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5도 양계 (문서 편집) [include(틀:한국 행정구역의 시대별 변천사)] [include(틀:고려의 행정구역)] [[파일:external/study.zumst.com/%EA%B3%A0%EB%A0%A4%EC%9D%98%EC%A7%80%EB%B0%A9%ED%96%89%EC%A0%95%EC%A0%9C%EB%8F%84.png|align=center]] [목차] == 개요 == [[고려]]시대의 전국 [[행정구역]] 체계. 이 안에 3경 4도호부 8목을 두었다. == 상세 == [[성종(고려)|성종]] 때 [[10도]]로 전국을 구분했다가 이를 [[현종(고려)|현종]] 때 5도 양계로 재편했다. 이 중 5도는 일반적인 [[도(행정구역)]], 그리고 북계와 동계 둘로 이루어진 양계는 국가안보적으로 중요한 북방 국경지역에 해당했다. 앞서 [[통일신라]] 때의 [[9주 5소경]]에 비해 훨씬 더 현대 [[대한민국]]의 행정구역 형태에 가까워진 모습이다.[* 사실 이럴 수밖에 없는 게 고려는 광역행정단위를 물려받은 게 아니라 아예 새로 짰고(물론 이전부터 내려오던 대도시를 중시하거나 기초행정단위를 거의 그대로 유지한 건 이전과 마찬가지였다. 이는 큰 변화가 있기 힘들기 때문에 유래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체제가 진화하여 다다른 게 조선의 8도 체제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이를 계승한 현대의 행정구역도 어느 정도는 닮을 수밖에 없다.] 수도 개경 인근 지역은 [[경기]](京畿)라고 불려서 5도에 포함되지 않는 별도의 행정구역이었다. 조선시대의 [[경기도]]가 8도 중 하나의 '도'였던 것과 달리 고려시대의 경기는 경기'도'가 아니라 그냥 경기였다. 5도는 행정적인 성격을 띠고, 양계는 군사적 성격을 띤다. [[파일:external/oriwiki.net/%EA%B3%A0%EB%A0%A4_%EC%97%AC%EB%A7%90_%ED%96%89%EC%A0%95%EA%B5%AC%EC%97%AD.png]] 고려 말기에는 상당한 개편이 이루어졌다. [[개경]] 근처의 [[경기]]가 훨씬 커져서 고려 후기에는 경기를 좌우로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위의 지도를 보면 경기의 영역이 [[한강]] 일대까지 확장된 것을 볼 수 있는데, 양광도의 '양'인 [[양주시|양주]]도 경기에 속하게 돼 정작 [[이름과 실제가 다른 것/지명|양광도에 양주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양광도와 [[서해도]]는 그만큼 쪼그라들었다. 서해도의 영역은 현 [[북한]] [[황해남도]]와 비슷해졌다. [[교주도]]는 [[동계]]의 길쭉한 남쪽 부분 대부분(즉 [[영동]] 지방)을 먹어 현대의 [[강원도]]와 영역이 비슷해졌으며, [[북계]](서북면)와 북쪽만 남은 [[동계]](동북면)는 이후 [[평안도]], [[함경도]]의 영역과 비슷해진다. 사실상 조선 [[팔도]] 내지는 현대 한국의 행정구역과 거의 비슷해진 셈. 구역의 다소 차이가 있지만 오늘날의 [[전라도]]와 [[경상도]]가 이 때 생겼다.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지금은 [[충청북도]]인 [[영동군]], [[옥천군]], [[보은군]] 등이 경상도 소속이고 또 지금은 [[충청남도]]인 [[금산군]] 전역과 [[논산시]] 남부 일부 등이 전라도 소속이며 또 지금은 [[경상북도]]인 [[울진군]]이 동계 소속인 등 세부 경계선은 조금씩은 달랐다. 단, 조선시대에도 금산은 전라도 소속이었고 울진은 강원도 소속이었다. 이곳들의 행정구역 변천은 박정희 정권기에 일어났다. 조선[[팔도]]에 해당하는 나머지 6개도의 이름은 좀 더 늦은 [[조선]]시대에 정립되었다. == 둘러보기 == [include(틀:대한민국 관련 문서)] [[분류:고려의 행정구역]]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