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리츠 자우켈 (문서 편집) [include(틀:나치 독일의 전쟁범죄)] [include(틀:슈츠슈타펠/장성급 지휘관)] ||||<:><-3><#DD0000>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B70101 0%, #CC0000 20%, #CC0000 80%, #B70101)" '''{{{#white 제국 전권 노동 감독관 [br] 친위대 명예 상급집단지도자[br]{{{+2 프리츠 자우켈}}} [br]Fritz Sauckel}}}'''}}}|| ||||<-3><#ffffff><:>{{{#!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프리츠 자우켈 프로필.jpg|width=100%]]}}} || ||||<:><#DD0000>'''{{{#white 본명}}}'''||'''Ernst Friedrich Christoph "Fritz" Sauckel''' [br]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크리스토프 "프리츠" 자우켈 || ||||<:><#DD0000>'''{{{#white 출생}}}'''||[[1894년]] [[10월 27일]] [br] [[독일 제국|독일국]] [[바이에른 왕국]] 하스푸르트 || ||||<:><#DD0000>'''{{{#white 사망}}}'''||[[1946년]] [[10월 16일]] [br] [[연합군 점령하 독일]] [[뉘른베르크]] || ||||<:><#DD0000>'''{{{#white 정당}}}'''||[include(틀: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DD0000>'''{{{#white 계급}}}'''||[[슈투름압타일룽]] [[대장(계급)|대장]] (상급집단지도자) [br] [[슈츠슈타펠]] [[대장(계급)|대장]] (상급집단지도자)|| ||||<:><#DD0000>'''{{{#white 시민권}}}'''||[[독일인]]|| [목차] [clearfix] == 개요 == || [[파일:자우켈2.jpg|width=100%]] || || '''프리츠 자우켈 (Fritz Sauckel)''' || [[나치 독일]]의 정치인이자 국가 전권 노동 감독관이었다. == 초기 행적 == 하스푸르트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병으로 인해 학업을 중단한 뒤 15세 때부터 선원으로 일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오스트레일리아]]로 항해 도중 배가 연합군에 의해 배가 나포되어서 [[프랑스]]에 억류되기도 했다. 전후인 [[1919년]] 풀려난 뒤 독일로 귀국해 공장 노동자로 일했다. == [[나치당]] 입당 == [[1923년]]에는 [[나치당]]에 입당했으며, [[1927년]]에는 튀링엔 대관구의 관구장(Gauleiter)에 선임되었다. [[1933년]] [[히틀러]]가 수상이 된 뒤에는 제국의회 의원과 튀링엔 대관구의 제국 지도자로 승격되었으며 돌격대와 친위대의 명예 상급집단지도자 계급도 부여받았다. == [[제2차 세계 대전]] ==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카셀의 제국 국방위원을 역임했고, [[1942년]] [[3월]] [[알베르트 슈페어]]의 추천으로 제국 전권 노동 감독관이 되었다. 독일 내의 많은 노동 가능 인원들이 징집되어 노동 인력이 부족해지자, 점령지에서 약 500만 명에 달하는 인력을 독일로 보내 노동에 종사하도록 하는 것이 주요 업무였다. 노동자들 중에는 자원해서 독일로 간 이들도 있었으나 대부분 강제로 징용되어서 [[하시마 섬|기본적인 생활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대우를 받거나 탄압을 받았다.]] == 전후 재판과 최후 == 종전 후에는 [[연합군]]에 의해 체포되었고,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재판 중에 자우켈은 자신이 노동력 동원을 주도한 점은 인정했지만, 그들이 당한 가혹 행위나 부당한 처우, 살해 등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사실 재판관들 사이에서도 사형 선고에 대해서도 이견이 많았고, 특히 자우켈의 상관이었던 슈페어가 훨씬 가벼운 20년형을 선고받은 것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 일부 방청객들은 슈페어가 살아남기 위해서 자우켈에게 교묘하게 책임을 떠넘겼다고 비판하기도 했고 현재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다. 사형 집행은 다른 사형수들과 마찬가지로 [[교수형]]이었고, 교수형이 집행 직전 최후 진술에서 '''"나는 무고하게 죽는다. 내 형량은 불공평하다. 신이여, 독일을 보호하소서!"''' 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또한 그는 사형대에 올라 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교수대를 바라보며 "난 죄 없이 죽는거요."라고 애처롭게 중얼거렸다고 한다. 사망 후 시체는 자살한 [[헤르만 괴링]]을 포함한 사형수 11명의 유해와 함께 뮌헨 근교의 화장장에서 화장된 후 유골은 미 육군에 의해 공개되지 않은 채 강에 뿌려졌다. [[분류:1894년 출생]][[분류:1946년 사망]][[분류:나치당원]][[분류:독일의 정치인]][[분류:슈투름압타일룽/인물]][[분류:친위대(나치 독일)/인물]][[분류:바이에른 주 출신 인물]][[분류:교수형된 인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