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경원선 (문단 편집) === 일제강점기 === 러일전쟁이 종료된 후로도 일본 제국의 주도 하에 경원선 부설 계획은 계속해서 진행됐다. 지적 측량 및 조사 과정에서 험준한 지형과 당시 의병들의 저항으로 인해 어려움이 있었으나, [[한일합방]]이 완료된 [[1910년]] [[10월]]에 일본은 경원선 구간의 측량을 마치고 [[용산역]]을 기점으로 의정부와 연천, 추가령 구조곡, 안변을 거쳐 원산에 이르는 철도 부설 계획을 수립한 후 착공했다. [[1911년]] [[10월 15일]]에 [[용산역]]-[[의정부역]] 구간 부분 개통을 효시로, [[1912년]] [[7월]]에 [[연천역]]까지, 동년 [[10월]]에 [[철원역]]까지 연장 후, [[1914년]]에 [[원산역]]까지의 완전개통을 이루게 된다. 경원선은 다른 한반도의 철도들이 그렇듯 한반도 내륙의 물자를 원산을 거쳐 일본으로 이출하고 일본 물산의 유입 통로가 됐다. [[1920년대]]에 [[함경선]]이 개통함으로써 경원선은 [[함경도]]와 서울을 철로로 직접 연결하는 기능도 수행했다. 일제가 중국 침공을 위해 함경도에 각종 중화학 공업의 공장들을 설치하며 개발함에 따라 경원선의 수요는 점차 늘어갔고, 이에 일제는 경원선 일부 구간에 대해 복선화 공사를 진행했다. 지금도 군데군데 교대가 남아 있고, 특히 한국전쟁 이후 선로 자체가 사라지고 연선 주변지역 개발이 거의 진척되지 않은 신탄리 이북 구간은 터널 1개소와 복선 노반에 철교 흔적도 2개소 존재한다. 그러나 당시 전면적인 경원선 복선화 계획은 아니었다. 양 철교 중 서쪽에 위치한 단선 노반 철교는 [[1912년]] 개통 당시 완공된 화강암 소재 교각의 철교이며 동쪽에 위치한 복선노반 철교는 일제강점기 경원선 복선화 건설의 일환으로 가설된 콘크리트 소재 철교 교각이다. 철교 남단에 '역고드름'으로 유명한 터널은 외관상 관찰하기에 입구가 다소 작아보이지만 터널 북단 입구에 토사가 퇴적되어 주변 지대가 상승하여 발생한 일이며 내부는 복선터널처럼 넓다. 터널 남단으로는 이미 민가가 산재하고 있어 접근할 수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