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상수 (문단 편집) === 투수 전향 에피소드 === 전술했듯이 대학 4년 내내 대부분 타자로 활약했고 프로 입단도 타자로 했지만 바로 투수로 전향한 선수이기도 하다. 보통 프로에서 전향을 하는 경우 투수든 타자든 한 포지션으로 일정 기간 활약하다가 안되겠다 싶으면 전향하는 편인데, 강상수는 타자로 입단한 직후 바로 투수로 전향한 흔치 않은 케이스. 훗날 2010년쯤 가졌던 인터뷰에서 강상수 본인이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한 내막을 들려줬다.[[https://sports.news.nate.com/view/20100518n05568|#]] 결론은 당시 주축선수들의 대거 방위복무로 인해 팀 전력 공백이 너무 심한 팀의 니즈도 있었고, 강상수 본인도 프로에서 투수로 활약하길 희망해 바로 전향을 할 수 있었던 것. 그래서 사상 초유의 '신인 개막전 선발등판'의 타이틀을 얻게 되었고, 뒤늦게 투수로 전향한 만큼 굉장히 노력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투수를 해 온게 아니다보니 신인 시절부터 금방 데드암 증세가 왔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커리어 내내 보강훈련에 밤낮으로 사력을 다해왔다고. 그 덕분인지 큰 부상에 시달린 적은 없어 많은 기회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또한 후배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로 실력도 실력이지만 아프지 않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신인 시절부터 자신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믿어줬던 [[김용희]] 감독과 [[양상문]] 코치에 정말로 감사하다고 했다. 타자를 계속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에는 대학교 4학년때 나무 배트를 사용해서 타격 연습을 해 본 결과 자신의 스윙은 알루미늄 배트에 최적화된 스윙이란 걸 깨달았고, 일찌감치 자신은 프로에서 타자로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게다가 타자로 입단했을 경우 같은 포지션에 좋은 선수들이 많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안 보였던 것도 투수 전향을 결심한 이유 중 하나였다고 한다.[* 당시 강상수의 주 포지션인 1루수는 부동의 4번타자 [[김민호(1961)|김민호]]에, 주전 외야수 [[김응국]]이 백업으로 받쳐주고 있었다. 거기다가 1년 후 입단이 내정된 [[마해영]]도 1루수 자원이었고.] 반면 투수로는 어느 정도 승산이 있겠다는 계산이 있었다고 하며 실제로도 그러했다. 또한 은퇴 직전 [[SK 와이번스]]에 부임한 [[김성근]] 감독에게 영입 제의를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2년만 같이 해보자며 제안을 받았고 만약 따라갔다면 우승도 했겠지만 그 시점에서 경력을 마무리하는게 좋겠다고 판단해 은퇴했고 지금도 그 결정에 후회는 없다고. 덤으로 그 말고도 롯데 시절 선배인 [[가득염]]도 제의를 받았는데, 강상수는 은퇴, [[가득염]]은 현역 생활을 이어 나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