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흥군 (문단 편집) == 역사 == [[마한]]의 땅이었던 고흥은 [[삼국시대]]에 [[백제]]에 정복되고 조조례현(助助禮縣, 남양면), 두힐현(豆肹縣, 두원면), 비사현(比史縣, 동강면)의 세 현이 설치되었다. 이후 [[남북국시대]] [[신라]] [[경덕왕]] 때 전국 지명의 한화(漢化, [[고대 한국어]] 지명을 [[한자]]로 바꿈) 정책으로 조조례현은 충렬현(忠烈縣)으로, 두힐현은 강원현(薑原縣)으로, 비사현은 백주현(柏舟縣)으로 바꾸었다. [[고려]] 초기 고이부곡(高伊部曲)[* '고이'는 [[고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역대 문헌을 보면 '묘부곡'(猫部曲)이란 표기도 보인다.]이라 불리다가, [[1285년]] 고흥현(高興縣)으로 개칭되어 '고흥'이란 명칭이 최초로 등장하였다. 이때 고흥반도에는 고흥 이외에 두원, 남양, 태강 등 수많은 속현과 부곡이 뒤섞여 있었다. [[조선]] 초기에 고흥반도에 [[왜구]]가 들끓어 잠시 현재의 [[보성군]] 조성면[* 고려시대 보성의 속현, 조선시대에는 폐현된 옛 조양현의 읍치가 있었다.]으로 관아를 옮겼다가(고흥반도는 잠시 보성군에서 관할하게 된다), 1441년에 고흥반도로 복귀하고 흥양현(興陽縣)으로 개칭하여 [[일제강점기]] 초기까지 '흥양'이라 불렸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고흥군(高興郡)으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른다. '흥양'의 일본어 발음이 '코요'라, 같은 도의 [[광양시|광양]]과 혼동되어 바꾼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사례로 [[충청남도]] [[홍성군|홍성]](원래 홍주였으나 같은 도의 [[공주시|공주]]와 일본어 발음이 '코슈'로 같아 개칭), [[경상북도]] [[영주시|영주]](원래 영천_榮川이었으나 같은 도의 [[영천시|영천]]_永川과 한국어·일본어 발음이 모두 같아 개칭_일본어 발음은 '에이센') 등이 있다.] 1896년 [[돌산군]]의 성립으로 [[거금도]], 나로도, [[거문도]], 초도 등 부속도서를 돌산군에 내주었다가, 1914년 돌산군이 다시 여수군과 통합되는 과정에서 거금도, 나로도 등이 고흥으로 돌아왔다. 거문도, 초도 등 현 여수시 삼산면 지역은 그대로 여수에 남았다. 동시에 보성군 남면(현 [[벌교읍]])의 일부를 가져왔다. 1973년 도양면이 도양읍으로, 1979년 고흥면이 고흥읍으로 승격되었다. 당초 [[낙안군]] 땅이었다가 돌산군에 편입되고, 돌산군 폐군 때 고흥으로 넘어온 장도는 1983년에 보성군 벌교읍으로 편입되어 제자리를 찾았다. 1960년대까지는 꽤 인구가 많았다. 1966년에는 인구가 234,592명[* 1966년 당시는 이촌향도가 본격화되기에 앞서 의료수준이 올라가 전체적으로 자연증가율이 매우 높던 시기였기 때문에 농어촌지역의 인구도 꽤 많은 편이었다.]에 달했다. 그러나 1960년대~1990년대에 벌어진 경부ㆍ경인라인 중심의 경제 개발로 고흥군을 비롯한 [[전라남도]]의 각 시/군들의 인구가 크게 유출되었고, 고흥군도 인구 유출로 인해 1966년의 ¼ 수준으로 인구가 아주 빠르게 감소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