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려군 (문단 편집) ==== 중앙군 ==== 고려 중앙군의 병종과 무장은 동시대의 여타 군대와 대동소이했다. 다만, 중앙군은 지방군보다 무장과 훈련의 수준이 더 높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병종은 크게 보병과 기병으로 나뉘었다. 보병은 방패와 칼, 활이 기본 무장이었고, 기병은 칼과 창이 주무기였다.[* 출처: 고려의 무비(武備)와 전투, 한국콘텐츠진흥원] 고려 보병들의 갖춘 장비는 <당육전>에 나오는 당나라군의 장비와 비슷했다. 고려의 중앙군은 2군 6위(二軍六尉)였다. 2군 6위외에 별도로 조직된 특수부대도 있었다. 상비군이라 할 수 있는 2군 6위의 총 군사 수는 천 명씩 1령으로 계산하여 총 44령이었다. 즉, 44,000명이었다. 우선, 2군은 '''응양군(鷹揚軍)'''과 '''용호군(龍虎軍)'''이었다. 이들은 고려 군주의 직할 친위 부대였다. 그래서 6위보다 서열이 높았다. 2군 내에서는 응양군이 용호군보다 서열이 높았다. 응양군은 1령, 용호군은 2령이다. 훗날 무신정변을 일으킨 집단도 이 2군이었다.[* 무신정변을 일으킨 2군은 군주의 직할 부대였는데, 말하자면 군주의 직할 부대가 군주를 배반한 것이다.][* 군인 주체에 대해서는 사료 부족으로 인해 군반씨족설, 부병제설, 절충설 등이 존재한다. 출처 역사비평편집위원회, '논쟁으로 읽는 한국사1', 역사 비평사, 2009년, p188 - 189] 6위는 좌우위(左右衛), 신호위(神虎衛), 흥위위(興威衛), 금오위(金吾衛), 천우위(千牛衛), 감문위(監門衛) 여섯 개의 부대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수도 방위군이었다. 전시에는 중군(中軍), 좌군(左軍), 우군(右軍)의 3군이나, 3군에 전군(前軍), 후군(後軍)까지 더한 5군으로 재편되었다. 여몽전쟁 당시 [[동선역 전투]]에서 몽골군을 야전에서 격파한 것이 고려의 3군이었다. 5군(五軍)[* 중군(中軍)-전군(前軍)-후군(後軍)-좌군(左軍)-우군(右軍)]은 임시 편제여서 전후에는 원래대로 돌아갔다. 5군 편제는 천자는 6군, 제후는 3군 편제를 쓴다는 전통적 편제를 독자적으로 수용한 것이었다. 이는 문벌귀족이 가장 강성했던 의종 대에 문관들의 견제로 3군(三軍)[* 중군(中軍)-좌군(左軍)-우군(右軍)]으로 축소된다. 허나 무신정권이 시작되자 다시 5군으로 확대된다. 그러나 병력에 따라 3군과 혼용되었다.[* 3군으로의 완전 적용은 공양왕때이다.] 6위 중 '''좌우위(左右衛)''', '''신호위(神虎衛)''', '''흥위위(興威衛)'''은 고려의 주력 전투 부대인 3위였다. 모두 32령으로 구성되었다. 1령은 1000명으로 3위의 병력은 32령으로 32,000명이었다. 이는 6위 전체 병력의 약 76%였다. '''금오위(金吾衛)'''는 개경의 치안을 담당하는 일종의 [[헌병군]]이었다. 7령으로 구성되었다. '''천우위(千牛衛)'''는 왕실 의장대였다. 상령(常領) 1령과 해령(海領) 1령으로 편성되었다. 마지막으로 '''감문위(監門衛)'''는 성문을 경비하는 부대였다. 예하에 1령만 편성되어 규모가 가장 작았다. 2군과 6위의 직렬은 동일했다. 모든 부대가 동일한 직함을 사용했다. 직함 간 상하는 소속 부대로 구분했다. 가령 같은 상장군이라도 좌우위 상장군 > 금오위 상장군이었다. 2군의 직렬에는 추가로 근장, 친종을 붙여 소속을 확실히 구분했다. 시간이 지나며 직렬에 섭직과 가직을 추가해 격차를 늘렸다. 그래서 형식상 9개의 직위가 있었지만 실제론 더 많았다. 검교직이 있어 명예직으로도 수여했다. 가령 척준경의 아버지 척위공은 예종에게 검교대장군 직을 받았다. 진짜 2군6위에 소속된 것이 아니라 명예 대장군 직위였다. 2군 직함은: * 근장상장군(近仗上將軍) 정3품 * 근장[[대장군]](近仗大將軍) 종3품 * 친종[[장군]](親從將軍) 정4품 * 근장중랑장(近仗中郞將) 정5품 * 근장낭장(近仗郞將) 정6품 * 근장별장(近仗別將) 정7품 * 근장산원(近仗散員) 정8품 * 근장위(近仗尉) 정9품 * 대정(隊正) 종9품 6위 직렬[* 다만 오늘날과 똑같지 않은 부분도 꽤 있다. 오늘날의 육군 대장은 조선시대의 정2품 판서급에 준하는 장관급 대우를 받는다.]은: * 상장군(上將軍)[* 대장쯤 해당된다.] 정3품[* 당시는 병부상서도 정2품이 아닌 정3품이었다.] * 대장군(大將軍)[* 중장쯤 해당된다.] 종3품 * 장군(將軍)[* 준장 내지 소장쯤 해당된다.] 정4품 * 중랑장(中郞將)[* 대령쯤 해당된다.] 정5품 * 낭장(郞將)[* 중령쯤 해당된다.] 정6품 * 별장(別將)[* 소령쯤 해당된다.] 정7품 * 산원(散員)[* 대위쯤 해당된다.] 정8품 * 위(尉)[* 중위쯤 해당된다.] 정9품[* 사극에서는 위를 교위라고도 한다.] * 대정(隊正)[* 소위쯤 해당된다.] 종9품 6위엔 추가로 비전투인원인 행정업무 처리 담당자들이 있었다. 이들도 무반 대우를 받았다. * 장사(長史) 종6품 * 녹사(錄事) 정8품[* 유명한 [[이자연(고려)|이자연]]과 [[척준경]]이 이 녹사 직을 위임했었다.] * 사(史) 무품 * 기관(記官) 무품 고려는 총 8명의 상장군과 8명의 대장군이 있었다. 16명의 상, 대장군은 모여 군부를 구성했다. 이것이 중방(重房)이다. 중방의 의장은 반주(班主)란 직함을 썼다. 대체로 응양군 상장군이 역임했다. 고려의 태자 또한 호위 부대를 두었다. 이는 문종 대에 상정되었다. 8솔부(率府)로 구성되었다.[* [[수춘궁]] 문서의 태자부 항목 참조.] * 시위상장군(侍尉上將軍) * 시위대장군(侍尉大將軍) * 각 솔부의 솔(率) * 각 솔부의 부솔(副率) 그외에도 [[의종(고려)|의종]]때 내순검(內巡檢) / 중금군(중금반)(中禁軍(中禁班))라는 호위대를 만들었던바 있으며 의장대로는 도지군(도지반)(都知軍(都知班)) / 은골타자대(銀骨朶子隊) / 은장장도대(銀粧長刀隊) / 방패대(防牌隊) / 청유대(淸遊隊) / 현무대(玄武隊)라는 의장대가 존재했다.[[https://blog.naver.com/mapkjh1199/222262744326|#]]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