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8888577 (문단 편집) === [[롯데 자이언츠/2002년|2002년]] === 2001년에 기록한 8위는 그래도 괜찮았다. 2001년 시즌에서의 4위 한화와 8위 롯데간 성적은 '''단 2게임 차'''로, 격차가 좁았기 때문에 꼴지를 한 그 자체가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2002년 김민재의 FA 이적, 펠릭스 호세의 이중 계약 파동, 그리고 박석진[* 특히 01시즌에는 구원투수임에도 규정이닝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던졌다. ]과 박지철의 시즌 아웃이라는 악재를 맞았다. 특히 호세는 2002년에도 재계약이 사실상 확정되었으나, 휴식을 한다면서 스프링 캠프에 오지 않다가 갑자기 애리조나와의 계약을 하면서 이중 계약으로 '''프로야구 최초 외국인 선수 영구 제명'''을 받게 된다.[* 사실 이중 계약 파동으로 논란을 겪은 건 롯데만이 아니었다. 한화도 2002년 프란시스코 캄포스라는 투수 용병을 영입했으나 밀워키로 뒤통수 치고 가버렸다. 그리고 대체 선수가 바로 [[레닌 피코타]]이다.] 물론 KBO와 롯데 구단이 항의를 안 한 건 아니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에 항의 팩스를 몇 번 보냈으나 실패한 것이다. 그 후 2004년에 겨우 투자를 시작한 롯데에선 부상으로 약간 안 좋았던 이시온을 포기하고 호세를 다시 데리고 오는 게 낫지 않나라는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이걸 반영해서 호세 영입을 강력하게 원했던 롯데는 호세만 무조건 영입하려 한다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노력했으나, 이중 파동으로 당시 KBO 영구 제명을 당하고 있던 호세는 오지 못했다. 물론 나중에 제명이 풀려서 2006년에 돌아오긴 한다. 4월, 5월에는 이대호가 끝내기 쓰리런을 치기도 하고 타격 3위에도 오르는 등 어느 정도 버텨냈으나 이렇게 전년도의 주축 전력들이 이탈을 메꾸기는 역부족이었다. 6월 월드컵이 시작과 동시에 롯데는 나락으로 빠져들기 시작했고, 대행에서 승격한 우용득 감독은 이러한 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16연패'''를 하고 중도 사퇴했다.[* 우용득 감독은 13연패를 한 날 경질되었다. 사퇴 이후 수석코치이자 이전에 롯데 감독이었던 [[김용희]]가 삼성전에 대행을 맡았지만 두 경기 전부 패배해 15연패. 백인천 부임 후 한 경기를 더 져 16연패까지 이어진다.][* 후일 KIA 타이거즈가 2010년 6월 18일부터 7월 8일까지 져 16연패 타이기록을 세운다. 그 유명한 [[잠실 KIA팬의 난]]이 이것 때문에 터졌다. 이를 뛰어넘는 기록은 쌍방울 레이더스의 8월 25일부터 10월 5일까지 17연패와 1985년 3월 31일부터 4월 29일까지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18연패, 한화 이글스의 2020년 5월 22일부터 6월 12일까지의 18연패.] 6월 1일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개막에 승리를 거둔 롯데는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 폐막이 가까운 6월 27일[* 6월 30일 폐막.]에 되어서야 다시 승리를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경질된 우용득 감독의 후임으로 '''백인천''' 감독이 부임했는데, 백인천 감독은 고의 태업 논란 등을 일으키는 등 거하게 폭망하며, 본격적으로 '''롯데 7년 암흑기의 시대를 열었다.''' 백인천은 왕년에 명감독으로 평가받았지만 삼성 시절에 뇌출혈로 쓰러진 이력이 있어 불안하다는 평이 많았었는데[* [[김영진(야구)|이 분]]과 [[전병호|이 분]]이 각각 한 번씩 백인천을 쓰러뜨렸고, 심지어 앞에 열거되신 분은 전병호가 마운드에 있을 때 선발포수였다.], 여튼 부임하자마자 시즌 포기와 리빌딩을 선언하게 된다. 이 시즌 포기 선언이 백인천의 암흑군주 등극 시발점이라는 인식이 많지만, 백인천이 부임한 시점에서 팀은 무려 '''15연패''' 에 빠져 있었고, 성적은 '''17승 1무 44패 승률 0.279'''로 누가 봐도 처참했기 때문에 백골퍼의 시즌 포기 선언 자체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물론 그 이후의 백인천의 행보는 모든 사람이 알듯 역대 최악의 감독이자 밈으로 남을 정도였지만 이외에도 백골퍼는 그나마 남은 전력인 조경환[* 심지어 이 선수. 전 해에는 중심타자였고, 당시에는 주장이었다. 주장을 시즌 중에 팔아버린 셈이다.]과 매기를 트레이드로 넘겨버리며 사실상 시즌 포기 형태로 잔여시즌을 보냈다. 결과적으로 트레이드로 보낸 조경환과 매기가 SK에서 완전히 망가지며 젊은 유망주를 받아온 롯데가 더 낫다는 평도 받았지만, 그 선수들이 딱히 보여준 건 없어서... 하여간 2002년 롯데는 구단 역사상 '''최악'''+모든 구단 역사상 뒤에서 3위[* 모든 구단 역사상 뒤에서 1등은 프로야구 '''원년''' [[1982년]]의 승률 0.188을 찍은 [[삼미 슈퍼스타즈]], 2위는 모기업 부도로 주전을 모조리 팔아치우고 이듬해 해체된 승률 0.224의 [[1999년]] [[쌍방울 레이더스]]. 즉 원년과 모기업 부도라는 특이사례를 제외하면 승률 꼴찌이며 패배 수로는 1999년 쌍방울과 타이기록이다.]이라는 찬란한 성적인 '''35승 1무 97패, 승률 0.265'''를 내면서 독보적인 최하위를 한다. 7위 한화의 승률인 '''0.461'''와도 2할 가까이 차이가 난다. 이 때문에 [[한국프로야구/2002년|2002년 시즌]]은 역대 최악의 승률 인플레를 자랑했다. 아니, 당시에 '''1위와 7위 한화의 승차보다 7위와 8위 롯데의 승차가 더 벌어졌다'''. 순위 경쟁이 치열하면 '''페넌트레이스 1위와 최하위'''의 승률 차이가 2할도 안 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바로 전 해에는 한국시리즈 우승 팀과 리그 꼴찌 팀이 1할도 차이 안 났었는데 참고로 이 때 롯데는 '''[[청보 핀토스]] 시절 [[허구연]]의 감독시절 승률 기록인 0.273'''을 깼다. 이 해 롯데의 홈 최종전이었던 [[2002년]] [[10월 19일]][* 심지어 그 날은 일주일 중에 제일 많은 관중수를 기록하는 [[토요일]]이었다.] [[한화 이글스|한화]]전의 유료 관중은 겨우 '''69명'''이었다. 롯데 모자와 셔츠 등을 입고 오면 무료 입장 가능했는데 무료 입장 관객들을 합쳐도 200명 남짓이었다. 그리고 이날 롯데는 한화에 패배하며 97패 타이를 기록하였다. 이 당시 관중 동원이 얼마나 적었는지 증명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2002년]] [[9월 14일]], [[2002 부산 아시안 게임|부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참가국들을 응원하는 시민 서포터즈가 결성되었는데, 원래 주경기장에서 발대식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3만 명 이상의 서포터즈가 모이고 [[이근식|행정자치부 장관]], [[안상영|부산시장]], 각국 대사가 참가하는 성대한 행사였다. 롯데는 침체된 프로야구붐을 되살려보겠다는 생각으로 사직야구장으로 장소를 변경하길 요청했고, 행사 이후에 서포터즈가 그대로 공짜 야구 경기를 관람하게 할 계획이었다. 그리고 5년만의 만원 관중 예상이라며 보도자료를 돌렸다. [[http://cluster1.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B6H&fldid=HvQ&datanum=3344&openArticle=true&docid=B6HHvQ334420020911230358|관련 기사]]. 그리고 야구장은 오랜만에 사람들로 붐볐는데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0238742|#]] 하지만 그 날 관중 수는 '''514명'''. 행사가 끝나고 야구 경기 시작시간이 되자 귀신 같이 관중들이 다 빠져나가 버린 것이다. [[http://cafe.daum.net/lgseoul/1D2e/3340?q=%BE%C6%BD%C3%BE%C8%B0%D4%C0%D3%20%BC%AD%C6%F7%C5%CD%C1%EE%20%B9%DF%B4%EB%BD%C4%20%C7%C1%B7%CE%BE%DF%B1%B8%20%B0%F8%C2%A5&re=1|#]] 당시 운영팀장은 "사람들이 돈 받는 줄 알고 다 갔나봐요."라며 씁쓸해 했다. 한마디로 공짜 야구도 소용 없는 지경이었다. 그리고 시즌 후인 2002년 11월, [[박용오]] KBO 총재는 롯데 구단을 겨냥하여 '''내년 시즌부터 수준 이하의 경기 내용으로 관중 동원력을 상실한 프로야구단의 경우 구단주 총회의 의견을 모아 강제 퇴출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비공식 경고를 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