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간 (문단 편집) === [[제노포비아]] === 개인적인 강간과 달리 전시의 강간은 적국에 대한 증오감과 혐오감이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으며 역사적으로 많은 군대에서 사기 증진을 위해 타국 여성 혹은 남성에 대한 강간을 묵인하거나 장려했다. 상기하였듯 이것은 강간이 '성욕 해소'의 목적보다는 '약자 및 적대국 관련자에 대한 폭력성을 방출'하는 목적에 가깝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때문에 굳이 우호적이고 합법적인 사창가를 냅두고 점령지 현지인들을 강간하는 경우도 많았다. 고대로 넘어가면 [[고대 로마]]가 아직 작은 [[도시국가]]였을 시절 사비니족 여성을 집단으로 납치해 강간하자 전쟁이 발생했지만, 이미 가정의 일원이 되어버린 사비니 여성들이 강간 당해 낳은 아이를 들쳐 업은 채 전쟁을 말리고 화해했다는 기록도 있다. [[스톡홀름 신드롬]]일 가능성이 있지만 여성의 인권 개념이 아주 희박했던 시기였던 만큼 현대 용어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자크 루이 다비드]]는 이 사건을 소재로 '사비니 여인의 중재'라는 그림을 그렸다. 어쨌든 로마가 저런 짓을 한 이유는 '''당시 [[고대 로마]]엔 여성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전쟁에서의 강간은 적의 민족적 순수성을 더럽히려는 목적으로 자행하기도 하였다. 전통적인 가부장적 질서 내에서 여성이 다른 씨족의 피가 섞인 아이를 낳게 되면 상대적으로 그 씨족의 후손을 낳을 기회가 박탈 당한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적국에 대한 강간을 정치적 행위로 승화시켰다. [[르완다]] 내전에서는 후투족이 상대적으로 다수인 투치족 여성들을 강간하여 의도적으로 혼혈아를 만들어 투치족의 순수혈통을 무너뜨리려 하였다. [[보스니아 내전]]에서는 [[세르비아]]군은 [[무슬림]] 여성을 강간하였고, [[낙태]]하지 못하도록 배가 불러올 때까지 감금하기까지 하는 잔혹한 행위를 저질렀다. 세르비아 군인들은 이것을 '''인종 정화'''라고 표현했다. 이런 인식은 [[한국]]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과거에는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온 [[환향녀]]들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의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다 돌아온 조선인([[한국인]]) 여성들이 고향에서 모진 박해를 당했다. 사회적 매장을 목적으로 하는 강간에는 남성도 포함된다. [[콩고]] 내전에서 후투족 [[반군]]이 투치족 마을을 습격해 투치족 남성을 강간하는 것인데 콩고 남부에서 벌어지는 강간 사건의 10%를 남성 피해자가 차지한다. 강간 당한 남성은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8/07/2009080700068.html|너는 이제 남자가 아니라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됐다]]는 취급을 받으며 그 지역 사회에서 매장 당한다. 이러한 이유로 [[대한민국]]의 군 형법에서는 전투 지역 혹은 점령지에서 부녀자 강간 시 사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 다만 재판에서 제반 사정에 따라 감형될 여지가 있고, 남성에 대한 혹은 여군의 현지 남성 강간 등은 이것으로 처벌 불가능한 맹점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