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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 안

부수
나머지 획수


, 3획


총 획수


6획



중학교





-


일본어 음독


アン


일본어 훈독


やす-い,야수, 야스 /Yasu/ いずく-んぞ, やす-んじる



-


표준 중국어


ān


* 연한 빨간색으로 표기된 신자체는 본래 한자가 비상용한자임을 나타냄

* 괄호를 친 독음은 특이한 상용독음을, 연한 빨간색으로 표기된 독음은 비상용독음 또는 본래 한자가 비상용한자임을 나타냄


1. 개요
2. 상세
2.1. 안(安) 일본어 의미와 용례
2.2. 안씨(安氏)성(姓)의 유래(由來) 날조와 역사왜곡 논란
2.3. 기타용례
2.8. 기타
3. 유의자
4. 모양이 비슷한 한자
5. 광주 안씨
6. 순흥 안씨
7. 죽산 안씨
8. 탐진 안씨
9. 안산 안씨
10. 기타 본관
11. 여담



1. 개요[편집]


安은 '편안 안'이라는 한자로, '편안(便安)'을 뜻한다.


2. 상세[편집]


한자문화권의 언어별 발음
한국어

편안



중국어
표준어
ān
광동어
on1
객가어
ôn
민북어
úing
민동어
ăng / ĕng[1]
민남어
an[文] / oaⁿ[白]
오어
oe (T1)

일본어
음독
アン
훈독
야수, 야스. やす-い, いずく-んぞ,
やす-まる, やす-らう, やす-んじる

베트남어
an / yê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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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순

을 뜻하는 (집 면)과 여자를 뜻하는 (계집 녀)가 합쳐진 회의자로, '여자가 집에 있는 모양' → '편안'이 되어 지금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일반적으로는 위의 뜻을 가지지만 한문에서는 왕왕 의문사로 쓰이며 이 때는 '어찌'의 뜻을 가진다. 하(何)와 용법이 같다.

'개울'이나 '시내 (川)'라는 지형학적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고성'이 안씨성 본관의 기원이라고 전해진다.

안씨성의 유래 금석문과 《고려사》 등에 나타나는 신라 말, 고려 초의 안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으니 그 기록들을 보면, 명확한 최<nowiki/>초의 안씨들은 800년대 후반 신라 말, 고려 초에 제주 고(高)씨 계통과도 혈면이 있는데 제주가 대종이며 연안延安, 고봉高峰, 옥구沃溝, 안동安東 등 10여 본이 문헌에 전한다. 고경명(高敬命)의 딸인 안씨(安氏) 부인도 정유재란 때 왜적을 꾸짖으며 칼을 안고 엎드려 순절하였으며, 안씨 자손인 고부립高傅立은 정묘호란 때 의병장이었다. 고을나의 45세손 탐라국주 고자견(高自堅)의 태자 고말로(高末老) 직손 제주 고씨, 고말로의 후손 고종필(高宗弼)은 연안 고씨(延安高氏), 고말로의 23세손 고응섭(高應涉)은 안동 고씨(安東高氏)로 분적하였다. 고구려 보장왕의 둘째 아들 고인승(高仁勝)의 혈면인 안승(安勝)은 고구려 본기에는 보장왕의 서자, 외손으로 되어 있고, 신라 본기에는 연정토의 아들로 되어 있다. 후손은 고려 말기 밀직사를 지낸 고민후(旻厚)이다. 중국의 요양(遼陽) 고(高)씨는 고구려의 20대 왕인 장수왕의 후손으로, 태안현(台安縣)의 읍인 大高麗房鎭(대고려방진)에 2천여 명이 있다.

역사 드라마로 일약 유명해진 정비 안씨(定妃 安氏, ? ~ 1428년 6월 26일(음력 5월 14일))는 고려의 제31대 공민왕(恭愍王)의 제 4 첩으로, 정식 칭호는 정숙선명경신익성유혜왕대비(貞淑宣明敬信翼成柔惠王大妃)이다. 흔히 첩 안씨로 불리기도 한다. 본관은 죽산(竹山)이다. 또 선빈 안씨(善嬪 安氏, ? ~ 1468년 6월 17일) 또는 숙선옹주(淑善翁主)는 조선 태종의 후궁이며 대하드라마를 통해 한국인들에게 좀더 알려지게 되었다.

안씨성의 유래 삼국시대에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 姓이 안 (安)씨로 세거하는 사람이 있었고, 금석문과 《고려사》 등에 나타나는 신라 말, 고려 초의 안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었으니 그 기록들을 보면, 명확한 최초의 안씨들은 800년대 후반 신라 말, 고려 초에 제주 고(高)씨 계통과도 혈면이 있는데 제주가 대종이며 연안延安, 고봉高峰, 옥구沃溝, 안동安東 등 10여 본이 문헌에 전한다. 고경명(高敬命)의 딸인 안씨(安氏) 부인도 정유재란 때 왜적을 꾸짖으며 칼을 안고 엎드려 순절하였으며, 안씨 자손인 고부립高傅立은 정묘호란 때 의병장이었다. 고을나의 45세손 탐라국주 고자견(高自堅)의 태자 고말로(高末老) 직손 제주 고씨, 고말로의 후손 고종필(高宗弼)은 연안 고씨(延安高氏), 고말로의 23세손 고응섭(高應涉)은 안동 고씨(安東高氏)로 분적하였다. 고구려 보장왕의 둘째 아들 고인승(高仁勝)의 혈면인 안승(安勝)은 고구려 본기에는 보장왕의 서자, 외손으로 되어 있고, 신라 본기에는 연정토의 아들로 되어 있다. 후손은 고려 말기 밀직사를 지낸 고민후(旻厚)이다. 중국의 요양(遼陽) 고(高)씨는 고구려의 20대 왕인 장수왕의 후손으로, 태안현(台安縣)의 읍인 大高麗房鎭(대고려방진)에 2천여 명이 있다.

가장 흔하게 쓰이는 편안하다 (Comfort) 라는 의미가 대다수이고, 어두운, 짙은, 암흑, 등의 의미로도 쓰이는 종족 이름. 집 주(宀) 부수 함의로 초가집, 오두막을 거주지로 하는 종족. 꿇어앉은 계집녀부(女部),<nowiki/>'서민 여자', '계집종', '첩'(concubine) 등으로도 쓰인 한자라는 점에서 모계사회였음이 암시됨. 대표적인 연상자로 위안부(Comfort women)가 있는데 부정적인 함의에 유의해야한다. 이 경우 안(安)자는 편안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주로 경멸조로 쓰여 婢 (여자종 비) 부수로 女部(계집녀부), 꿇어앉은 여자 노예가 포함된 (maidservant ヒ·はした) 에서 유래되거나 女(계집녀) + 卑(낮을비)로 여자 종, 소첩 등 여자가 자기를 낮추어 일컫는 말로 사용된다. 혹은 꿇어앉은 여자가 초가집에 갇혀있는 모양새다. 갑골문에서는 노예, 노비의 뜻으로 쓰였고 일본어로 안(安)자는 /야스-/ 또는 /야수-/, /Yasu, Yas-/로 음독하며(やす-い, いずく-んぞ, やす-んじる) 예시로 야스쿠니 신사참배 (安國)가 있다. 官婢(관비) 죄로 말미암아 관에 잡혀서 노예가 된 여자, 여자 종이라는 부정적이고 불쾌한 함의가 발생하므로 이와같은 한자의 용례에 주의하여야 한다.


2.1. 안(安) 일본어 의미와 용례[편집]


일본어 안(安) 의미: 安 暗 あん [暗] [접두어] 《색깔을 나타내는 말에 붙음》 '어두운' '짙은'의 뜻. 【例】 あん紫色 암자색 【例】 あん褐色 암갈색. 案 あん [案]싸다. 편하다. 안주하다.

색깔을 나타내는 말에 붙음》 '싼', '싸구려의', ‘어두운’ ,‘짙은’, '진한'의 뜻. 우리말 어두울암, 암자, 작은 초가집을 뜻하는 '암'/Am/, /ahm/ 과 같은 의미. 【例】 あん紫色 암자색 【例】 あん褐色 암적색. 암홍색. 案あん[案]

[명사] 작은 초가집. 암자.〔동의어〕いお·いおり. 【例】 あんを結ぶ 암자를 짓다.【例】 庵室 암자【例】 草庵 초암.

[명사]큰 선사(禪寺)에 딸려 있는 작은 승방(僧房).

[형용사]싸다. 【例】 安価 값이 쌈. 【例】 按摩 안마. 누르다. 어루만지다.

1.어둡다. 【例】 暗雲 암운.【例】 明暗 명암.

2.거무스름하다. 【例】 暗紅 암홍. 【例】 暗灰色 암회색.

3.가려져 보이지 않다.【例】 暗礁 암초 【例】 暗流 암류.

4.드러나지 않게 하다.【例】 暗号 암호【例】 暗示 암시.

5.아둔하다. 미련하다. 【例】 暗君 암군【例】 暗愚 암우.

6.분명하지 않다. 침침하다. 〔참고〕 「闇」「諳」의 대신으로 씀. ((「闇夜」→「暗夜」, 「諳記」→「暗記」 등))

【例】 暗澹 암담【例】 暗然 암연.案あん[案]

7.초안. 계획. 【例】 法案 법안

8.안락사 安 樂 死


1.[접두어](값 등이) 쌈. 싸구려. 염가. 【例】 やす月給 박봉 【例】 やす普請 싸구려 공사. 날림 공사【例】 やす物 싸구려 물건【例】 やす宿 싸구려 여관. 싸구려 여인숙.

2.[접두어]경솔함. 경망스러움.【例】 やす請合い 경솔하게 떠맡음.

[명사] 작살. 어구(漁具)의 한 가지. 【例】 やすで突く 작살로 찌르다.やす


일본어 음독은 /안/이 아니라 /야스/, /야수/, /Yasu/ 이다. やす-い, いずく-んぞ, やす-んじる

예: 야스쿠니 신사참배 ( /Yasukuni,/ 靖國神社/靖国神社 야스쿠니진자,長州神社 초슈진자) 일본에서는 오랫동안 같은 뜻의 야스쿠니(安國)를 사용하였다. 위안부, 종군위안부. (慰安婦, いあんふ.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일본군의 성적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강제적이거나 집단적, 일본군의 기만에 의해 징용 또는 인신매매범, 매춘업자 등에게 납치, 매수 등 다양한 방법으로 일본군을 대상으로 성적인 행위를 강요받은 여성을 말한다.)

일어 安 야수 이름의 예: 고야스 타카히토 (子安 武人 Takahito Koyasu)


2.2. 안씨(安氏)성(姓)의 유래(由來) 날조와 역사왜곡 논란[편집]


한국인의 족보 편찬위원회가 편찬한 한국인의 족보에 보면 안씨(安氏)는 문헌상에 109본으로 나타나 있으나 6본(本)을 제외한 나머지 103본은 미고(未考)이다. 이하는 날조와 역사왜곡 논란 서술이다.

"[...]안씨(安氏)의 본성은 이씨(李氏)로서 서기 806년(신라 애장왕 7년)에 당나라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와 개성의 송악산밑에 정착한 이원(李瑗)의 아들 3형제가 서기 864년(신라 경문왕 4년)에 왜구를 평정한 공으로 안씨(安氏)를 사성(賜姓) 받았고 큰아들 지춘(枝春)은 방준(邦俊)으로 둘째아들 엽춘(葉春)은 방걸(邦傑)로 셋째아들 화춘은 방협(邦俠)으로 각각 개명하였다 한다.

그리고 방준은 죽산군에 봉해짐으로써 그 후손들은 죽산안씨(竹山安氏)가 되었고 방걸은 광주군에 봉해짐으로써 광주안씨廣州安氏)가 되었다." 고 한다.

오류 내용
- 그러나 이원(李瑗)이라는 사람이 역사에 나오지 않는다. 허구의 이름이다.

- 그러나 경문왕 4년에 왜구와 싸운 역사적 사실이 없다.

- 그러나 죽산군(竹山君). 광주군(廣州君). 죽성군(竹城君)으로 봉군(封君)하였다는데 신라 경문왕 당시에 죽산. 광주. 죽성등의 지명(地名)이 없었고. 신라 당시 일반백성에게 봉군하는 제도 자체가 없었으니 다 거짓이다.

- 1700년대 후반에 나기 시작한 농서이씨설이라는 설을 기준으로 만든 안씨성의 유래는 고증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안씨 성(姓)씨의 역사가 아니다.

일반 사회에 유포되었던 설을 성씨의 유래로 표기한 자체가 문제로 전부 날조되었다.


또한 일부 나무위키미디아 등 날조와 조작이 잦은 국내 사이트들에서 일각 당나라의 안록산, 독일 등 백인계 후손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하지만 전부 날조와 역사왜곡으로 한 눈으로만 보기에도 전혀 근거없는 헛소리들이다. 오히려 일본어 安은 어둡다, 암흑, 검다, 까맣다 등의 의미가 있다.





2.3. 기타용례[편집]



2.4. 단어[편집]


  • 가리야스(安) - 노란색 안료로 쓰이는 벼과 식물.
  • 건안(建安)
  • 공안(公安)
  • 국안(國安)
  • 국태민안(國泰民安)
  • 문안(問安)
  • 미안(未安)
  • 보안(保安)
  • 불안(不安)
  • 안거(安居)
    • 하안거(夏安居), 동안거(冬安居)
  • 안기부(安企部)
  • 안녕(安寧)
  • 안도(安堵)
  • 안락(安樂)
    • 서방안락국(西方安樂國), 안락사(安樂死), 안락세계(安樂世界), 안락정토(安樂淨土)
  • 안보(安保)
  • 안부(安否)
  • 안식(安息)
  • 안심(安心)
  • 안위(安危)
  • 안이(安易)
  • 안일(安逸)
  • 안전(安全)
    • 국가안전기획(國家安全企劃), 안전답(安全畓), 안전보장(安全保障), 안전사고(安全事故), 안전성(安全性), 안전제일(安全第一)
  • 안정(安定)
    • 안정성(安定性), 안정세(安定勢), 안정적(安定的), 안정화(安定化), 통화안정증권(通貨安定證券)
  • 안정(安靜)
    • 신경안정제(神經安靜劑), 절대안정(絶對安靜)
  • 안주(安住)
  • 안착(安着)
  • 안타(安打)
  • 위안(慰安)
  • 장안(長安)
  • 치안(治安)
  • 카리야스(刈安) - 억새과의 식물


2.5. 고사성어/숙어[편집]


  • 보국안민(輔國安民)
  • 안거낙업(安居樂業)
  • 안빈낙도(安貧樂道)
  • 일로평안(一路平安)
  • 좌불안석(坐不安席)


2.6. 인명[편집]



한국의 성씨 한자 상위 10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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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위까지 성씨는 내국인 인구의 99.16%임 (2015년 통계청 자료)
 
한국의 성씨별 인구 분포 문서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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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이
03 박
04 최
05 정
06 강
07 조
08 윤
09 장
10 임
11 한
12 오
13 서
14 신
15 권
16 황
17 안
18 송
19 유/류
20 전
21 홍
22 고
23 문
24 양
25 손
26 배
27 조
28 백
29 허
30 유
31 남
32 심
33 노
34 정
35 하
36 곽
37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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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임
44 나/라
45 전
46 민
47 유
48 진
49 지
50 엄
51 채
52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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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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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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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양
62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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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추
65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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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소
68 신
69 석
70 선
71 설
72 마
73 길
74 주
75 연
76 방
77 위
78 표
79 명
80 기
81 반
82 왕
83 금
84 옥
85 육
86 인
87 맹
88 제
89 모
90 장
91 남궁
92 탁
93 국
94 여
95 진
96 어
97 은
98 편
99 구
100 용





2.7. 지명[편집]




2.8. 기타[편집]




3. 유의자[편집]


  • (편안할 강)
  • (편안할 녕)
  • (편안할 온)
  • (편안할 일)
  • (편안할 정)
  • 便(편할 편/똥오줌 변)


4. 모양이 비슷한 한자[편집]


  • (성씨 강)
  • (춤출 사)
  • (요긴할 요)
  • (맡길 위)
  • 姿(모양 자)
  • (사랑할 폐)
  • (고기썩을 알)


5. 광주 안씨[편집]


광주 안씨(廣州安氏) 시조 안방걸(安邦傑)은 고려 태조 때 광주의 향리(鄕吏)로 대장군(大將軍)을 역임하고, 이후 광주군(廣州君)에 봉해졌다. 후삼국을 통일한 후 지방 유력자들에게 성씨를 갖게 하는 정책에 따라 토성분정(土姓分定)에 의해 안(安)씨로 스스로 갖게 되었다. 2015년 인구는 48,033명이다.


6. 순흥 안씨[편집]


순흥 안씨(順興安氏) 시조 안자미(安子美)는 고려 신종 때 흥위위보승별장(興威衛保勝別將)을 역임하고 신호위상호군(神虎衛 護軍)에 추봉되었다.<ref>[http://www.segye.com/content/html/2014/03/11/20140311004659.html 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69〉안씨(安氏)·순흥안씨(順興安氏) 토속 성씨 순흥안씨, 고려 때 시조 증손 안향 이후 크게 번성], 세계일보, 2014년 3월 11일</ref> 안자미의 증손자인 안향(安珦)이 1260년(고려 원종 1년) 문과에 급제하여 충렬왕 때 도첨의중찬(都僉議中贊)에 이르렀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71635 『고려사』 권105, 열전18]</ref> 2015년 인구는 520,384명이다.


7. 죽산 안씨[편집]


죽산 안씨(竹山安氏)는 안준(安濬)과 안영의(安令儀)를 1세조로 하는 두 계통이 있다. 안영의(安令儀)의 증손 안전(安戩)은 고려 충렬왕 때 도지휘사(都指揮使)를 지냈다. 안준(安濬)의 7세손인 안극인(安克仁)은 고려 공민왕의 계비인 정비(定妃)의 아버지로서 죽성군(竹城君)으로 봉군되었다. 2015년 죽산 안씨 인구는 77,026명이다.

신 죽산 안씨(新竹山安氏)의 시조 안원형(安元衡)은 고려 공민왕 때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면서 나라에 공을 세워 죽성군(竹城君)에 봉해졌다고 한다. 안원형의 손자 안노생(安魯生)이 1376년(고려 우왕 2년) 문과에 급제하여 조선 태종 때 예조참의(參議)와 경기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11세손 안방준(安邦俊)은 효종 때 공조참의를 역임하였다.


8. 탐진 안씨[편집]


탐진 안씨(耽津安氏) 시조 안우(安祐)는 고려 공민왕 때 중서평장정사(中書平章政事)·추충절의정란공신(推忠節義定亂功臣)에 올랐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672008&cid=49632&categoryId=49632 『高麗史』 卷 一百十三, 列傳 二十六]</ref> 2015년 인구는 강진 안씨 15,585명, 탐진 안씨 10,513명으로 총 26,098명이다.


9. 안산 안씨[편집]


안산 안씨(安山安氏) 시조 안자유(安子由)는 왕이 원나라에 갈 때 시종한 공으로 1342년(충혜왕 복위 3) 2등공신이 되었고, 1347년(충목왕 3)에는 첨의참리(僉議參理)로서 태묘(太廟)에 제사하는 일을 주관하였다.

안탄대(安坦大)가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에서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1507년(중종 2) 안탄대의 딸이 9세의 나이로 궁녀에 뽑혀 입궐하였다가 중종의 후궁 창빈 안씨(昌嬪安氏)가 되었고, 외손자 덕흥대원군의 아들이 선조(宣祖)로 즉위하였다.

2015년 안산 안씨 인구는 179명이다.




10. 기타 본관[편집]


* 태원 안씨(太原安氏) 시조 안만세(安萬世)는 원나라 전서로서 노국공주를 따라 고려에 동래하여 공민왕 때 예부상서(禮部尙書)를 지냈다고 한다. 2015년 인구는 1,637명이다.
* 제천 안씨(堤川安氏) 시조 안적재(安迪材)는 고려시대 평리(評理)를 지냈다. 2000년 인구는 255명이다.
* 주천 안씨(酒泉安氏) 시조 안정방(安挺方)은 고려 때 호장(戶長)을 지냈다. 2000년 인구는 308명이다.
* 지곡 안씨(池谷安氏)로 조선 초기의 화가 안견(安堅)이 있다. 현재 인구는 집계되지 않는다.
* 순천 안씨(順天安氏)는 안바위쇠(安破回金)가 1637년(인조 15년) 무과에 급제하여 면천(免賤)되었다. 2015년 인구는 278명이다.
* 수원 안씨(水原安氏)는 안경기(安京己) 등 12명이 조선시대 무과에 급제하였다. 2015년 인구는 116명이다.
* 수안 안씨(遂安安氏)는 안중원(安仲元) 등 3명이 조선시대 무과에 급제하였다. 2015년 인구는 10명이다.



11. 여담[편집]


  • 정비 안씨 음주 및 패망일화
1366년(공민왕 15년) 음력 12월 갑인일 안씨(安氏)를 정비(定妃)로 봉했다.

그러나 당시 동지밀직(同知密直)이었던 아버지 안극인이 노국대장공주의 영전(影殿) 공사 관련 중지를 공민왕에게 건의한 일로 아버지 안극인은 비참하게 파직되고 정비 안씨는 궁에서 쫓겨나게 되나 얼마뒤 다시 수차례 입궁을 시도한 혐의를 받고 심지어 재입궁 뒤에도 정비 안씨가 자제위(子弟衛)의 청년들과 윤간과 성관계를 맺기를 강요하는 등의 추악하고 악랄하기 그지없는 비행을 일삼고 머리를 풀고 목을 매는 정신병에 가까운 기행을 벌여대며 거부 의사를 드러냈다.

1366년(공민왕 15년) 정실부인들에 대한 열등감을 이기지 못하고 궁내에서 싸움을 벌이고 광패한 행동을 일삼아 공민왕이 그녀의 출입을 엄금하고 직첩과 녹봉을 거두어 벌하였으며 공민왕은 안씨 비비의 무지함과 광패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안씨(安氏)는 어릴 때부터 광패(狂悖)하고 교만하며 방자하여, 예법과 글을 익히게 하였으나 책을 펴 보기도 싫어하므로,

이에 몸가짐을 배우게 하였더니 또 뜻을 두지 아니하고 오직 끊임 없이 안주하여 게으르게 놀기만 좋아하였다.

일찍이 경회루 다리에서 떨어져 죽게 된 것을 정실부인 이씨가 마침 보고 구원하여 살았는데,

나는 이르기를, ‘보고 배운 데 없는 천한 자손인 까닭이니 자라서 철이 나면 반드시 여기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이미 봉하였는데 아직도 행동을 고치지 아니하는구나.

일찍이 남의 기생 첩 출신으로 광망(狂妄)함이 날로 심하므로,

그의 구사(丘史)를 잡아 가두고 명하여 집에 있게 하여 출입을 못하게 하고,

또 만나보지도 아니하여 스스로 마음을 고쳐 새로워지기를 기다렸으며,

또 기풍을 폐할까 염려하여 궁내 예법하도록 하면서도 오히려 만나보지 아니하였더니,

막 후궁에 나아가자마자 맨 먼저 금령을 범하여 먼저 함부로 날조 하였으니,

그 광패(狂悖)함이 날로 늘어가매 내가 심히 근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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