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골벌국 (문서 편집) [include(틀:변한의 국가)] [include(틀:진한의 국가)] [목차] == 개요 == {{{+1 骨伐國 }}} [[원삼국시대]] [[경상도]] 지역의 [[소국]]들 중 하나. 지금의 [[경상북도]] [[영천시]] 일대에 위치했다. 골고(骨估)[* 관문성석각에서 나온 지명으로 [[골포국|골포]]나 골벌로 추정한다.] 골벌소국(骨伐小國), 골화소국(骨火小國)이라고도 한다.[* 고대 한국의 국명이나 지명에 곧잘 등장하는 '[[불 화]]([[火]])'자는 당대에 '[[불]]'로 [[훈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벌판을 의미하는 벌(伐)과 불은 음운상 공통점이 크므로 따라서 골벌과 골화는 같은 음가를 다르게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역사 == 신라는 이미 [[파사 이사금]] 때부터 시작된 주변국 침공과 영토 확장 정책으로 [[포상팔국의 난]] 진압 등을 거쳐 이미 [[경상북도]] 지역의 패권국으로 성장해 있었다. 골벌국은 경주 근처의 소국으로서는 거의 마지막인 [[조분 이사금]] 7년(236년) 봄 2월에 국왕 아음부(阿音夫)가 무리를 이끌고 와서 항복했고, 집과 토지를 주어 편히 살게 하고 그 땅을 군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도를 보면 알 수 있듯 [[영천시]]는 경주에서 서쪽 지역으로 갈 때 거의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목이기 때문에 설령 조분 이사금 때 완전히 합병됐다고 하더라도 그 이전에 신라(사로국)군이 경산, 대구, 창녕을 넘나들던 적부터 이미 신라에 매우 협조적이었던 소국이었을 것이다. 피를 보지 않고 고분고분하게 귀순한 나라였던 만큼 이후 영천의 토착신이 신라에서 행하던 대사(大祀)에서 모시는 3선(仙) 중 하나가 되었을 정도로 골벌국은 신라 사회에서 나름대로 대접을 받았다. [[분류:삼한]][[분류:영천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