 그제서야 [[홍콩]]과 [[마카오]]에 대한 반환 협상을 시작한 것이다. 만일 [[중화민국]]이 중국을 통일했으면, 같은 [[친미]], 친서방 국가인 만큼 이 두 도시에 대한 반환 협상이 좀더 일찍 성사되었을 것이다. 물론 [[마카오]]는 당시의 종주국인 [[포르투갈]]의 독재자인 [[안토니우 살라자르]]가 해외 식민지들을 놓지 않으려고 머리 굴리던 것을 생각하면 바로 반환받기는 어려웠을테지만, 역시 본국에서 너무 멀고 [[포르투갈]]이 [[중화민국]]한테 군사적으로 밀린다는 점에서 [[인도]]가 역시 포르투갈령이던 [[고아(인도)|고아]]를 무력으로 되찾은 것처럼, 중화민국군이 무력으로 마카오를 점령했을 공산이 크다. 아니면 [[광저우만]] 처럼 90년대 이전에 중화민국에 반환되었을 수도 있다. 특히 포르투갈의 경우 [[카네이션 혁명]] 이후 중국에 마카오를 지속적으로 반환하려 하였지만 중국이 외교적 고립으로 인해 마카오를 외교 창구로서 두고 싶어 하였기에 90년대 이전까지는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 [[티베트]], [[위구르]]는 몽골처럼 독립국이 될 것이다. 다만 이 둘은 중화민국 및 중화인민공화국 둘다 중국 영토로 여겨지고 있었고 세계에서도 미승인국이었기에 남북중국이 계속해서 종주권을 행사하여 하나의 중국을 유지하려 들었을 것이다. 다만, [[중화민국|남중]]과 [[중화인민공화국|북중]] 간에 내전과 대치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이 먼 곳까지 관할할 여력은 없었을 것이다. [[티베트]]와 [[위구르]]는 [[소련]]과 북중 및 남중, 그리고 [[인도]] 간의 분쟁을 막기위한 [[완충국]] 정도의 지위는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중, 위구르는 위치 상의 이유로 [[중화인민공화국|북중국]]과 소련의 영향을 받아서 [[공산주의|공산화]]가 되거나, 최소한 그 정도는 아녀도 [[친소]]나 [[친중]] 성향의 정권이 들어섰을 수도 있다. 하지만, 완충국 역할을 하는데 실패했다면, [[위구르]]의 일부 또는 전체가 [[소련]]의 구성국으로 전락하고 말았을 것이다. * [[미국-중국 패권 경쟁]]도 현재처럼 격렬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심해진 건 제1위,제2위인 것도 있지만, 둘 사이의 정치성향이 너무 다른 것도 있다. 만약 분단이 되었다면 현재의 [[미국-러시아 관계]]처럼 패권경쟁은 있겠지만 격렬하진 않았을 것이다. 일단 공산당이 재건에 성공하여 중국이 분단했다는 가정을 적용한 경우가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이다. 여기서는 [[1935년]] 옌안에서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주더를 포함한 마지막 공산당 잔당이 모두 국민혁명군에게 사살됨에 따라 제1차 국공내전이 종결되었다. 그러나 공산당은 국민당의 실정과 굴욕 외교 덕택에 유리한 재기 조건을 갖춘 뒤, [[류사오치]]와 [[펑더화이]]가 [[1950년]] 11월 [[위구르|신장]]에서 '신장 소비에트'를 결성하여 간쑤성 등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1953년]] 4월에 제2차 국공내전이 벌어졌다. 실제 역사에서처럼 국민당은 개털려서 베이핑과 톈진을 잃었고, [[1956년]] 2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산둥성]]의 교주만과 관동주, [[만주국]]을 영유하고 있던 [[일본 제국]]이 "황허 남쪽에서도 전쟁하면 우리도 참전함!"이라고 위협(소위 '[[도조 히데키|도조]] 선언')하자 결국 공산당이 협상에 응하면서 마침내 그 해 7월 6일 [[허난성]] 정저우에서 [[황허]]를 경계로 한 휴전 협정이 맺어졌다. 그리하여 소설의 배경인 [[1987년]] 현재 중국 대륙은 황허 남쪽의 중화민국, 황하 북쪽의 중화 인민 공화국, [[랴오허]] 동쪽의 [[만주국]], 이렇게 3국으로 분열되어 있으며, 중화 인민 공화국의 통일 정책 및 만주국과 중화민국에서 전개되는 학생 [[운동권]]의 통일 운동이 지속되면서 대륙 통일을 향한 열망이 뜨거워지고 있다. 한편 라이트 노벨 풀메탈 패닉에서는 대체역사 배경으로 남중국과 북중국으로 나누어져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