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수

덤프버전 :

파일:다른 뜻 아이콘.sv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본명이 강상수인 가수에 대한 내용은 현철 문서
현철번 문단을
현철#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 {{{#!html }}}에 대한 내용은 문서
#s-번 문단을
#s-번 문단을
# 부분을
#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강상수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강상수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펼치기 · 접기 ]

파일:대통령배고교야구심볼.png
1989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s-2|{{{#a78329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MVP
김정기
(광주동성고등학교)

강상수
(부산고등학교)


심재학
(충암고등학교)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26번
박동수
(1987~1993)

강상수
(1994~2005)


김동혁
(2006~2007)
LG 트윈스 등번호 26번
장문석
(1997~2005)

강상수
(2006)


최종인
(2007)
LG 트윈스 등번호 79번
다카하시
(2009~2011)

강상수
(2012~2014.5.10.)


양상문
(2014.5.11.~2017)
LG 트윈스 등번호 77번
차명석
(2012~2013)

강상수
(2014.5.11.~2018)


이종범
(2019)
KIA 타이거즈 등번호 79번
김태룡
(2008~2018)

강상수
(2019)


송지만
(2020~2022)




파일:img_PlayerView_big_{강상수}.png

강상수
姜相洙 | Kang Sangsoo

출생
1971년 6월 22일 (52세)
부산광역시 영도구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대천초[1] - 대천중 - 부산고 - 고려대[2]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4년 1차 지명 (롯데)
소속팀
롯데 자이언츠 (1994~2005)
LG 트윈스 (2006)
지도자
LG 트윈스 1군 불펜코치 (2012~2013)[3]
LG 트윈스 1군 투수코치 (2013)[4]
LG 트윈스 1군 불펜코치 (2013)[5]
LG 트윈스 1군 투수코치 (2014~2018)
KIA 타이거즈 1군 투수총괄코치 (2019)[6]
KIA 타이거즈 육성군 투수코치 (2019)[7]
프런트
LG 트윈스 스카우트 (2007~2011)

1. 개요
3. 불상수
4. 피칭 스타일
4.1. 투수 전향 에피소드
5. 프런트 경력
7. 여담
8. 연도별 주요 성적
9.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롯데 자이언츠, LG 트윈스의 투수이자 LG 트윈스, KIA 타이거즈의 투수코치.

현역 시절 1994년 롯데 자이언츠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해 2005년까지 활약한 프랜차이즈 선수 였고, 2006년 LG 트윈스에 이적하여 1년 동안 선수 생활을 한 뒤 은퇴했다.

별명은 불상수가 유명하지만 이는 애증의 별명으로 통산 75세이브를 기록해 은퇴 시점에서 역대 롯데 자이언츠 소속 투수 중 통산 최다 세이브를 기록한 선수였다. 현 시점에서도 구단 최초로 100세이브[8]를 넘긴 김원중, 94세이브를 기록한 손승락에 이어 3위이다.[9]

2. 선수 경력[편집]


강상수의 선수 경력

[ 펼치기 · 접기 ]



3. 불상수[편집]


현역 시절 구원등판해서 자주 불을 지르는 바람에 '불상수', '화상수', '그는 공 대신 불꽃을 던지는 사나이였다', '방화신기의 리더' 등으로 무던히도 까였지만, 실상은 강상수 혼자만 유난히 못했다기 보다는 롯데 자이언츠가 못 하던 시절에 그도 성적이 덩달아 나빴던 쪽에 더 가깝다. 오히려 다른 투수들이 부상 등으로 나자빠질 때 혼자 롯데 자이언츠 마운드에서 꿋꿋이 버티며 버텨줬던 지라 '상수대협' 이라 불리기도 했다. 앞의 비난성 별명 또한 단지 비난만이 아닌 예전에 잘 던지던 강상수에 대한 안타까움과 한탄, 그리고 애정이 중첩된 별명인 것이다. 그 외의 별명으로는 메이저리그에서 잘 나가던 프랑스퀘벡 주 출신 마무리 투수 에릭 가니에에 빗대어 '강니에'란 별명도 있었지만 이 별명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유명한 일화로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연장에 가지 않기 위해 시간 끌기[10]를 하려고 견제구를 던지고 신발끈을 묶었으나 덕분에 투구 리듬이 흐트러져 김재현에게 역전타를 맞고 패전한 이야기가 있다. 이 일화는 실화로 해당 경기는 2002년 4월 25일에 있었으며, 역전타를 맞기 직전엔 스코어 2-2, 2사 만루 상황이었다.

훗날 본인도 현역 시절 '불상수'라고 온갖 놀림의 대상이 되었던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성격이 무던한 편이라 악플을 보면 잠깐 욱했다가도 그러려니 하고 바로 잊어버리는 스타일이어서 극복할 수 있었다는 얘기를 했다.


4. 피칭 스타일[편집]


한창 잘 나가던 때와 불상수이던 시절까지만 해도 패스트볼 최고 구속이 140km/h대 중반까지는 나오던 선수였다. 평속은 130km/h대 중후반에서 그쳤으나, 공끝이 묵직하고 코너웍이 좋은 편이라 구위가 상당히 좋았다. 하지만 강력한 구위와 커맨드를 바탕으로 BABIP을 낮추는 스타일의 정통 마무리는 아니었다. 게다가 탈삼진 능력도 떨어져서 인플레이 상황을 자주 발생시키고 그 때문에 마무리에 성공해도 겨우 겨우 성공하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4.1. 투수 전향 에피소드[편집]


전술했듯이 대학 4년 내내 대부분 타자로 활약했고 프로 입단도 타자로 했지만 바로 투수로 전향한 선수이기도 하다. 보통 프로에서 전향을 하는 경우 투수든 타자든 한 포지션으로 일정 기간 활약하다가 안되겠다 싶으면 전향하는 편인데, 강상수는 타자로 입단한 직후 바로 투수로 전향한 흔치 않은 케이스. 훗날 2010년쯤 가졌던 인터뷰에서 강상수 본인이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한 내막을 들려줬다.#

결론은 당시 주축선수들의 대거 방위복무로 인해 팀 전력 공백이 너무 심한 팀의 니즈도 있었고, 강상수 본인도 프로에서 투수로 활약하길 희망해 바로 전향을 할 수 있었던 것. 그래서 사상 초유의 '신인 개막전 선발등판'의 타이틀을 얻게 되었고, 뒤늦게 투수로 전향한 만큼 굉장히 노력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투수를 해 온게 아니다보니 신인 시절부터 금방 데드암 증세가 왔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커리어 내내 보강훈련에 밤낮으로 사력을 다해왔다고. 그 덕분인지 큰 부상에 시달린 적은 없어 많은 기회를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또한 후배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로 실력도 실력이지만 아프지 않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신인 시절부터 자신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믿어줬던 김용희 감독과 양상문 코치에 정말로 감사하다고 했다.

타자를 계속 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에는 대학교 4학년때 나무 배트를 사용해서 타격 연습을 해 본 결과 자신의 스윙은 알루미늄 배트에 최적화된 스윙이란 걸 깨달았고, 일찌감치 자신은 프로에서 타자로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게다가 타자로 입단했을 경우 같은 포지션에 좋은 선수들이 많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안 보였던 것도 투수 전향을 결심한 이유 중 하나였다고 한다.[11] 반면 투수로는 어느 정도 승산이 있겠다는 계산이 있었다고 하며 실제로도 그러했다.

또한 은퇴 직전 SK 와이번스에 부임한 김성근 감독에게 영입 제의를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2년만 같이 해보자며 제안을 받았고 만약 따라갔다면 우승도 했겠지만 그 시점에서 경력을 마무리하는게 좋겠다고 판단해 은퇴했고 지금도 그 결정에 후회는 없다고. 덤으로 그 말고도 롯데 시절 선배인 가득염도 제의를 받았는데, 강상수는 은퇴, 가득염은 현역 생활을 이어 나갔다.


5. 프런트 경력[편집]


은퇴 후에는 코치진에 바로 합류하지 않고, LG 트윈스에서 프런트로 일했다. LG 트윈스스카우트를 맡았으며, 스카우트 시절에 벤자민 주키치를 그가 추천하여 영입에 성공했다. 이것만으로도 강상수의 능력이 좋은 편임을 알 수 있다.


6. 지도자 경력[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강상수/지도자 경력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여담[편집]


  • 운동은 초등학교 때 태권도로 입문했다고 한다. 나름 실력이 괜찮았던지 부산 지역 태권도 대회에 나갔는데 1라운드를 시작하자마자 상대 여학생의 돌려차기를 얼굴에 얻어맞고 그대로 떡실신 당했다고. 이 충격으로 태권도를 접고 야구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야구선수로는 나름 족적을 남겼으니 다행이었다랄까. 현역 시절 강상수 본인도 이 에피소드를 셀프디스로 종종 써먹었다고 한다.

  • 패션센스가 좀 괴악하다. 안 그래도 좀 거한 체구인데 늘 바둑판 무늬 양복을 입고 나온다. 그래서인지 더 살쪄보이는 느낌이다. 2016년 코치상을 받을때도 이 차림으로 나왔다.

  • 트로트 가수 현철과 본명이 같으며, 출신지도 똑같이 부산이다.

  • 코치 시절 모셨던 김기태 감독과는 얼굴이 묘하게 닮았다.


8.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평균자책


세이브
홀드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1994
롯데
18
93⅔
3.56
7
6
0
0
95
11
32
63
1995
18
102
3.35
7
5
0
0
97
6
26
64
1996
33
176⅔
(9위)
3.97
9
10
1
0
185
10
59
104
1997
36
101⅔
5.13
3
11
3
0
129
7
52
70
1998
41
111
4.46
4
8
5
(9위)
0
97
16
54
85
1999
55
77⅔
2.78
5
7
19
(5위)
0
62
7
38
66
2000
50
71
1.77
6
8
23
(4위)
0
48
5
23
66
2001
58
89
4.75
6
7
10
4
81
12
52
62
2002
39
55
4.58
2
7
7
2
63
6
41
33
2003
28
33
5.50
2
3
6
1
54
15
31
47
2004
29
35
4.11
0
0
1
4
41
5
21
17
2005
24
29⅓
8.28
0
0
0
1
35
4
28
17
연도
소속팀
경기
이닝
평균자책


세이브
홀드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2006
LG
16
14⅔
7.98
1
0
0
1
23
2
7
11
KBO 통산
(13시즌)
450
1010⅔
4.17
52
73
75
12
1010
106
464
705

9. 관련 문서[편집]


[1] 부산청학초에서 전학[2] 체육교육학과(1990학번)[3] ~7월 8일[4] 7월 9일~7월 22일[5] 7월 23일~[6] ~5월 16일[7] 5월 17일~[8] 2023년 달성.[9] 4위는 롯데 마무리 최초로 2년 연속 20세이브를 기록한 김사율의 63세이브이고 5위는 고 박동희의 58세이브.[10] 당시는 10시 30분이 넘으면 새로운 회로 넘어가지 않고 무승부로 처리되었다.[11] 당시 강상수의 주 포지션인 1루수는 부동의 4번타자 김민호에, 주전 외야수 김응국이 백업으로 받쳐주고 있었다. 거기다가 1년 후 입단이 내정된 마해영도 1루수 자원이었고.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1-10 06:48:44에 나무위키 강상수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