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스우즈 작전 (문서 편집) '''Operation Northwoods''' [[파일:external/163fe5edf260f1dff3f3803ed79a8bb4353d725c089b9c5492b110583c7119ec.jpg|width=400]] [목차] == 개요 == [[1962년]]에 [[미국]] 군부가 [[쿠바]]를 침공하기 위해 '배경이 되는 적절한 사건'을 '''[[자작극]]으로 일으키려고 했던 계획'''이다. 처음 나온 작전이 군부에 의해서 만들어진 노스우즈 작전이었고 실제로 시행된 [[피그만 침공]] 후 이것을 좀 더 구체화한 것이 몽구스 작전이었다. 하지만 이는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과 [[존 F.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에 의해서 최종적으로 거부되면서 무산되었다. 여러가지 측면에서 [[문민통제]]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 배경 == 배경은 [[1958년]]에 성공한 [[쿠바 혁명]]이었다. [[피델 카스트로]]의 쿠바 정부는 [[1960년]] 7월부터 쿠바 내 미국인들의 소유재산을 몰수하는 등 경제 제재를 가하기 시작했고 미국은 이에 대해서 경제적 압박 강화로 맞섰다. 이때는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행정부 막바지로, 미국과 쿠바의 갈등이 극대화해서 [[1961년]] 1월 3일 미국은 쿠바와 [[국교단절|국교를 단절]]했다. 아이젠하워의 임기가 바로 그 달 20일로 마감되었으니 케네디가 당선된 것은 물론이고 퇴임까진 20일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런 국제적 상황에서 [[CIA]]와 [[미군|미국 군부]]는 각각 나름대로 쿠바를 다시 뒤집어엎기 위한 계획을 세워나갔다. 다만 기간의 촉박함으로 인해서 실제로 계획이 완성된 것은 모두 케네디 행정부 시기의 일이었다. 미국인 재산 몰수가 있었던 [[1960년]] 3월보다 이전부터 최초 계획이 시작되었던 CIA의 계획이 훨씬 먼저 성과를 드러내면서 케네디 행정부가 들어선 지 3개월만인 [[1961년]] 4월에 실행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자파타 작전 (Operation Zapata),[* [[멕시코]] 혁명가 [[에밀리아노 사파타]]에서 따 온 코드명. 이전 코드명은 [[플루토]] 작전이었다.] 흔히 [[피그만 침공]]으로 알려진 작전이었다. 물론 피그만 침공은 [[집단사고]]가 왜 무서운지, 그리고 케네디에게 왜 정보기관과 군부를 믿으면 안 되는지만 알려주고 끝났다. 그리고 자파타 작전이 실행되기 1개월 전인 3월 12일 미국 군부에서도 보고서를 완성해서 올렸는데 이것이 바로 노스우즈 작전이었다. == 노스우즈 작전 == 노스우즈 작전을 다룬 계획서는 'Justification for U.S. Military Intervention in Cuba[* 쿠바에 대한 미군의 개입 정당화] (TS)'로, [[합동참모본부#s-3.1|미합중국 합동참모본부]]에 의해서 작성되었고 [[미합중국 국방부]]로 넘어갔다. 이 내용을 간단히 말하자면 "미국이 아무런 명분없이 바로 주권국인 쿠바를 침공하면 [[제3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고 그 어떤 나라한테도 지지를 받을 수 없으니까 [[제2차 세계 대전]]의 참전 배경이었던 [[진주만 공습]] 정도의 사건을 [[자작극]]으로 찍자"로 요약할 수 있었다. 미국이 바로 침공 명분을 얻을 만한 자작극은 바로 '''자국민 학살극'''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예시는 다음과 같다. * 여객기가 쿠바에 의해서 격추된 것처럼 위장 * 비행기를 납치해서 미국 주요 지점들에 자살 테러 * 마이애미 등의 시가지에서 쿠바인으로 위장한 사람이 총기난사 이런 기획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으니 먼 훗날 [[9.11 테러]]에 대한 [[음모론]]이 나름의 설득력을 얻을 수 있게 된 바탕이 되기도 했다. "예전에 이런 작전도 실제로 계획된 마당에 이 테러라고 진짜 자작극이 아니란 보장이 있냐"는 게 그 논리. 이 계획서는 라이먼 렘니처 당시 미국 합동참모본부 의장에 의해서 확정돼서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까지 올라갔으나, 케네디와 맥나마라라는 그나마 제정신을 유지하던 [[문민통제|민간정부에 의해서 거부되었다.]] 특히 케네디는 쿠바를 공격하기 위해서 거대한 군사작전을 벌이지 않겠다는 것을 명확히 했다. == 몽구스 작전 == [[파일:external/mcadams.posc.mu.edu/balloon.gif|width=400]] 본래 이는 노스우즈 작전과는 별개로 [[1962년]] 2월 국방부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였는데 피그만 침공이 실패한 1962년 8월 노스우즈 작전과 결합해 증보된 형태로 다시 등장했다. 피그만 작전 실패로 [[미국-쿠바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고 케네디는 취임 초기에 큰 이미지 손실을 봤는데 이런 상황에 대한 반전 카드로 다시 한 번 제기된 것이다. 이른바 '쿠바 프로젝트'다. 이번에는 국제사회에 쿠바에 대해 불리한 분위기를 적절하게 유도한 다음 쿠바인으로 위장한 이들이 미군 [[관타나모]] 해군기지를 습격해서 시설을 파괴하고 군함을 폭파시킨 후[* 자군의 군함이 적의 공격을 받았다거나 파괴되었다는 건 개전의, 전쟁의 명분으로 삼기 매우 유용하다. 물론 진짜로 전쟁에 이용하기 위해 군함을 공격하는 짓을 하지는 않았지만 [[통킹만 사건]]의 경우 공격 자체는 실제로 발생했지만 [[북베트남]]의 공격을 과장해서 전쟁의 구실로 삼았고 [[미국-스페인 전쟁|미서전쟁]] 시기의 메인함이 침몰하자 원인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를 구실로 전쟁을 벌인 사례도 있다.] 그 희생자를 과장해서 신문에 실어 여론을 움직이고 이렇게 생성된 국가적 분노를 바탕으로 쿠바와의 전쟁을 벌이자는 것이었다. 민간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계획안이 반려되자 들고 나왔다는 게 '''미군 희생시키기다.''' 당연히 이 역시 말도 안 되는 개소리였기 때문에 케네디와 맥나마라는 반대했고 이후 렘니처가 합참의장직에서 물러나면서 흐지부지되었다. == 군부의 목적 == 전임 대통령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시절 군부의 미국 내 영향력은 굉장히 약화되었다. [[냉전]] 덕분에 국방예산과 군사예산이 크게 오르기는 했으나 군 출신인 아이젠하워는 군과 군수대기업들이 예산을 타내가는 꼼수를 아주 잘 꿰뚫어보고 있었기 때문에 취임하자마자 군부가 비대하게 올려 타먹은 예산을 무자비하게 삭감했고 그의 재임 기간 동안 군사분야에 과도한 예산이 투입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전문가'인 자신들의 의견을 따르라는 군부의 반발도 있었지만 '''[[원수(계급)|5성 장군]]'''에 '''[[제2차 세계 대전]] [[연합국|연합군]] 총사령관'''까지 지낸 아이젠하워에게는 당연히 씨알 하나 먹히지 않았고 군부는 그저 억소리 나는 [[고참|짬킹]] 대통령 앞에 납작 엎드려야만 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와 비교하면 사실상 먹물이나 다름없던 [[중위]] 출신 케네디 행정부 출범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아이젠하워의 재임기간 동안 찍 소리도 못 했던 군부로서는 쿠바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태는 위상 회복에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으며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제노사이드|자국민 학살]]이나 '소소한' 아군 피해는 '''[[군부독재|안타깝긴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또 기본적으로 군부는 케네디 행정부를 불신했고 자신들의 앞마당인 쿠바라는 지역이 공산화된 것에 대한 공포에 가득 차 있었다. 노스우즈 작전을 통해 군부는 영향력 회복과 신임 케네디 행정부 길들이기라는 두가지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는 목적이었다. 전쟁에 대한 군부의 적극적인 모습은 [[쿠바 미사일 위기]]를 통해서 아주 강렬히 드러난다. == 공개 == [[1997년]] 11월 케네디 암살을 다룬 위원회가 해당 보고서를 기밀해제하면서 세상에 공개되었으나 그 파급력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2001년 제임스 뱀포드가 국가안보국 ([[NSA]])을 비판하는 책 '비밀의 몸통' (James Bamford, 'Body of Secrets', Doubleday, 2001)을 쓰면서 그 내용으로 노스우즈 작전을 언급해서 대중에 널리 알려졌다. == 기타 == 이 작전은 아주 특이한 것이 [[음모론]]의 모든 내용을 다 갖추고 있는 사건이지만 실제로는 실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작 음모론으로는 나온 적이 없다는 괴상한 형태를 띄고 있다. 하지만 자작극을 벌여 자국민을 희생시킨 후 이를 배경으로 군사적 작전행동을 나선다는 것은 이후에 꾸준히 언급되는 음모론의 필수요소 중 하나였고 일부 자작극 내용들은 놀라올 정도로 [[9.11 테러]]의 내용을 닮았다는 것이 화제가 되었다. 제임스 뱀우드의 책이 2001년에 발표되었고 그것이 화제가 된 것도 9.11과 무관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또 이 작전은 [[피그만 침공]]과 [[쿠바 미사일 위기]]라는 초대형 사건들 사이에 존재했는데 이 작전을 통해서 피그만 침공을 왜 케네디가 승인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에 군부가 얼마나 강경한 입장이었는지, 반면에 케네디가 군부와 정보기관을 얼마나 불신하게 되었고[* 실제로 케네디는 피그만 침공 사건이 실패하자 "CIA를 천 개의 조각으로 갈기갈기 찢어서 허공에 날려버리겠다."는 폭언을 했을 만큼 CIA에 대한 분노와 불신을 드러냈다.] 이것이 왜 쿠바 미사일 위기에 영향을 끼쳤으며 '''또한 왜 음모론이 없어지지 않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자료가 된다. == 같이 보기 == * [[로버트 맥나마라]] * [[배신행위]] * [[음모론]] * [[No Russian]] [[블라디미르 마카로프|자작극을 벌이는 주체]]가 국가가 아니라 일개 테러 단체에 불과하지만 자작극의 목적과 [[전쟁|이후 벌어지는 사건]]들을 생각해보면 이 작전과 매우 흡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작중 극초반에 [[러시아]]는 자카예프의 암살 이후 오히려 극우화되어 그의 동상까지 만들고 그의 이름을 딴 공항까지 있다는 설명을 들어 보면[* 게다가 마카로프는 그 자카예프의 심복 중 하나였다.] 테러를 일으킨 주체에 대한 구분은 사실상 의미가 없어지는 셈. * [[하멜의 비극]] 군부의 주전파가 자국민을 희생시키는 자작극으로 [[전쟁]]의 명분을 만들어낸 사건이란 점에서 [[No Russian]]과 마찬가지로 노스우즈 작전과 유사성이 있다. * [[존 F. 케네디]] * [[쿠바 혁명]] * [[피그만 침공]] * [[영어 위키백과]] * [[https://en.wikipedia.org/wiki/Operation_Northwoods|오퍼레이션 노스우즈]] * [[https://en.wikipedia.org/wiki/Cuban_Project|쿠바 프로젝트]] [[분류:냉전]][[분류:전략전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