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영환 (문단 편집) === 초창기 === [[자강도]] [[강계시]]([[이북5도위원회]]의 행정구역상 평안북도 강계군 강계읍) 서산리에서 당의 간부급 직책을 맡고 있던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휴전]] 직후 아버지의 인사 이동으로 [[개성시]]로 이사하여 주로 자란 곳은 개성이다. [[인민학교]](한국의 [[국민학교]])[* 현재는 남한은 초등학교, 북한은 소학교로 각각 명칭이 바뀌었다.] 졸업 즈음에 아버지의 권유로, 그리고 외교관이 되면 외국에 비행기를 타고 다니고 남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외교관]]의 꿈을 꾸게 되었다. 그 후 당의 간부 자제들만 다닐 수 있는 평양외국어혁명학원(한국의 중고등학교를 합쳐놓은 [[외고]]와 비슷하다) 불어과에 전국에서 모인 4,000명 중 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80명에 들어 합격했다. 당시나 현재나 평양외국어학원은 부상급(차관급) 이상 토대만 지원이 가능했는데 아버지가 차관급으로 대우 받는 개성시 인민위원회장[* 남한으로 치면 지방자치 시대 이전 관선 시장과 유사하나 북한 체제는 로동당 우위의 지배체제이므로 시당 책임비서 보다 낮고, 실질적으로는 당책임비서 밑급인 조직담당 부국장이나 선전부국장 보다 떨어진다. 내각의 상(장관)도 로동당 부장보다 낮으며, 부부장급 대우이다.]이어서 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다. 평양외국어 학원에 다니던 시절에 [[갑산파 숙청 사건]]이 벌어지는데, 고위급 자제들이 모여있던 학교였던만큼 자신의 '''같은 반 친구들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 가는 모습'''을 교실에서 직접 목격했다고 한다. 고급 소련제 승용차에 양복 입은 남자 둘이 학생을 한 명 씩 데려갔는데, 어디 온천이나 바다로 놀러갔나 했지만 보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아 그 때가 되어서야 [[숙청]]임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그렇게 2년여 간 불어과 학급 12명 중 5명이 차례로 사라졌다고 한다. [[쾌도난마]]에서 이 일화를 밝혔는데, 울지 않았냐는 [[박종진]]의 질문에 울게 되면 자신도 동조하는 것이므로 잔뜩 쫄아서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고 회상했다. 졸업 후에 1972년 평양외국어대학 불어과에 진학한다.[[이제 만나러 갑니다]]의 게스트로 자주 등장하는 [[강명도]] 씨가 같은 과 6년 후배이며,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건]]의 범인 [[김현희]]가 같은 대학 일본어과를 졸업했다. 평양외국어대학에서 괜찮은 성적으로 5년 과정을 마치고 1977년 졸업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