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安 (문단 편집) == 상세 == ||<-3><#e6e6e6,#27292d> '''[[한자문화권]]의 언어별 발음''' || ||<|2> '''[[한국어]]''' || {{{-1 '''훈'''}}} ||편안 || || {{{-1 '''음'''}}} ||안 || ||<-3> || ||<|7> '''[[중국어]]''' || {{{-1 '''[[표준 중국어|표준어]]'''}}} ||ān || || {{{-1 '''[[광동어]]'''}}} ||on^^1^^ || || {{{-1 '''[[객가어]]'''}}} ||ôn || || {{{-1 '''[[민북어]]'''}}} ||úing || || {{{-1 '''[[민동어]]'''}}} ||ăng / ĕng[* 속독] || || {{{-1 '''[[민남어]]'''}}} ||an[*文 [[문독]]] / oaⁿ[*白 [[백독]]] || || {{{-1 '''[[오어]]'''}}} ||oe (T1) || ||<-3> || ||<|2> '''[[일본어]]''' || {{{-1 '''음독'''}}} ||アン || || {{{-1 '''훈독'''}}} ||야수, 야스. やす-い, ''いずく-んぞ'',[br]''やす-まる'', ''やす-らう'', ''やす-んじる'' || ||<-3> || ||<-2> '''[[베트남어]]''' ||an / yên || [[유니코드]]에는 5B89에 배당되어 있다. [[파일:external/dicimg.naver.com/11-08-03-01.gif]] 획순 [[집]]을 뜻하는 [[宀]](집 면)과 [[여자]]를 뜻하는 [[女]](계집 녀)가 합쳐진 [[회의자]]로, '여자가 집에 있는 모양' → '편안'이 되어 지금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일반적으로는 위의 뜻을 가지지만 한문에서는 왕왕 의문사로 쓰이며 이 때는 '어찌'의 뜻을 가진다. 하(何)와 용법이 같다. '개울'이나 '시내 (川)'라는 지형학적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고성'이 안씨성 본관의 기원이라고 전해진다. 안씨성의 유래 금석문과 《고려사》 등에 나타나는 신라 말, 고려 초의 안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으니 그 기록들을 보면, 명확한 최''''''초의 안씨들은 800년대 후반 신라 말, 고려 초에 '''제주 고(高)'''씨 계통과도 혈면이 있는데 제주가 대종이며 '''연안延安, 고봉高峰, 옥구沃溝, 안동安東''' 등 10여 본이 문헌에 전한다. '''고경명(高敬命)'''의 딸인 '''안씨(安氏) 부인'''도 정유재란 때 왜적을 꾸짖으며 칼을 안고 엎드려 순절하였으며, 안씨 자손인 '''고부립高傅立'''은 정묘호란 때 의병장이었다. [[고을나]]의 45세손 탐라국주 [[자견왕|고자견]](高自堅)의 태자 '''[[고말로]](高末老)''' 직손 [[제주 고씨]], 고말로의 후손 고종필(高宗弼)은 '''[[연안 고씨]](延安高氏)''', 고말로의 23세손 고응섭(高應涉)은 '''[[안동 고씨]](安東高氏)'''로 분적하였다. [[고구려]] [[보장왕]]의 둘째 아들 고인승(高仁勝)의 혈면인 '''안승(安勝)'''은 고구려 본기에는 보장왕의 서자, 외손으로 되어 있고, 신라 본기에는 연정토의 아들로 되어 있다. 후손은 고려 말기 밀직사를 지낸 고민후(旻厚)이다. 중국의 '''요양(遼陽) 고(高)씨'''는 고구려의 20대 왕인 [[장수왕]]의 후손으로, '''태안현(台安縣)'''의 읍인 大高麗房鎭(대고려방진)에 2천여 명이 있다. 역사 드라마로 일약 유명해진 '''정비 안씨'''(定妃 安氏, ? ~ [[1428년]] [[6월 26일]]([[음력 5월 14일]]))는 [[고려]]의 제31대 [[왕]] [[고려 공민왕|공민왕]](恭愍王)의 제 4 첩으로, 정식 칭호는 정숙선명경신익성유혜왕대비(貞淑宣明敬信翼成柔惠王大妃)이다. 흔히 첩 안씨로 불리기도 한다. 본관은 죽산(竹山)이다. 또 '''선빈 안씨'''(善嬪 安氏, ? ~ [[1468년]] [[음력 6월 17일|6월 17일]]) 또는 '''숙선옹주'''(淑善翁主)는 [[조선]] [[태종 (조선)|태종]]의 후궁이며 대하드라마를 통해 한국인들에게 좀더 알려지게 되었다. 안씨성의 유래 삼국시대에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姓이 안 (安)씨로 세거하는 사람이 있었고, 금석문과 《고려사》 등에 나타나는 신라 말, 고려 초의 안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으니 그 기록들을 보면, 명확한 최초의 안씨들은 800년대 후반 신라 말, 고려 초에 제주 고(高)씨 계통과도 혈면이 있는데 제주가 대종이며 연안延安, 고봉高峰, 옥구沃溝, 안동安東 등 10여 본이 문헌에 전한다. 고경명(高敬命)의 딸인 안씨(安氏) 부인도 정유재란 때 왜적을 꾸짖으며 칼을 안고 엎드려 순절하였으며, 안씨 자손인 고부립高傅立은 정묘호란 때 의병장이었다. 고을나의 45세손 탐라국주 고자견(高自堅)의 태자 고말로(高末老) 직손 제주 고씨, 고말로의 후손 고종필(高宗弼)은 연안 고씨(延安高氏), 고말로의 23세손 고응섭(高應涉)은 안동 고씨(安東高氏)로 분적하였다. 고구려 보장왕의 둘째 아들 고인승(高仁勝)의 혈면인 안승(安勝)은 고구려 본기에는 보장왕의 서자, 외손으로 되어 있고, 신라 본기에는 연정토의 아들로 되어 있다. 후손은 고려 말기 밀직사를 지낸 고민후(旻厚)이다. 중국의 요양(遼陽) 고(高)씨는 고구려의 20대 왕인 장수왕의 후손으로, 태안현(台安縣)의 읍인 大高麗房鎭(대고려방진)에 2천여 명이 있다. 가장 흔하게 쓰이는 편안하다 '''(Comfort)''' 라는 의미가 대다수이고, 어두운, 짙은, 암흑, 등의 의미로도 쓰이는 종족 이름. 집 주(宀) 부수 함의로 초가집, 오두막을 거주지로 하는 종족. 꿇어앉은 '''계집녀부(女部),''' 즉 ''''서민 여자', '계집종', '첩'(concubine)''' 등으로도 쓰인 한자라는 점에서 모계사회였음이 암시됨. 대표적인 연상자로 위안부'''(Comfort women)'''가 있는데 부정적인 함의에 유의해야한다. 이 경우 안(安)자는 편안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주로 경멸조로 쓰여 '''婢 (여자종 비)''' 부수로 '''女部(계집녀부)''', 꿇어앉은 여자 노예가 포함된 ('''maidservant ヒ·はした''') 에서 유래되거나 女(계집녀) + 卑(낮을비)로 '''여자 종''', '''소첩''' 등 여자가 자기를 낮추어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혹은 꿇어앉은 여자가 초가집에 갇혀있는 모양새다. 갑골문에서는 노예, 노비의 뜻으로 쓰였고 일본어로 안(安)자는 '''/야스-/ 또는 /야수-/''', /Yasu, Yas-/로 음독하며('''やす-い,''' いずく-んぞ, やす-んじる) 예시로 야스쿠니 신사참배 ('''安國''')가 있다. 官婢(관비) 죄로 말미암아 관에 잡혀서 노예가 된 여자, 여자 종이라는 부정적이고 불쾌한 함의가 발생하므로 이와같은 한자의 용례에 주의하여야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